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과 2024년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그리고 미국·한인 독자를 위한 읽기와 보기의 가이드

대도시에서 사랑한다는 것의 두 얼굴

서문|이야기는 왜 다시 영화가 되었는가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출간 이후 오랫동안 “지금의 서울을 가장 정확히 기록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퀴어 서사라는 분류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일 수는 있지만, 결코 전부는 아니다. 이 소설이 오래 읽히는 이유는 성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대도시에서 관계를 맺고 유지하며 버텨내는 방식을 날것 그대로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감각은 2024년, 동명의 영화로 다시 호출되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원작의 시각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소설이 포착한 정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방증이자, 서울이라는 도시가 겪고 있는 감정의 구조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동시에 이 영화는, 원작을 이미 읽은 독자에게도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이야기는 어떤 부분이 보편적이며, 어떤 부분이 한국적이었는가. 그리고 그 차이는 화면 위에서 어떻게 변주되는가.

미국 독자와 미주 한인 독자에게 이 결합된 텍스트—소설과 영화—는 단순한 문화 소비가 아니다. 이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통과해 만들어진 정서가 뉴욕, LA, 시카고 같은 대도시의 삶과 어떻게 겹치는지를 확인하는 하나의 실험에 가깝다.

1부|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퀴어 서사가 아니라 도시 서사로 읽기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가장 중요한 배경은 사실 서울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서울은 배경으로서의 의미를 최소화한 채 관계가 생성되고 소모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서울은 관광 지도에 표시되는 장소가 아니라, 원룸과 술집, 택시 안, 새벽의 골목과 친구의 집 같은 사적인 공간들로 이루어진다. 이는 대도시의 전형적인 얼굴이다. 익명성과 친밀함이 동시에 작동하는 공간,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지만 누구와도 오래 머물 수 없는 구조.

도시 배경의 대형 붉은 사랑 조각
[출처:Madeline Liu]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사랑을 통해 성장하거나 구원받지 않는다. 대신 사랑은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그 실패를 견뎌내는 과정이 누적된다. 이 점에서 『대도시의 사랑법』은 전통적인 성장 서사와 거리를 둔다. 주인공은 더 나은 인간이 되기보다, 조금 더 무뎌지고, 조금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된다. 이 변화는 미묘하지만 결정적이다. 대도시에서 살아남는 법은 이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너무 크게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미국 독자가 이 소설을 읽을 때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작품이 정체성의 선언보다 관계의 기술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많은 퀴어 서사가 ‘정체성의 가시화’와 ‘권리의 언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반면, 박상영의 소설은 말해지지 않는 감정과 회피, 그리고 설명하지 않음의 윤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차별은 극적인 사건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대신 침묵, 어색함, 미묘한 거리 두기 속에서 축적된다. 이는 한국 사회 특유의 규범 구조를 반영하지만, 동시에 이민자나 소수자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각이기도 하다.

미주 한인 독자에게 이 소설은 특히 이중적인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한국 사회의 규범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 규범에서 일정 부분 벗어난 거리에서 읽게 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가족과 사회를 대하는 태도—직접적으로 맞서지 않고, 완전히 단절하지도 않는 방식—는 많은 한인 독자에게 익숙한 생존 전략으로 읽힌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한국 사회를 비판하기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조용히 적응해 왔는가를 보여준다.

2부|2024년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감정의 시각화와 선택의 문제

2024년 개봉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원작 소설의 세계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영화라는 매체에 맞게 선택과 집중을 수행한다. 소설이 에피소드와 감정의 누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영화는 보다 명확한 감정선과 서사적 흐름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복잡한 감정의 결은 단순화되고, 대신 인물의 관계와 정서가 시각적으로 강화된다.

낮에 회색 콘크리트 건물 근처를 걷는 사람들
[출처:Briana Tozour]

영화가 가장 크게 달라지는 지점은 ‘시간의 밀도’다. 소설에서는 관계가 흘러가며 사라지는 과정이 비교적 담담하게 처리되지만, 영화에서는 장면 하나하나가 감정의 클라이맥스로 작동한다. 이는 장점이자 한계다. 관객은 인물의 외로움과 사랑의 순간을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지만, 동시에 소설 특유의 건조함과 반복성은 일부 희석된다.

미국 관객에게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한국의 퀴어 영화”라기보다, 대도시의 청춘 멜로드라마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 이는 영화가 의도적으로 보편적인 감정 언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랑, 이별, 우정, 외로움은 문화적 장벽을 비교적 쉽게 넘는다. 이 점에서 영화는 원작 소설보다 글로벌 관객에게 접근성이 높다.

그러나 미주 한인 관객에게는 또 다른 층위의 감상이 가능하다. 영화 속 서울의 풍경—술자리의 분위기, 친구 관계의 밀도,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태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정서적 코드로 작동한다. 이는 미국에서 제작된 퀴어 영화와 분명히 다른 결이다. 감정은 보편적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한국적이다.

3부|소설과 영화의 차이: 무엇이 남고, 무엇이 변했는가

『대도시의 사랑법』을 소설과 영화로 함께 접할 때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어떤 요소가 변형되었는가보다 어떤 요소가 끝내 남았는가다. 두 매체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유지되는 핵심은 “사랑은 완성의 수단이 아니다”라는 인식이다. 인물들은 사랑을 통해 구원받지 않으며, 오히려 사랑 이후에도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로 남는다.

Love Over Rules 간판
[출처:Jon Tyson]

차이는 표현 방식에서 드러난다. 소설은 실패의 반복을 통해 감정을 누적시키는 반면, 영화는 몇 개의 강렬한 장면으로 감정을 압축한다. 이 과정에서 소설의 일부 미묘한 관계와 여백은 사라지지만, 대신 관객에게 즉각적인 공감과 감정 이입을 제공한다.

미국 독자와 관객이 이 차이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소설은 한국 사회의 규범과 침묵을 이해하는 데 더 적합한 텍스트라면, 영화는 감정의 보편성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를 글로벌 도시의 하나로 위치시킨다. 이 두 가지 접근은 서로를 보완한다. 소설을 읽은 뒤 영화를 보면, 왜 특정 감정이 생략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고, 영화를 먼저 본 뒤 소설을 읽으면, 화면 뒤에 숨겨진 감정의 층위를 발견하게 된다.

4부|미국·한인 독자를 위한 읽기·보기 가이드

미국 독자가 『대도시의 사랑법』과 영화를 접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이를 “한국적 특수성의 전시”로만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이 작품은 서울을 다루지만, 그 핵심 질문은 어디에서나 유효하다. 우리는 왜 관계를 쉽게 시작하고, 왜 쉽게 끝내지 못하는가. 대도시는 왜 개인을 자유롭게 하면서 동시에 더 고립시키는가.

[출처: 쇼박스]

미주 한인 독자에게 이 작품은 조금 더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국 사회에서 형성된 감정의 규칙은 해외에 나와서도 얼마나 지속되는가. 우리는 한국을 떠났지만, 여전히 한국적인 방식으로 사랑하고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은가.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러한 질문을 직접적으로 묻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의 선택과 침묵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답을 찾게 한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 질문을 감정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소설이 사유의 텍스트라면, 영화는 체험의 텍스트다. 두 작품을 함께 접하는 것은 단순한 비교 감상이 아니라, 동일한 이야기가 다른 문화적 경로를 통해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경험이다.

맺음말|왜 지금 다시 『대도시의 사랑법』인가

『대도시의 사랑법』이 소설로 읽히고, 영화로 다시 태어난 2024년은 우연이 아니다. 대도시는 여전히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동시에 소모시키고 있다. 사랑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더 이상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이 작품이 지금 다시 읽히고, 다시 보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과 2024년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출발하지만, 뉴욕과 LA, 그리고 전 세계의 대도시로 확장될 수 있는 이야기다. 미국 독자와 한인 독자에게 이 작품은 한국 문학과 영화의 사례를 넘어,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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