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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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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르포】 30주년 맞은 광주비엔날레…”디자인이 세상을 끌어안다”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8월 말의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형형색색의 안내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꼈다. 개막 첫날을 맞은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람객들이 이른 아침부터 입구 앞에 긴 줄을 이뤘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 휠체어를 탄 관람객까지. 그 풍경 자체가 이미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말해주는 듯했다.

올해로 창설 30주년을 맞이한 광주비엔날레는 예술과 디자인이 단순한 미적 영역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세계 각지의 디자이너들이 한자리에 모여 “과연 디자인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답했다.

■ “너라는 세계” — 포용으로 여는 디자인의 새 지평

제11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는 ‘YOU, THE WORLD(너라는 세계)’다. 총감독을 맡은 최수신 미국 사바나예술대학(SCAD) 교수는 개막식에서 “디자인은 선택받은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며 “이번 비엔날레는 우리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 속에서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포용 디자인(Inclusive Design)’을 전면에 내세운 이번 행사는 단순히 보기 좋은 제품이나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장애인·고령자·이민자·언어 소수자 등 사회 곳곳에서 소외된 이들을 디자인의 중심에 세운다는 철학을 담았다. 전시는 세계관·삶관·모빌리티관·미래관 등 4개 주제관으로 구성됐으며,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을 비롯한 19개국에서 429명의 디자이너와 84개 기관이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 현장에서 마주한 ‘포용 디자인’의 힘

세계관에 들어서자 각국의 포용 디자인 사례들이 한눈에 펼쳐졌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 지도, 노인 친화형 스마트 가전,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재설계된 도심 보행로 모형까지. 전시물 하나하나에서 “디자인이 삶을 바꾼다”는 명제가 눈앞에서 실감됐다.

특히 핀란드 디자인 스튜디오가 선보인 ‘다국어 응급 키오스크’가 눈길을 끌었다. 한국어·영어·아랍어·스페인어 등 12개 언어로 전환되는 이 키오스크는 언어 장벽으로 긴급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이민자와 외국인을 위해 설계됐다. 뉴욕·뉴저지에서 한인 사회를 취재해온 기자로서, 이 작품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삶관에서는 일상의 작은 불편을 해소한 발명품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본의 한 디자이너가 개발한 ‘단 한 손으로 여는 약 포장지’는 관절염 환자를 위해 고안된 것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오래 붙잡았다. 덴마크 팀이 선보인 ‘청각장애인용 진동 음악 체험 의자’도 큰 호응을 얻었다. 소리 대신 진동과 빛으로 음악을 전달하는 이 의자에 앉아본 한 관람객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음악을 ‘느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모빌리티관에서는 장애인과 고령자의 이동권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이동 수단들이 전시됐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전동 휠체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AI 내비게이션 지팡이, 좁은 골목도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된 초소형 이동형 침대 등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미래관은 AI와 디자인의 결합이 만들어낼 내일을 미리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VR 기기를 쓰고 10년 후의 ‘포용 도시’를 걸어보는 체험은 성인과 어린이 모두에게 긴 줄이 이어졌다.

■ 광주의 오월 정신과 포용의 뿌리

광주비엔날레가 ‘포용’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는 이 도시의 역사가 담겨 있다. 1980년 5월, 민주화를 외치다 스러진 시민들의 도시 광주는 이후 저항과 연대,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정신을 이어왔다. 비엔날레재단 관계자는 “광주비엔날레가 탄생한 것 자체가 오월 정신의 연장선”이라며 “올해 포용 디자인이라는 주제도 그 맥락과 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관 한켠에는 1980년 이후 광주의 변화를 기록한 아카이브 코너가 마련됐다. 흑백사진 속 거리의 풍경과 현재 광주의 활기찬 문화도시 모습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역사 앞에 숙연해지면서도, 그 위에 꽃피운 예술의 힘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 광주에서 뉴욕·뉴저지 한인을 생각하다

사흘간의 취재를 마치며 자연스럽게 뉴욕·뉴저지 한인 사회를 떠올렸다. 포트리의 노인 복지관에서 만난 이민 1세대 어르신들, 영어가 서툴러 병원 창구 앞에서 망설이던 이웃들, 장애를 가지고도 당당히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 ‘포용 디자인’이라는 화두는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비엔날레 현장에서 만난 재미교포 유학생 김모(28) 씨는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며 디자인이 소외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걸 배웠는데, 이렇게 광주에서 그 가능성을 세계적 규모로 확인하니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졸업 후 뉴저지 한인 커뮤니티에서 이중 언어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 꿈도 밝혔다.

또 다른 관람객 이모(55) 씨는 뉴저지 팰리세이즈파크에서 방학을 맞아 귀국한 자녀와 함께 왔다고 했다. “아이에게 한국 문화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런 세계적인 전시를 광주에서 볼 수 있다는 게 놀랍다”며 “미국에 돌아가서도 꼭 지인들에게 알리겠다”고 했다.

■ 8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65일간의 초대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오는 11월 2일까지 65일간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계속된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입장료는 성인 기준 1만 5,000원이다. 전문 도슨트 투어도 매일 운영 중으로, 사전 예약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한국 방문을 계획 중인 뉴욕·뉴저지 동포라면 광주비엔날레를 여행 일정에 꼭 넣어볼 것을 권한다. KTX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광주송정역까지 1시간 30분이면 닿는다. 전시관 인근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취재를 마치고 광주를 떠나는 길, 버스 창밖으로 노을빛에 물든 무등산이 보였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 모두를 위한 예술을 외치던 광주의 함성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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