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그것을 알고 싶다

소풍의 도시락에서 세계인의 간식으로

한국인의 근대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음식: 김밥

최근 뉴욕의 한식 열풍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도시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맨해튼 미드타운의 점심시간, 긴 줄이 늘어선 푸드코트 한쪽에서는 김밥을 주문하는 현지인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비빔밥이나 불고기가 ‘대표 한식’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간편하면서도 건강한 이미지를 가진 김밥이 새로운 스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인기가 단순히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근 공개된 애니메이션 영화 〈K-Pop Demon Hunters〉에서 주인공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 음식으로 김밥이 등장하면서, 김밥은 케이팝과 K-드라마에 이어 한류의 상징적 아이콘으로까지 연결되었다. 음악과 스크린, 그리고 음식이 교차하는 문화의 지점에서, 김밥은 ‘한국적인 것’의 새로운 얼굴로 세계인 앞에 서 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김밥은 한국인의 삶과 함께 굴러온 음식이다. 바쁜 출근길 손에 쥔 편의점 삼각김밥에서, 봄 소풍날 어머니의 도시락통 속 단정히 나란히 줄지어 선 김밥 말이까지, 김밥은 단순한 간편식을 넘어 한국인의 기억과 정체성을 감싸 안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편리함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해외 이민지에서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이다. 그러나 김밥이라는 한 줄 속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와 문화적 맥락이 층층이 쌓여 있다.

김밥 그 기원의 갈림길

김밥의 시작을 두고는 늘 두 가지 이야기가 따라다닌다. 하나는 일본의 노리마키에서 기원을 찾는 설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요리가 조선 땅에 전해지며, 한국식 재료와 조리 방식이 덧입혀져 ‘김밥’으로 정착했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쪽은 김밥을 한국 고유의 밥쌈 문화에서 찾는다. 조선시대 ‘복쌈’이라 불리던 풍습, 즉 김이나 잎사귀로 밥을 싸서 먹던 습관이 현대의 김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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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아마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외래 음식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한국의 밥 문화와 어머니들의 손맛이 그것을 변형하고 다듬어 오늘의 김밥을 만든 셈이다. 무엇보다 김밥은 단순히 “누구에게서 배웠다”라기보다, “어떻게 우리 것이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음식이다.

김과 밥, 그리고 다채로운 속

김밥의 기본은 단순하다. 바삭하게 구운 김 한 장 위에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한 밥을 고르게 펴 바르고, 그 위에 재료를 줄 맞춰 올린 뒤 단정히 만다. 하지만 이 단순한 과정 속에 수많은 변주가 숨어 있다. 가장 보편적인 김밥 속은 단무지, 시금치, 당근, 우엉, 햄, 계란지단, 어묵이다. 노란색, 초록색, 주황색, 갈색, 분홍색이 어우러져 단면을 잘랐을 때 하나의 작은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김밥의 세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충무김밥은 속을 과감히 비우고 밥만 말아 따로 반찬과 곁들이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광장시장의 ‘마약김밥’은 한입 크기로 잘라 고소한 참기름 향과 매콤한 겨자소스에 찍어 먹는 독특한 매력을 자랑한다. 편의점 삼각김밥은 한 손에 쥐고 먹기 편한 형태로 진화하며 도시인의 필수품이 되었고, 치즈, 참치, 돈가스, 심지어 저탄고지용 ‘키토 김밥’까지 끝없는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소풍의 도시락에서 세계인의 간식으로

한국에서 김밥은 소풍의 상징이었다. 어린 시절, 봄이 오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시금치를 데치고, 계란을 부치고, 밥에 참기름을 섞어 김밥을 준비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펼쳐진 김밥 도시락은 단순한 점심이 아니라 가족의 사랑이자 계절의 향기였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이런 추억은 해외로 이주한 한인 사회에서도 이어졌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김밥은 한인 마트의 대표 메뉴이자, 현지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이 김밥을 “안전하고 믿음직한 음식”으로 표현하자, 미국 전역에서 김밥의 인기가 치솟았다. 트레이더 조, 코스트코, 월마트 등 대형 마트에서 냉동 김밥이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김밥은 단순한 ‘한식’이 아닌 글로벌 퓨전 스낵으로 성장했다.

정체성을 말아 올린 음식

김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의 생활 방식, 문화, 그리고 정체성이 오롯이 녹아 있는 상징이다. 재료를 조화롭게 배치해 말아 올린 김밥은 마치 다양한 배경과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 사회 안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과도 닮았다. 김밥을 자르면 드러나는 단면의 아름다움처럼, 한국 사회 역시 안을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는 다층적인 색깔을 지니고 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또한 김밥은 ‘이동’의 음식이다. 집에서 싸 나와 길 위에서, 들판에서, 도시 한복판에서 펼쳐 먹을 수 있다. 이동하는 사람들의 삶, 유랑하는 한국인의 역사와도 자연스레 맞닿는다. 어쩌면 김밥은 한국인의 근면함과 동시에 유연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은유일지도 모른다.

결론: 김밥을 다시 본다는 것

김밥은 매일 곁에서 마주하는 평범한 음식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계화, 역사, 정체성, 그리고 개인의 추억이 겹겹이 쌓여 있는 복합적인 문화 코드다. 한국 사회의 변화와 함께 재료와 형태가 달라졌고, 이민과 대중문화를 통해 세계 속으로 확산되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결국 김밥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김밥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누군가는 가족의 사랑을, 누군가는 한 끼의 간편함을, 또 누군가는 정체성의 단단한 뿌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 모든 해석을 품어내는 힘, 바로 그것이 김밥의 매력이자 우리가 다시금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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