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와 이민의 기억 위에 세워진 도시의 원형
호보큰의 역사는 화려한 스카이라인보다 먼저 항구의 소음과 노동의 리듬으로 시작됐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호보큰은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이 미국이라는 새로운 삶에 발을 디디는 관문이었다. 허드슨강을 낀 이 작은 도시는 조선·운송·철도 산업이 밀집한 산업 도시로 성장했고, 독일계와 이탈리아계를 중심으로 한 이민자 공동체가 촘촘하게 뿌리를 내렸다. 그들이 세운 맥주 양조장과 창고, 항만 시설은 한때 호보큰의 경제를 지탱했고, 도시의 풍경을 규정했다.

이민과 노동의 서사는 호보큰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뉴욕으로 건너가기 전 잠시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일하고 살며 가족을 꾸리는 생활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좁은 면적에 주거와 일터, 상점과 종교시설이 겹겹이 쌓였고,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감은 공동체의 밀도를 높였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그 촘촘함은 우연이 아니다. 호보큰의 도시 구조는 처음부터 ‘작지만 완결된 생활권’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이 역사적 토대는 호보큰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다. 이 도시는 한때 쇠락했다. 산업 구조의 변화와 항만 기능의 축소는 일자리를 줄였고, 낡은 건물과 인프라는 도시를 뒤처진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쇠락의 흔적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대신 보존과 재활용이라는 선택을 통해, 호보큰은 자신의 과거를 미래로 번역했다. 붉은 벽돌과 철제 난간, 낮은 건물의 스케일은 오늘날 ‘뉴욕 옆의 소도시’라는 정체성의 밑바탕이 된다.
뉴욕을 바라보는 거리감: 지리와 교통이 만든 생활의 리듬

호보큰의 지리적 위치는 늘 비교의 대상이 된다. 허드슨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맨해튼과 마주한 이 도시는,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다른 리듬을 지닌다. 강 건너 보이는 미드타운과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은 압도적이지만, 호보큰의 워터프론트는 그 장면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조의 거리에서 뉴욕을 감상하게 만든다. 이 ‘보는 위치’의 차이가 생활의 감각을 바꾼다.
교통은 그 감각을 일상으로 굳힌다. PATH 트레인은 맨해튼과의 이동을 짧게 만들고, 페리는 출퇴근을 하나의 풍경으로 바꾼다. 뉴욕에서 일하고 호보큰에서 사는 선택은 더 이상 타협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과 공간을 재배치하는 전략에 가깝다. 붐비는 지하철을 피하고, 도보 생활을 회복하며, 저녁의 밀도를 높이는 선택—호보큰은 그런 생활 방식을 가능하게 한다.
도시의 중심축인 워싱턴 스트리트는 이 리듬을 가장 잘 보여준다. 상점과 식당, 카페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이 거리에서는 자동차보다 사람이 주인공이다. 출퇴근 시간의 분주함과 주말의 느긋함이 같은 장소에서 공존하고, 일상과 방문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흐려진다. 호보큰은 관광 도시가 아니지만, 방문을 거부하지 않는다. 대신 생활의 속도를 강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손님을 맞는다.
워터프론트의 공원과 산책로는 도시의 숨을 고르게 한다. 허드슨강을 따라 이어지는 보행로는 맨해튼의 야경을 가장 가까이서, 그러나 가장 차분하게 마주하는 자리다. 이곳에서의 저녁은 소음보다 바람이 먼저 다가오고, 사진보다 대화가 오래 남는다. 호보큰의 강점은 바로 이 ‘거리감의 설계’에 있다. 가까워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적당히 떨어져 있어 가능한 삶의 질이 이 도시에 축적된다.
젠트리피케이션 이후의 호보큰: 주거, 문화, 그리고 선택의 비용
1990년대 이후 호보큰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산업 도시의 유휴 공간은 주거와 상업으로 전환되었고, 젊은 전문직과 창의 노동자가 유입되었다. 그 결과는 명확했다. 도시의 이미지가 바뀌고, 부동산 가치가 상승했으며, 생활 인프라가 고도화되었다. 동시에 선택의 비용도 커졌다. 호보큰의 주거비는 뉴저지 평균을 크게 웃돌고, 렌트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 변화는 단순한 ‘비싸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호보큰의 주거는 밀도와 접근성, 생활 편의가 결합된 패키지다. 대형 단독주택보다는 콘도와 타운하우스가 주류를 이루고, 면적보다 위치와 동선이 가치를 만든다. 도보로 학교와 상점, 공원을 오갈 수 있는 구조는 자동차 의존을 낮추고, 생활의 선택지를 늘린다. 그만큼 주거는 ‘공간’이 아니라 ‘방식’으로 평가된다.
문화 역시 이 변화의 한 축이다. 체인보다 로컬이 강한 음식점과 카페, 동네 바의 지속성은 호보큰의 미덕이다. 유행을 좇는 대신, 반복 가능한 일상을 지향한다. 이탈리안과 아메리칸을 중심으로 한 식문화는 이민의 역사와 자연스럽게 맞물리고, 브런치 문화와 소규모 공연은 도시의 젊은 에너지를 담아낸다. 이곳의 문화는 과시보다 친밀함을 택한다.
물론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늘도 존재한다. 오래된 주민과 신규 유입층의 간극, 주거비 상승이 만든 배제의 문제는 도시가 감당해야 할 과제다. 호보큰은 이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지 못했다. 다만 도시의 크기가 작기에, 논의와 합의의 회로가 비교적 빠르게 작동한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공공 공간의 확장과 보행 중심 정책, 커뮤니티 이벤트는 이 도시가 ‘함께 사는 법’을 여전히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나트라의 도시, 그리고 오늘의 정체성
호보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프랭크 시나트라. 그는 이 도시에서 태어나 세계의 무대를 누볐다. 중요한 것은 호보큰이 그를 ‘관광 상품’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나트라는 도시의 장식이 아니라, 이민과 노동의 서사가 만들어낸 가능성의 증거로 남아 있다. 호보큰의 자부심은 과시가 아니라, 기억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오늘의 호보큰은 과거를 지우지 않는다. 항구의 흔적과 낮은 스카일라인, 도보의 리듬을 유지한 채, 뉴욕과 다른 선택지를 제시한다. 이 도시는 ‘뉴욕의 대안’이 아니라 ‘뉴욕과 다른 답’을 제안한다. 더 크게, 더 높게가 아니라 더 촘촘하게, 더 가깝게. 출퇴근의 효율과 저녁의 밀도를 동시에 붙잡는 삶—호보큰은 그 균형을 일상으로 만든다.
도시를 소개하는 일은 결국 삶의 방식을 소개하는 일이다. 호보큰은 화려한 약속을 하지 않는다. 대신 반복 가능한 하루를 제공한다. 강 건너 뉴욕을 바라보며, 자신의 속도를 지키는 선택. 이 작은 도시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뉴욕 옆에 있지만 뉴욕이 아니기에 가능한 삶, 그 차이가 호보큰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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