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서클, 도시의 원형 위에 세워진 건축
뉴욕 맨해튼의 콜럼버스 서클은 단순한 로터리가 아니다. 센트럴 파크의 남서쪽 관문이자, 미드타운과 업퍼 웨스트 사이드를 잇는 도시 구조의 접합부이며, 뉴욕이 스스로를 ‘도시’로 정의해온 방식이 응축된 장소다. 이곳은 언제나 교통과 상업, 문화와 상징이 겹쳐지는 지점이었고, 그래서 이 자리 위에 어떤 건물이 서느냐는 단순한 부동산 개발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오늘날 Deutsche Bank Center로 불리는 이 건물은 바로 그 자리, 과거 New York Coliseum이 있던 부지 위에 세워졌다. 콜리세움은 1950년대 중반 완공된 대규모 컨벤션 센터로, 한때 뉴욕의 국제적 위상을 상징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노후화와 기능적 한계에 직면했다. 1980~90년대를 거치며 뉴욕은 도심 재개발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했고, 콜럼버스 서클은 그 변화의 핵심 후보지였다. 이 부지는 ‘무엇을 허물고 무엇을 세울 것인가’라는 질문이 가장 날카롭게 제기된 장소 중 하나였다.
2000년대 초, 이 자리에 들어선 새로운 복합 건물은 뉴욕이 선택한 해답이었다. 단일 기능의 건축이 아니라, 오피스·주거·호텔·상업·문화 시설을 하나의 수직적 구조 안에 통합한 복합 도시. 그것이 바로 당시 Time Warner Center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등장한 이 건물의 출발점이었다. 설계는 Skidmore, Owings & Merrill(SOM)의 데이비드 차일즈가 맡았고, 그는 이 건물을 ‘도시적 장치’로서 기능하게 하려 했다. 두 개의 타워를 나란히 세우고, 그 사이를 거대한 아트리움으로 연결한 구조는 단절보다는 흐름을 강조했다. 도시의 동선이 건물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 건물은 처음부터 ‘랜드마크’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그 랜드마크성은 조형적 과시가 아니라, 도시 구조 속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있었다. 센트럴 파크를 향해 열린 시선, 브로드웨이와 에잇 애비뉴를 잇는 보행 흐름, 지하철 노선과의 직접적인 연결은 이 건물이 단순한 마천루가 아니라 도시 인프라의 일부임을 분명히 했다. Time Warner Center는 그렇게 뉴욕의 중심부에 ‘하나의 도시’를 세우는 실험으로 출발했다.
Time Warner Center라는 이름이 상징했던 시대
Time Warner Center라는 이름은 단순한 기업 브랜딩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이 건물은 2000년대 초, 미디어 산업이 뉴욕 경제와 문화의 중심에 서 있던 시기를 대표했다. AOL과 Time Warner의 합병이라는 초대형 사건 이후, 이 건물은 글로벌 미디어 제국의 심장부로 기능할 것을 기대받았다. 뉴스, 엔터테인먼트, 케이블 네트워크, 콘텐츠 산업의 중심이 맨해튼 한복판에 자리한다는 상징성은 당시로서는 매우 강력했다.

Time Warner Center 내부는 그 기대를 반영하듯 구성되었다. 상층부에는 고급 레지던스와 호텔이 자리했고, 중간층에는 기업 오피스가, 하부에는 대형 쇼핑과 다이닝 공간이 들어섰다. 특히 The Shops at Columbus Circle은 기존의 쇼핑몰 개념을 넘어, ‘도심형 고급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지향했다. 센트럴 파크를 내려다보는 식당,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프리미엄 식료품 매장은 뉴욕의 소비 문화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 시기 Time Warner Center는 뉴욕이 여전히 문화·미디어·자본의 중심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건물은 도시의 변화 속도를 가장 먼저 반영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미디어 산업의 중심이 점차 분산되고, 디지털 플랫폼이 기존 구조를 흔들기 시작하면서, Time Warner라는 이름이 지닌 상징성도 서서히 변화의 기로에 놓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은 흔들리지 않았다. 특정 기업의 부침과 상관없이, 복합 건물로서의 구조적 완성도와 도시적 위치는 여전히 유효했다. 레스토랑은 문을 닫고 다시 열었고, 매장은 교체되었으며, 오피스의 주인은 바뀌었다. 그러나 건물 자체는 뉴욕의 일상 속에서 계속 기능했다. 이는 Time Warner Center가 특정 산업의 기념비가 아니라, 도시의 플랫폼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Deutsche Bank Center, 금융의 이름이 입혀진 공간
2021년, 이 건물은 공식적으로 Deutsche Bank Center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다. 이는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뉴욕 경제 구조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글로벌 금융 기업인 도이체방크가 이 건물의 주요 테넌트로 자리 잡으면서, 미디어 중심이던 공간은 금융 중심의 정체성을 덧입게 되었다.

이 변화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어떤 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2000년대 초 미디어와 콘텐츠가 도시의 미래를 대표했다면, 2020년대의 뉴욕은 다시 금융과 글로벌 자본의 허브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Deutsche Bank Center라는 이름은 그 흐름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 변화가 건물의 성격을 단순히 ‘금융 본사’로 축소시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건물은 여전히 다기능 복합 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호텔은 관광객과 비즈니스 방문객을 맞이하고, 쇼핑 공간은 지역 주민과 방문객을 연결하며, 공연장과 문화 시설은 뉴욕의 문화적 리듬을 이어간다. 금융 기업의 이름을 달았지만, 건물은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되지 않았다.

이 점에서 Deutsche Bank Center는 흥미로운 사례다. 글로벌 금융 기업의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공공성과 개방성을 유지하는 방식은 뉴욕 특유의 균형 감각을 보여준다. 이는 건물이 처음부터 ‘도시의 일부’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건물이 수행하는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름이 바뀌어도 남는 것들
Deutsche Bank Center를 리뷰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건축물을 평가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뉴욕이라는 도시가 지난 20여 년간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읽는 작업에 가깝다. 이 건물은 미디어의 시대를 지나 금융의 시대로 이동했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복합성’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이곳은 여전히 센트럴 파크로 향하는 관문이며,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오가고 머무는 공간이다. 관광객에게는 뉴욕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되고, 지역 주민에게는 일상의 일부가 된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이 건물이 도시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은 지속된다.
Deutsche Bank Center는 결국 뉴욕의 한 단면이다. 특정 시대의 욕망과 가능성을 담아 세워졌고, 시간이 흐르며 그 의미를 갱신해왔다. 그것이 이 건물이 단순한 마천루를 넘어 도시의 기록물로 읽히는 이유다. 이곳을 걷는다는 것은 뉴욕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통과하는 경험에 가깝다. 그리고 아마도, 이 건물은 앞으로도 또 다른 이름과 또 다른 의미를 덧입으며 뉴욕의 중심에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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