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용어로 읽는 인플레이션 시대 (2)

정책의 딜레마, 인플레이션의 그림자

서론: 물가와 성장 사이의 줄타기

경제를 움직이는 두 축은 물가 안정성장 유지다. 그러나 두 가지 목표는 종종 충돌한다. 물가가 치솟으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 억제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기가 둔화된다. 반대로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추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면서 물가가 오를 수 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2025년 현재 미국 경제는 이 미묘한 균형점을 다시금 시험받고 있다. 팬데믹 이후 물가 급등, 금리 인상, 국제 공급망 불안, 지정학적 긴장이 겹치며 정책 결정자들은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에서 오랫동안 논의돼온 몇 가지 개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성장이 멈췄는데 물가는 오른다

1970년대 오일 쇼크는 미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낯선 괴물을 불러왔다. 일반적으로는 경기가 침체되면 물가도 안정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때는 달랐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물가는 폭등했지만, 경기는 동시에 침체됐다. 실업률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고, 인플레이션도 두 자릿수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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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그플레이션은 정책 대응을 어렵게 한다.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올리면 경기는 더 나빠지고, 경기를 살리려 금리를 내리면 물가는 더 오르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현재 미국과 유럽이 에너지 가격 불안, 글로벌 공급망 차질을 겪을 때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다시 소환되는 이유다.

2025년 미국의 상황은 1970년대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성장 둔화와 고물가라는 조합이 다시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보험료, 교육비, 의료비 등 구조적으로 상승 압력이 큰 분야에서 고착화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경기 침체 속에도 소비자들의 부담은 줄지 않는다.

리플레이션: 경기 부양의 양날의 검

스태그플레이션과 달리, 리플레이션(Reflation)은 정부가 경기 침체 후 의도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려 경제를 되살리는 과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미국 정부와 연준은 대규모 현금 지원, 저금리, 자산 매입 등을 통해 리플레이션 정책을 실행했다.

그 결과 단기간에 소비와 투자가 폭발하며 경제가 빠르게 회복됐지만, 동시에 예상보다 훨씬 큰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이는 리플레이션의 전형적인 부작용이다. 정책은 단기적으로 경기 회복을 가져오지만, 적절한 출구 전략이 없으면 ‘통제 불능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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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레이션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부의 대규모 지출과 금융 규제 완화로 경제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지만, 이는 경기 정상화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각국은 경기 침체가 다가올 때마다 리플레이션 정책을 고려한다. 그러나 과거의 교훈은 분명하다. “적절한 시점의 출구 전략이 없다면 리플레이션은 독이 된다.”

필립스 곡선: 깨져버린 단순 공식

1950~60년대 경제학자들은 필립스 곡선을 믿었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사이에는 일정한 상충 관계가 있다는 이론이다. 즉, 실업률이 낮아지면 임금 상승 압력으로 물가가 오르고, 반대로 실업률이 높아지면 물가는 안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은 이 곡선을 무너뜨렸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높은 상황은 필립스 곡선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이후 글로벌화, 기술 발전, 노동시장 유연화 같은 구조적 변화는 필립스 곡선의 단순성을 더욱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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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4% 안팎으로 낮은 편이지만,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목표치보다 높은 수준이다. 필립스 곡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는 경제가 더 복잡한 요인 ― 글로벌 공급망, 인구 구조, 기술 혁신, 지정학적 리스크 ― 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미국: 정책의 줄타기

연방준비제도는 2022~2023년 가파른 금리 인상을 단행해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하지만 금리 인상은 경기 둔화를 불러왔고, 부동산 시장과 금융 시장에 부담을 주었다.

2025년 현재 연준은 금리를 내리기에는 물가가 불안하고, 금리를 올리기에는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딜레마는 단순히 경제학 교과서의 문제가 아니다. 뉴욕의 가계는 높은 렌트비와 생활비로, 뉴저지의 소상공인들은 금융 비용 증가로 직접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정책 결정자들은 단순한 공식을 적용할 수 없다. 과거에는 금리 정책이 주요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재정 정책, 공급망 관리, 국제 협력, 노동시장 개혁 같은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

국제적 맥락: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은 에너지 가격 불안으로 여전히 높은 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아시아 신흥국들은 미국의 고금리에 따른 달러 강세로 자본 유출 위험을 겪고 있다. 글로벌 경제가 긴밀히 연결된 오늘날, 한 나라의 통화정책은 국경을 쉽게 넘는다.

스태그플레이션과 리플레이션, 그리고 필립스 곡선의 흔들림은 결국 ‘세계화된 경제’라는 새로운 현실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결론: 경제는 우리의 일상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단순히 역사적 개념이 아니라, 언제든 재현될 수 있는 악몽이다. 리플레이션은 경기 부양의 필요 속에서 반복해서 등장한다. 필립스 곡선은 여전히 교과서에 남아 있지만,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개념들이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뉴욕의 월세, 뉴저지의 주유소 기름값, 은행 대출 이자율은 모두 인플레이션과 정책 선택의 직접적 결과다.

2025년 미국 경제는 여전히 갈림길에 서 있다. 물가 안정경기 성장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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