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용어로 읽는 인플레이션 시대

경제학 용어로 바라보는 현실 시리즈 1탄

서론: 물가라는 거울

2025년 현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을 기록하고 있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목표로 삼는 ‘물가 안정 기준선’인 2%와 비교하면 소폭 높은 수준이지만, 팬데믹 직후 한때 9%를 넘었던 물가 상승률과 견주면 많이 진정된 상태다. 그러나 숫자만으로 안심하기는 어렵다. 주거비와 보험료, 의료 서비스, 외식비처럼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항목들은 여전히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이처럼 물가 흐름은 단순히 ‘올랐다, 내렸다’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경제학 용어들은 그 자체로 현상을 설명하는 동시에, 정책 결정자와 시장 참여자들에게 중요한 신호를 준다. 이번 기사에서는 인플레이션을 비롯한 주요 개념 ― 디플레이션, 디스인플레이션, 하이퍼인플레이션, 코어 인플레이션, 기대 인플레이션 ― 을 역사적 맥락과 현재 상황에 빗대어 풀어본다.

인플레이션: 경제의 만성적 동반자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가 하락하면서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르는 현상이다. 사실상 모든 경제가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한다. 경제 성장과 함께 화폐 유통량이 늘어나고, 수요가 확대되며, 임금이 상승하면 자연스럽게 물가는 오른다.

중앙은행이 통상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인플레이션 수준은 연간 2% 안팎이다. 이는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면서도 화폐 가치에 대한 신뢰를 해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미국은 대규모 재정 지출과 공급망 붕괴가 겹치며 2021~2022년에 40년 만의 고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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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돌이켜보면, 인플레이션은 전쟁, 전염병, 국제적 충격이 있을 때마다 불거져왔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1970년대 오일 쇼크 시기 미국,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들이 그랬다.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라, 경제 구조 전반의 압력을 드러내는 신호이자 사회적 불안 요인의 하나로 작동한다.

디플레이션: 가격 하락의 함정

한편, 물가가 오히려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은 듣기엔 반가운 현상 같지만, 실상은 더 위험하다. 일본은 1990년대 자산 버블 붕괴 이후 장기간 디플레이션에 빠졌다. 집값과 주식 가격이 무너지고, 소비자들은 “내일이 더 싸질 것”이라며 지출을 미루었다. 기업은 매출이 줄어 투자를 중단했고, 임금이 정체되면서 경제는 장기간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

디플레이션은 경제의 심장 박동을 멈추게 한다. 미국도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비슷한 경험을 했다. 물가가 떨어지는 국면에서는 통화정책도 힘을 잃는다.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춰도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디스인플레이션: 속도가 늦춰질 뿐

디스인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율이 낮아지는 현상이다. 물가가 계속 오르긴 하지만 상승 속도가 둔화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22년에 8% 올랐던 물가가 2023년에 3%만 오르는 경우가 해당된다. 이는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디스인플레이션이 반드시 경제에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만약 경기 성장세가 둔화되는 와중에 물가 상승률이 단지 ‘덜 오르는’ 것이라면, 체감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2025년 현재 미국은 일종의 디스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했지만, 생활 필수재 가격은 여전히 부담스럽다는 점에서 서민 체감은 다르다.

하이퍼인플레이션: 극단의 사례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월간 물가 상승률이 50%를 넘는 극단적 상황을 말한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1923년 빵 한 덩이 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던 장면은 경제사 교과서의 상징이다. 당시 사람들은 지폐를 수레에 싣고 다녔고, 종이 돈은 난방용 땔감으로 쓰였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2000년대 짐바브웨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정부의 무리한 통화 발행으로 인해 100조 달러 지폐가 등장했지만, 실제로는 빵 몇 개도 살 수 없었다. 베네수엘라의 사례도 비슷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화폐 가치가 사실상 무너져 사람들은 달러화나 금, 혹은 물물교환으로 거래를 대신하게 된다.

미국이나 선진국은 이런 상황과 거리가 멀지만, 하이퍼인플레이션 사례는 통화 신뢰 상실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경고하는 역사적 거울이다.

코어 인플레이션: 본질을 보여주는 지표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 상승률을 코어 인플레이션이라 한다. 왜 제외할까? 식품과 에너지는 국제 정세, 기후, 전쟁 같은 외부 요인으로 가격이 급등락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이 급등하며 전 세계 인플레이션이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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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 인플레이션은 이런 단기적 충격을 걷어내고, 경제 내부의 구조적 압력을 측정한다. 현재 미국의 코어 인플레이션은 3%대 초반으로, 표면적 CPI보다 높다. 이는 주거비와 서비스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대 인플레이션: 예측이 현실을 만든다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심리다. 사람들이 물가가 앞으로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실제 물가가 오르게 된다. 이를 기대 인플레이션이라 한다.

예컨대 소비자들이 “내년에 더 비싸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미리 소비에 나선다. 기업은 인건비와 원자재 비용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해 미리 가격을 올린다. 노동자들은 생활비 상승을 대비해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결국 ‘예상’이 ‘현실’을 만든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미국 미시간대의 소비자 심리지수 조사에 따르면, 2025년 현재 미국인의 기대 인플레이션은 1년 후 4.9%로 나타났다. 이는 Fed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역사와 현재를 잇는 교훈

이처럼 인플레이션 관련 용어들은 경제 교과서 속 개념 같지만, 사실은 우리의 생활을 해석하는 언어다. 뉴욕의 렌트비가 왜 매달 오르는지, 뉴저지 슈퍼마켓 장바구니 값이 왜 줄지 않는지, 미국 중앙은행이 왜 금리를 쉽게 내리지 못하는지 ― 모두 이 용어들이 설명해준다.

2025년의 미국 경제는 ‘고물가의 고착화’를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경기 둔화를 우려해야 하는 복잡한 국면에 있다. 인플레이션의 역사적 교훈과 오늘의 데이터는 결국 같은 이야기를 말한다. 물가라는 거울은 언제나 경제의 본질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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