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의 제국에서 기술 생존자로- Kodak

필름으로 세계를 지배한 기업, 기술 변화 앞에서 다시 길을 묻다

버튼 하나로 세상을 바꾸다: 코닥이 만든 20세기와 ‘Kodak Moment’의 탄생

1888년,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 조지 이스트먼은 사진이라는 기술을 전문가의 손에서 대중의 일상으로 끌어내리겠다는 목표로 회사를 세운다. 그의 발상은 단순했지만 혁명적이었다. “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 사용자는 셔터만 누르면 되고, 필름 현상과 인화는 회사가 책임진다는 이 문장은 곧 코닥의 비즈니스 모델이자 철학이 되었다.

[출처: Museums Victoria]

코닥은 사진을 ‘기술’이 아니라 ‘경험’으로 바꾸었다. 롤 필름의 상용화, 휴대 가능한 카메라, 대량 인화 시스템은 사진을 가족 행사, 여행, 일상의 기록으로 확장시켰다. 이 과정에서 코닥은 단순한 제조사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표준을 만들어냈다. “Kodak moment”라는 표현이 일상어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생에서 기록할 가치가 있는 순간을 의미했고, 그 순간을 담는 방식은 곧 코닥이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코닥은 사실상 사진 산업 그 자체였다. 필름 시장 점유율은 지역에 따라 70~90%에 달했고, 카메라·필름·현상·인화로 이어지는 수직 통합 구조는 막대한 현금 흐름을 창출했다. 코닥은 기술 기업이자 제조 기업이었고, 동시에 미국 중산층 소비문화의 상징이었다. 로체스터 지역은 코닥을 중심으로 성장했고, 수만 명의 고용이 이 회사 하나에 의해 유지되었다.

이 시기의 코닥은 실패할 수 없는 기업처럼 보였다. 기술력, 브랜드, 유통망, 자본력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문제는 바로 그 완벽해 보이는 구조가 이후 변화의 발목을 잡게 된다는 점이었다.

디지털을 가장 먼저 보았던 회사가 왜 가장 늦게 움직였나

코닥 몰락 서사의 핵심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는 1975년, 코닥의 엔지니어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 사실은 오늘날에도 경영학 교과서에서 반복해서 인용된다. 문제는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선택의 실패였다.

[출처:Hongwei FAN]

디지털 카메라는 당시로서는 미완성의 기술이었고, 무엇보다 코닥의 핵심 수익원인 필름 사업을 직접적으로 위협했다. 디지털 기술을 상용화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선택처럼 보였다. 코닥은 디지털을 연구했지만, 본격적인 사업 전환은 계속 미뤘다. 내부적으로는 “언젠가는 필요할 기술”이었지만, 외부 시장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일본 기업들이 주도했다. 소니, 캐논, 니콘은 필름에 대한 이해보다 전자 기술과 센서, 소프트웨어에 집중했고, 소비자는 빠르게 새로운 기술에 적응했다. 사진은 더 이상 인화되지 않아도 되었고, 컴퓨터와 인터넷은 이미지를 즉각 공유 가능한 데이터로 바꾸었다.

코닥은 뒤늦게 디지털 시장에 진입했지만, 이미 게임의 규칙은 바뀐 뒤였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카메라조차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빠르게 대체되었다는 점이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다시 모바일로 이어지는 변화의 속도는 코닥의 조직 구조와 의사결정 체계가 감당하기엔 너무 빨랐다.

결국 2012년, 코닥은 미국 연방 파산법 Chapter 11을 신청한다. 이는 단순한 기업 파산이 아니라, 20세기 산업 질서의 한 축이 무너진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코닥은 기술을 몰라서 실패한 회사가 아니었다. 기술의 의미를 기존 비즈니스 모델 밖에서 재정의하지 못한 회사였다.

파산 이후의 생존 전략: ‘사진 회사’를 버리고 ‘기술 회사’가 되다

파산 보호 신청 이후 코닥은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회사인가.” 더 이상 소비자용 카메라와 필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대신 코닥은 자신들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보이지 않는 자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핵심은 화학 공정 기술, 정밀 코팅 기술, 소재 공학, 그리고 방대한 특허 포트폴리오였다. 코닥은 사진을 찍는 회사라기보다,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처리하는 기술 기업이었고, 그 기술은 사진 산업 밖에서도 활용될 수 있었다.

[출처: 코닥 홈페이지]

이후 코닥은 B2B 중심의 산업용 기업으로 재편된다. 상업·산업 인쇄 분야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패키징 프린팅, 상업용 디지털 인쇄, 고해상도 잉크젯 기술 등은 소비자에게는 낯설지만, 제조·물류·유통 산업에서는 핵심적인 영역이다. 코닥은 더 이상 브랜드를 앞세운 소비자 기업이 아니라, 기술을 공급하는 기업으로 자신을 재정의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제약·화학 제조 분야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미국 정부가 의약품 공급망의 자국화를 강조하면서, 코닥이 가진 화학·제조 역량이 재조명된 것이다. 논란과 정치적 이슈를 동반하긴 했지만, 이는 코닥이 여전히 ‘제조 역량을 가진 미국 기업’으로서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배터리 소재, 에너지 관련 기술에도 도전하고 있다. 이는 단기간의 수익을 기대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제조 기술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단계에 가깝다. 코닥은 더 이상 단일 산업에 의존하지 않는 대신, 자신들의 기술을 여러 산업에 분산 적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코닥은 부활했는가, 아니면 축소된 생존인가

오늘의 코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기업의 위상을 기준으로 본다면, 코닥은 결코 과거로 돌아오지 못했다. 브랜드의 상징성은 남아 있지만, 소비자 일상에서의 존재감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코닥은 완전한 소멸을 피한 드문 사례이기도 하다. 수많은 제조 대기업들이 기술 변화 앞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코닥은 규모를 줄이고 정체성을 바꾸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이는 화려한 부활 신화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생존의 기록에 가깝다.

[출처: Jakob Owens]

코닥의 현재는 질문을 던진다. 기술 혁신은 발명 그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조직의 선택과 상상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했지만, 디지털 시대의 기업이 되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 실패 이후에야 비로소, 사진이라는 틀을 벗어난 기술 기업으로 자신을 다시 설계하고 있다.

오늘날 코닥은 더 이상 세상을 놀라게 하는 혁신의 아이콘은 아니다. 대신, 산업 변화의 속에서 어떻게 실패하고,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가 되었다. 필름의 제국은 무너졌지만, 그 잔해 위에서 코닥은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술은 바뀌지만, 기업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오늘의 코닥을 정의하고 있다.

뉴욕앤뉴저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Previous Story

뉴욕 옆에서 공립대의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다

Next Story

포트리에서 만나는 경계의 미학

Latest from Featured

철도 위에 세운 도시 – Hudson Yards

(허드슨 야드 3부작 기획 ①) 이 기사는 허드슨 야드를 관광지나 부동산 개발 사례가 아닌, ‘도시가 스스로를 확장하는 방식’에 대한 실험으로 다룬다. 허드슨 야드는 땅을 재개발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땅이 없던 곳에 도시를 얹은…

포트리에서 만나는 경계의 미학

포트리 한식의 다음 장(章), ‘컨템포러리’라는 단어 너머 뉴저지 포트리는 오랫동안 한인 외식 문화의 중심지였다. 불판 위에서 연기가 오르고, 푸짐한 반찬이 테이블을 채우는 풍경은 이 지역 한식당의 전형으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러나 최근…

뉴욕 옆에서 공립대의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다

뉴욕의 그림자 속에서 성장한 주립대, 몽클레어의 역사와 정체성 뉴저지 북부의 조용한 주거 도시 몽클레어(Montclair)에 자리 잡은 몽클레어 주립대학교는 1908년 교사 양성 기관으로 출발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공교육 확대 흐름 속에서 설립된 이…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