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슨 강 너머 숨겨진 낙원”

뉴욕, 뉴저지 인근 피크닉 제안 (6월 첫째주)

언터마이어 가든스, 시간과 문화를 품은 정원

뉴욕에서 북쪽으로 불과 30분,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벗어난 자리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요하고 신비로운 공간이 있다. 고대 페르시아의 정원 구조, 로마의 신전을 닮은 정자, 예술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조각과 식물들이 함께 숨 쉬는 곳—바로 언터마이어 가든스(Untermyer Gardens Conservancy)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욘커스(Yonkers)라는 소도시에 위치한 이 정원은 한때 “미국의 아그라”라 불렸을 만큼 대담하고도 독창적인 미학을 보여주는 장소였으며, 21세기 들어 다시금 ‘현대적 명상 공간’으로 부활하고 있다. 정원과 함께 재발견되는 것은 그 속에 스며든 역사, 문화, 종교, 그리고 사람이다.

잊힌 백만장자의 꿈에서 공공 유산으로

언터마이어 가든스의 시작은 한 사람의 비전에서 비롯되었다. 주인공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월가에서 큰 성공을 거둔 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였던 새뮤얼 언터마이어(Samuel Untermyer). 그는 대기업 독점 해체를 이끈 진보 정치인이자, 시오니즘 운동과 시민권 증진을 지지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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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거주하던 150여 에이커 규모의 저택 부지에 ‘모두를 위한 예술 정원’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세계적인 조경가 윌리엄 W. 보삼(William Welles Bosworth)을 고용해 대규모 정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보삼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복원에도 참여했던 조경가로, 이곳에서는 고대 페르시아의 ‘차하르 바흐’(사방으로 나뉜 정원) 구조와 그리스·로마 건축 양식을 융합했다.

이 정원은 1930년대에 전성기를 맞으며 엘리너 루스벨트, 찰리 채플린 등 유명 인사들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고, 언터마이어는 이 정원을 ‘미국 최초의 공공 정원’으로 기부하려고도 했으나, 당시 정부는 관리 부담을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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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1940년 사망한 이후, 정원은 수십 년간 방치되며 폐허로 변해갔다. 식물은 무성하게 자랐고, 조각과 분수는 금이 갔으며, 템플은 잡초로 덮였다. 그러나 2011년, 언터마이어 가든스 보존 재단(Untermyer Gardens Conservancy)이 설립되며 기적 같은 복원이 시작되었다. 지역 정부와 비영리 단체의 협력, 그리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 끝에, 정원은 점차 과거의 찬란함을 회복해갔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정원 복원 사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정원에서 신화와 철학을 거닐다

현재 일반에 개방된 구역은 약 10에이커지만, 그 밀도는 상상 이상이다. 정원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설계되어 있으며, 걷는 순서에 따라 정원의 미학과 상징성이 점진적으로 드러난다.

첫 번째 공간은 ‘웨스턴 퍼시안 가든(Walled Garden)’이다. 고대 페르시아 양식의 사방 대칭형 정원으로, 중앙 연못을 중심으로 대리석 기둥과 아치가 원형을 이루며 배치돼 있다. 가운데는 십자형 수로가 사방으로 흐르고, 연못 옆에는 모자이크 타일과 식물이 정교하게 조화되어 있다. 정원의 끝에는 ‘템플 오브 러브(Temple of Love)’라는 둥근 지붕의 정자가 있다. 이 정자는 언덕 위 폭포가 흐르는 인공 절벽 위에 세워져 있어, 허드슨 강과 그 너머의 팰리세이즈 절벽까지 조망할 수 있다. 이곳은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포인트로, 아침이나 해 질 무렵에 방문하면 황금빛 햇살이 정자에 비쳐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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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식 원형극장(Amphitheater)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공연장을 재현한 공간으로, 실제로 여름 시즌에는 이곳에서 시 낭송회, 음악회, 종교 간 대화 포럼, 클래식 무용 공연이 열린다. 대리석으로 조성된 반원형 좌석과 중앙 무대는 고대 도시국가의 광장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숲속 정원(Woodland Garden)은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자연 친화적인 구역으로, 최근 복원된 이 산책로는 진입로부터 물소리와 새소리가 가득하다. 이곳에서는 사슴, 다람쥐, 텃새 등 다양한 생태를 마주할 수 있으며, 인간의 손길을 최소화한 조경이 오히려 더 깊은 몰입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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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공간에는 언터마이어의 이상이 녹아 있다—자연과 건축, 인간과 신, 예술과 철학의 공존. 실제로 정원 곳곳에는 힌두교, 유대교, 이슬람 건축 요소가 병치되어 있어, 이 정원이 단일 종교가 아닌 ‘보편적 정신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피크닉, 예술, 사색… 오늘날의 언터마이어

오늘날 언터마이어 가든스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현대인의 ‘도시 속 명상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사계절 모두 다른 매력을 지니며, 계절마다 찾는 이유도 달라진다. 봄에는 튤립과 히아신스가 정원의 대칭 구조를 수놓고, 여름에는 야외 콘서트와 예술 행사가 이어진다.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고대 신전의 대리석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겨울에는 눈 덮인 정원의 선과 그림자가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무료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정원 속 요가’, ‘음악과 명상’ 프로그램, 어린이 가드닝 클래스, 뉴욕 시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경 체험 수업 등, 지역 사회와의 유기적 연결 또한 적극적이다. 뿐만 아니라 LGBTQ+ 커뮤니티, 다종교 간 문화교류 행사, 지역 예술가 전시 등을 통해 ‘모두를 위한 공공 예술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방문객들은 텀블러에 커피 한 잔을 담아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피크닉 매트를 펴고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오후를 보낸다. 현장에서 음식 판매는 없지만, 가까운 그레이스톤 역(Greystone Station) 인근에는 카페와 델리들이 있으므로 미리 준비해 오면 더욱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방문안내]

  • 주소: 945 North Broadway, Yonkers, NY 10701
  • 운영 시간: 매일 오전 9시 ~ 해질 무렵 (계절별 변동 있음)
  • 입장료: 무료 (기부 권장, 특정 투어 및 공연 유료)
  • 교통:
    • Metro-North Hudson Line의 Greystone역 하차 후 도보 10~15분
    • Yonkers역에서 택시 이용 시 약 10분
  • 웹사이트: untermyergarden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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