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LA 시위와 주방위군 파견: 미국 민주주의의 시험대에 선 캘리포니아

미국 민주주의 다시한번 시험대에 서다
[출처: @Jere_Memez]

2025년 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는 또다시 격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이민 단속이라는 화두를 둘러싼 갈등이 촉매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주방위군이 시위 진압을 위해 파견되었고, 이는 단순한 질서 회복을 넘어 연방과 주정부 간 권한 충돌, 시민 자유의 경계, 그리고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건의 발단 – 단속에서 충돌로

6월 6일 아침,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은 로스앤젤레스 패션 디스트릭트 및 근교 지역의 도매 상가, 창고, 대형 소매점을 기습 단속했다. 단속 대상은 불법체류자로 지목된 노동자들이었다. 당일 체포된 인원은 약 120여 명에 달하며, 현장에서 즉시 추방 조치가 진행됐다.

[출처: @AZJohnnyC]

이 단속은 단순한 법 집행을 넘어 사회적 격랑을 불러왔다. 체포된 이들 중에는 현지에서 10년 이상 거주해 온 노동자들과 미성년 자녀를 둔 부모도 포함되어 있었고, 일부는 보호신분(DACA)에 준하는 사면 절차 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날 오후부터 시작된 시위는 메트로폴리탄 구금센터에서 시작되어, 파라몬트, 컴튼, 이스트LA 등지로 확산됐다.

시위가 격화되자 백악관은 6월 7일 긴급 회의를 열고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공공 질서 유지와 연방 재산 보호를 이유로 주방위군 파견 명령을 승인했다. 대통령 명령에 따라 약 300명의 주방위군 병력이 6월 8일부터 시내에 배치되기 시작했으며, 향후 최대 2,000명까지 증원될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출처: @The_Zeppenwolf]

이번 파견은 특히 주목을 끄는 점이 하나 있다. 통상적으로 주방위군은 각 주지사의 요청에 따라 동원되며, 연방 차원의 개입은 드문 일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동의 없이, 미 연방법 제10조 §12406조에 근거해 군을 직접 연방화(federalize)한 후 투입했다. 이는 1965년 셀마 사태 이래 6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주권의 충돌 – 주지사의 반발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Gavin Newsom)은 이 사태를 “연방 권력의 남용”이라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그는 성명을 통해 “주지사 동의 없는 군 투입은 위헌적이며, 우리 주의 자치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뉴섬 주지사는 연방 법원에 긴급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이민자 인권 단체들과 함께 헌법적 대응에 나섰다.

LA시의 케런 배스 시장 역시 “비폭력 시위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며 주방위군 투입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LA 시의회는 6월 9일 긴급 회의를 통해 군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출처: 캐런 바스 LA 시장 소셜미디어]

6월 8일 저녁, LA 다운타운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시청과 연방청사 앞에서 집결했다. 일부는 피켓을 들고 행진했고, 다른 일부는 ICE 차량을 막아서거나 건물 출입을 저지했다. 밤이 되자 일부 시위대가 차량 방화와 도로 봉쇄를 시도하며 충돌이 발생했다. 이에 주방위군과 LAPD가 고무탄과 최루탄을 동원하며 강제 해산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27명이 체포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현장을 취재하던 로컬 방송기자들도 고무탄에 맞아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인권 감시단체들은 “과도한 무력 사용”을 지적하며 국제 인권 기구에 조사를 요청했다. 한편, 일부 주민은 “폭력 시위는 반대하지만 군 투입은 더 큰 문제”라며 양측에 자제를 요청했다.

법과 역사 – 과거로부터의 경고

이번 사건은 과거 미국 역사상 비슷한 사례들과 비교되며 논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1992년 로드니 킹 사건 이후 LA 폭동 당시 주방위군 투입은 주정부 요청에 따른 것이었고, 인슐렉션 법(Insurrection Act)이 발동되었다. 반면 이번 경우는 해당 법이 발동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직접 주방위군을 연방화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출처: 캘리포니아 주지사 X 페이지]

또한 1965년 셀마 행진 당시,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앨라배마 주지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주방위군을 연방화해 민권운동가들을 보호한 바 있다. 당시에도 정치적 논란이 거셌지만, 목적은 ‘시민의 기본권 보호’였다. 그러나 2025년의 LA에서는 그 목적이 ‘질서 유지’라는 명분에 가려진 상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2026년 중간선거와 2028년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움직임으로 해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한 이민 정책과 법치주의 강조를 통해 보수층 결집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민주당은 이를 “공포 정치의 부활”이라며 강하게 비판한다.

여론도 양분되어 있다. 최근 NPR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는 주방위군 파견을 지지하는 응답이 41%, 반대가 52%로 나타났지만, 캘리포니아 내에서는 반대가 67%로 압도적이다. 특히 라틴계 및 아시아계 주민의 반대율이 높았다.

시민사회, 향후 전망과 교훈

LA 현지 이민자 권익 단체들과 종교계, 교육계는 이번 단속과 군 투입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LA 아치디오시스는 성명을 통해 “이민은 범죄가 아니다. 공포와 무력은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민자 커뮤니티 내에서는 자녀들의 등교 중단, 근무 거부, 의료 서비스 회피 등 공포로 인한 ‘사회적 셧다운’ 현상도 포착되고 있다. 비영리 단체들은 피신처 제공과 심리 상담, 법률 지원을 확대하며 긴급 대응에 나섰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제기한 소송은 연방정부의 권한 남용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판결 결과에 따라 향후 연방정부의 주방위군 동원 기준과 주정부 권한 해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이 사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시위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무력 사용의 정당성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2025년 LA는 다시금 미국 사회의 거울이 되고 있다. 법과 질서의 경계, 시민의 권리와 국가의 책임, 그리고 정치적 의도가 교차하는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대화다. 이민과 다양성을 정체성으로 삼아온 도시, LA는 지금 ‘누가 미국을 대표하는가’라는 질문을 온몸으로 던지고 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시위대가 아닌, 미국 시민 모두가 함께 찾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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