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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 스스로를 다시 설계한 실험실- 배터리 파크 시티

맨해튼의 지도에서 배터리 파크 시티(Battery Park City)는 늘 조금 이질적으로 보인다. 고층 빌딩과 금융 자본, 관광과 속도가 지배하는 로어맨해튼 한복판에서, 이 지역은 유난히 조용하고 단정하며 계획적이다. 뉴욕의 다른 동네들이 우연과 혼돈, 이민과 자본의 충돌 속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었다면, 배터리 파크 시티는 태생부터 다르다. 이곳은 뉴욕이 스스로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실험한 공간이자, 도시가‘삶의 질’을 어디까지 제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사례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배터리 파크 시티는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다. 이곳은 버진 항만이 도시의 미래가 되는 과정, 재난 이후 도시가 자신을 회복하는 방식, 그리고 기후 위기 앞에서 뉴욕이 선택한 대응 전략이 모두 응축된 장소다. 그래서 이 동네를 이해하는 일은, 곧 뉴욕이라는 도시의 내면을 읽는 일과 맞닿아 있다.

버려진 항만에서‘의도된 도시’로

배터리 파크 시티의 출발점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20세기 중반까지 이 일대는 노후화된 부두와 창고가 늘어선 항만 지대였다. 해상 물류의 중심이 점차 다른 항구로 이동하면서, 허드슨강 연안의 이 지역은 기능을 잃고 도시의 변두리로 밀려났다. 뉴욕은 이미 과밀과 주거난, 환경 악화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이 땅은 오랫동안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전환점은 1960~70년대에 찾아온다.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토사가 허드슨강 연안 매립에 활용되면서, 물리적으로 새로운 땅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뉴욕주는 이 지역을 단순한 부동산 개발이 아니라 도시계획 실험의 장으로 삼기로 결정한다. 이때 설립된 기관이 바로Battery Park City Authority다.

배터리 파크 시티의 가장 큰 특징은‘계획된 도시(planned community)’라는 점이다. 뉴욕 대부분의 동네가 시장 논리와 이민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과 달리, 이곳은 공공기관이 토지를 소유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바탕으로 개발을 통제했다. 주거, 공원, 상업 공간의 비율은 처음부터 정교하게 계산되었고, 보행자 중심의 동선과 강변 접근성은 핵심 원칙으로 설정되었다. 이는 뉴욕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시도였다.

맨해튼 속에서 가장‘비맨해튼적인’ 동네

배터리 파크 시티를 걷다 보면, 이곳이 왜 뉴욕에서 특별한지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거리에는 불필요한 소음이 적고, 블록 사이사이에는 반드시 공원이나 녹지가 끼어 있다. 고층 주거 건물조차 강변 풍경과 시야를 최대한 방해하지 않도록 배치되었다. 이는 무작위적 밀집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전제로 한 설계의 결과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이 동네의 생활 리듬은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금융가가 주중 낮의 속도와 밤의 공백을 반복한다면, 배터리 파크 시티는 아침과 저녁, 주말과 평일의 차이가 크지 않다. 유모차를 미는 부모, 러닝을 하는 주민, 벤치에서 책을 읽는 노년층이 공존하는 풍경은 맨해튼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다. 그래서 이곳은 흔히“맨해튼 속 교외”라고 불린다.

교육 환경 역시 이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공립 초·중학교의 평판이 높고, 학부모 커뮤니티의 결속력도 강하다. 이는 배터리 파크 시티가 단기 거주자가 아닌 장기 정착형 주거지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뉴요커들이“아이를 키우기 위해 맨해튼을 떠난다”고 말할 때, 이 동네는 그 통념에 대한 예외로 언급된다.

상업 시설 역시 이 지역의 성격을 반영한다. Brookfield Place는 쇼핑몰이지만, 단순한 소비 공간이라기보다는 문화와 여가, 일상이 교차하는 실내 광장에 가깝다.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지만, 타임스퀘어나 소호처럼 과잉된 관광지는 아니다. 이 절제된 상업성은 배터리 파크 시티가‘살기 위한 동네’임을 분명히 한다.

9·11 이후, 상처 위에 다시 세운 공동체

배터리 파크 시티의 역사에서2001년9월11일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전환점이다. 세계무역센터와 인접한 이 지역은 직접적인 피해와 장기적인 환경 문제를 동시에 겪었다. 많은 주민들이 일시적으로 떠났고, ‘이곳이 과연 안전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그러나 배터리 파크 시티는 붕괴의 공간이 아니라 회복의 공간으로 재편되었다. 물리적 복구뿐 아니라, 주거 환경과 공공 공간의 안전성, 커뮤니티 기능이 전면적으로 재점검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동네는 단순히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견고한 공동체 구조를 갖추게 된다.

9·11 이후 배터리 파크 시티에는 가족 단위 거주자가 늘어났고, 지역 커뮤니티 활동도 강화되었다. 공원과 강변 산책로는 추모와 일상의 공간을 동시에 품는 장소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곳에서의‘안전’은 단순한 물리적 개념이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으로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경험은 뉴욕 전체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재난 이후 도시는 무엇을 우선적으로 회복해야 하는가. 건물인가, 경제인가, 아니면 사람과 공동체인가. 배터리 파크 시티는 그 질문에 비교적 명확한 답을 제시한 사례로 남아 있다.

기후 위기 시대, 뉴욕의 미래를 시험하는 장소

배터리 파크 시티의 현재적 의미는 기후 변화와 맞닿아 있다. 허드슨강과 맞닿은 이 지역은 허리케인 샌디를 통해 해수면 상승과 홍수 위험을 직접 경험했다. 이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도시의 취약성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이후 배터리 파크 시티는 뉴욕시와 주정부의 기후 회복력 정책에서 중요한 실험장이 된다. 해안선 방재 프로젝트, 친환경 건축 기준 강화, 공공 공간의 다기능화는 모두 이 지역에서 먼저 적용되거나 시험되었다. 공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홍수 완충 지대로 설계되었다. 이는 도시 미관과 안전을 동시에 고려한 접근이다.

이러한 변화는 배터리 파크 시티를‘완성된 동네’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도시 모델로 만든다. 이곳은 뉴욕의 미래가 이미 부분적으로 구현된 장소이자, 동시에 그 미래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경고이기도 하다.

그래서 배터리 파크 시티를 두고 뉴요커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너무 깨끗해서 뉴욕답지 않다”는 비판과, “이것이 뉴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옹호가 공존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이 동네의 가치가 드러난다. 배터리 파크 시티는 뉴욕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혼돈과 속도의 도시가, 과연 계획과 삶의 질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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