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8일,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 《Maybe Happy Ending》이 최우수 뮤지컬(Best Musical)을 포함해 총 6개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어 원작을 기반으로 한 이 작품은 낯선 제목과 비인간 주인공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브로드웨이의 심장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Maybe Happy Ending》은 사용이 종료된 헬퍼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미래 서울의 외곽에서 만나 함께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이들은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되는 존재임에도 서로를 통해 사랑과 상실을 경험하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로 성장한다. 간결한 이야기 구조 속에 감정의 복잡성과 존재론적 질문을 담아낸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관객들에게 낯설지만 보편적인 감동을 전했다.
뮤지컬로서의 구조도 주목받았다. 감정을 극대화하는 대신 절제된 연출과 음악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기존 브로드웨이 대형 뮤지컬들이 의존해 온 장르적 관습과 대조된다. 그 결과, 관객은 화려함보다 내면의 울림에 집중하게 되며, 이는 《Maybe Happy Ending》만의 정체성이 되었다.

이번 수상은 창작 뮤지컬이 브로드웨이 시장에서 얼마만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현재 브로드웨이는 디즈니, 픽사 등 거대 IP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상황이다. 그러나 《Maybe Happy Ending》은 오리지널 스토리, 무명에 가까운 창작진, 설명이 쉽지 않은 주제라는 ‘불리한 조건’을 모두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성과 비평성 양측에서 모두 성과를 거뒀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브로드웨이가 ‘안전한 선택’에서 ‘새로운 서사’로 눈을 돌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로 해석한다. 이번 시상식에서 《Maybe Happy Ending》은 최우수 뮤지컬 외에도 연출상(Best Direction of a Musical), 오리지널 악보상, 무대 디자인상, 조명 디자인상, 오케스트레이션상 등 주요 예술 부문을 포함해 총 6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는 단순한 인기작이 아닌 ‘완성도 높은 예술작’으로서의 인정을 의미한다.

연출을 맡은 마이클 아든은 2023년 《Parade》에 이어 두 번째 연출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로봇이라는 비인간 캐릭터에게 감정의 섬세함을 부여하며, 미니멀한 무대 위에 정교한 감정선을 구축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음악과 조명 또한 내면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관객에게는 무대 그 자체가 이야기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제공했다.
작곡가 윌 애런슨과 작사가 박천휴가 만든 음악은 전통적인 뮤지컬 넘버 구조를 따르지 않고, 감정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화된 흐름으로 말하는 것’처럼 풀어낸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마지막 곡 〈Maybe Happy Ending〉은 특히 관객과 비평가 모두에게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긴 장면으로 꼽힌다.
이번 수상은 한국 뮤지컬계에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Maybe Happy Ending》은 2020년 CJ문화재단 낭독 공연을 시작으로 서울에서 초연되었으며, 일본 공연을 거쳐 애틀랜타에서 영어 버전이 처음 제작되었다. 이후 뉴욕 현지 프로듀서와 연출진이 참여한 공동 제작 과정을 거쳐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의 글로벌 진출은 기존의 라이선스 수출 방식이 아닌 창작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공동제작을 염두에 둔 기획 방식이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향후 한국 뮤지컬 산업이 단순한 ‘해외 수출’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글로벌 공동 콘텐츠 제작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브로드웨이 시장에서도 《Maybe Happy Ending》의 성공은 큰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토니상 수상작은 일반적으로 공연 기간이 연장되며, 북미 투어 및 글로벌 투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번 수상으로 인해 북미 외에도 유럽, 아시아 시장에서의 판권 판매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일부 제작사들은 이미 영화화 및 드라마화 가능성에 대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작품은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 흐름 속에서 공연예술이라는 새로운 축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K-pop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던 한류 콘텐츠의 범주에 서사 중심의 무대 예술 콘텐츠가 새롭게 포함되는 변화의 시작점이 된 셈이다.
《Maybe Happy Ending》의 제목은 “어쩌면 행복한 결말일지도 모른다”는 뜻을 품고 있다. 불확실성과 열린 결말은 이 작품의 본질이기도 하다. 하지만 2025년 6월의 라디오시티 무대 위에서 이 작품이 거머쥔 6개의 토니 트로피는, 한국 창작 뮤지컬에게는 분명한 현재형의 해피엔딩이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다음 이야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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