[Into the Bway]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되살아난 90년대 우정의 향수 — ‘Romy & Michele: The Musical’ 리뷰

1997년 개봉했던 영화〈Romy and Michele’s High School Reunion 은 가볍고 유쾌한 코미디로 사랑받았다. ‘완벽한 인생’이라는 허상 속에서 방황하는 두 여성의 우정과 자기 수용을 테마로 했던 이 영화는 당시의 팝 감성과 패션,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아슬아슬한 감정을 정확히 포착하며 컬트 팬덤을 형성했다. 이런 작품을 2025년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 옮긴 것이 바로 〈Romy & Michele: The Musical〉이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뉴욕 Stage 42에서 막을 올린 이번 뮤지컬은 영화의 에너지와 색감을 무대화하는 데 집중한다. 로라 벨 번디(Laura Bell Bundy)와 카라 린지(Kara Lindsay)가 각각 로미와 미셸을 맡아 원작 특유의 발랄하고 엉뚱한 캐릭터를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구현한다. 밝고 유쾌한 움직임, 과장된 패션, 화려한 네온 컬러는 80~90년대 팝문화의 에너지를 다시 한 번 소환하며 관객을 ‘그 시절 감성’으로 되돌려 놓는다.

무대 디자인과 의상은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장면 전환은 빠르고 경쾌하며, 음악은 그 시대의 MTV 감성을 충실하게 담고 있다. 작곡가 Gwendolyn Sanford와 Brandon Jay는 일렉트로닉, 팝, 댄스 음악 요소를 결합해, 관객이 몸을 흔들고 싶어질 만큼 활기찬 넘버들을 구성했다. 이 점에서 〈Romy & Michele〉은 ‘브런치 뮤지컬’ 혹은 ‘걸스 나잇 아웃’ 스타일로 소비되기 좋은 가벼움과 즐거움을 제공한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그러나 이 작품의 미덕이 곧 한계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가 갖고 있던 가벼움 속의 따뜻함, 우정과 성장의 감정선이 무대에서는 다소 흐릿해지는 느낌이 있다. 줄거리 전개는 빠르게 움직이지만 감정적 깊이는 충분히 쌓이지 않고, 중후반부로 갈수록 반복되는 음악과 안무는 다소 장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원작을 모르는 관객이라면 캐릭터의 변화나 갈등의 정서적 설득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또한 영화의 핵심 매력 중 하나였던 ‘오해와 허세 속에서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감정적 여정’이 뮤지컬에서는 소극적으로 표현된다. 그 결과 웃음과 색감은 풍부하지만, 감정적 울림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으로서의 엔터테인먼트 성격을 강조한 만큼, 깊이 있는 드라마보다는 즉흥적인 즐거움에 초점이 맞춰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주연 배우의 호흡은 안정적이며, 특정 장면들—특히 동창회 파티 시퀀스에서는 무대 전체가 폭발적인 에너지로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다. 또한 티켓 가격이 비교적 부담되지 않는 편이라는 점은 ‘입문용 뮤지컬’로서의 매력을 더한다. 친구, 대학 동기, 혹은 가벼운 데이트 코스로 선택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공연이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Romy & Michele: The Musical〉은 2025년 11월 30일부로 55회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짧은 러닝과 일부 평단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남기는 의미는 작지 않다. 원작 영화가 갖고 있는 90년대 미국 팝문화의 밝음과 유머를 다시 무대 위로 소환하며, 복고적 감성과 우정 이야기를 지금의 관객에게 재해석해 전달했다는 점에서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결국 이 작품은 ‘깊이 있는 드라마’가 아닌, “가볍고 유쾌한 순간을 선물하는 공연”로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음악, 의상, 조명, 배우의 에너지가 하나로 어우러져, 잠시 동안 일상에서 벗어나 웃고 즐길 수 있는 극장 경험을 선사한다. 원작 팬에게는 익숙한 향수를, 새로운 관객에게는 가벼운 해방감과 재미를 제공하는 작품으로 오프브로드웨이의 또 다른 개성을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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