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의 탄생과 진화
암호화폐의 대표 주자인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높은 가격 변동성으로 인해 일상적인 결제 수단이나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사용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보다 안정적인 디지털 자산에 대한 요구가 커졌고, 그 결과물이 바로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이다. 이름 그대로 ‘안정된 코인’을 의미하는 이 자산은 기존 암호화폐의 변동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법정화폐나 실물 자산에 가치를 연동시켜 가격을 고정화시킨 디지털 토큰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법정화폐 담보형’으로, 발행사가 미국 달러 등의 법정화폐를 실제 은행 계좌에 예치한 후 이에 상응하는 수량의 토큰을 발행하는 구조다. 대표적으로는 USDT(테더), USDC(서클) 등이 있으며, 이들은 1달러에 고정된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었다. 두 번째는 ‘암호화폐 담보형’이다. 이는 다른 암호화폐를 초과 담보로 제공함으로써 변동성을 흡수하는 방식이며, DAI(MakerDAO)가 대표적이다. 세 번째는 ‘알고리즘 기반형’으로,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급량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TerraUSD(UST)가 이 방식을 택했으나, 2022년 붕괴 사태로 인해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다. 마지막은 금, 은 등 실물 자산을 기반으로 발행되는 ‘상품 담보형’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탈중앙화 금융(DeFi)에서는 담보 자산으로, 송금이나 지급 결제 수단으로, 또는 암호화폐 거래소 내 거래쌍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가격 안정성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에서 미국 달러를 대체하는 디지털 자산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는 전통 금융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지며, 디지털 달러화 확산이라는 부수 효과를 낳고 있다.
미국의 스테이블 코인 전략: 달러 패권과 정책 통제의 결합
미국이 최근 스테이블 코인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가장 중심이 되는 배경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현재 대부분의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에 고정되어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글로벌 경제에서 달러의 영향력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특히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 통화 불안정 국가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법정화폐보다 더 널리 사용되는 현상이 관측되고 있으며, 이는 미국 입장에서는 달러화 수요를 강화하는 긍정적 흐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테이블 코인은 민간이 주도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금융패권 강화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인 연준(Federal Reserve)은 아직 공식적인 디지털 달러(CBDC)를 발행하지는 않았지만, 스테이블 코인이 일정 부분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주시하고 있다.
또한 최근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CBDC)를 본격적으로 내놓으며 국제 무대에서 디지털 화폐 패권 경쟁을 주도하려는 움직임도 미국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은 민간 주도의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 디지털 통화 영역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계산을 하고 있다. 특히 미국 재무부와 연준은 스테이블 코인을 규제 안으로 포섭하면서도 그 혁신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정책을 수립하려는 노력을 지속 중이다.
규제 공백과 정책적 대전환: GENIUS 법안의 의미
스테이블 코인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규제의 필요성 또한 부각되고 있다. 2022년 발생한 TerraUSD(UST) 붕괴 사태는 스테이블 코인이 충분한 담보 없이 알고리즘만으로 운영될 경우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 사태 이후 미국 정치권과 금융 당국은 스테이블 코인 규제의 시급성을 공감하게 되었고, 이 흐름은 최근 ‘GENIUS Act(Guaranteed and Enforceable Neutral Issuance Under Supervision Act)’의 상원 통과로 이어졌다.

2025년 6월, 미국 상원은 찬성 68표, 반대 30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다. GENIUS 법안은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 기준, 담보 자산의 종류 및 보유 방식, 월간 재무 공시 의무, 외부 감사 기준 등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미국 내 대형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는 일정 규모 이상이 될 경우 연준 혹은 재무부 산하 감독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발행된 스테이블 코인은 1달러 가치 유지를 위해 전액 현금 또는 미국 국채로 담보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스테이블 코인을 단순히 민간 암호화폐로 보지 않고, 디지털 금융 인프라로 편입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하원에서도 해당 법안은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서명만 남은 상태다. 법안이 본격 시행될 경우, 시장에서는 소위 ‘그림자 은행’ 역할을 하던 일부 스테이블 코인 업체들이 사라지고, 보다 투명하고 규범화된 생태계가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금융의 미래: 스테이블 코인의 확장성과 과제
스테이블 코인은 단순한 암호화폐를 넘어, 디지털 경제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크로스보더 결제, 소액 송금, 탈중앙화 금융(DeFi), NFT 결제, 실물 자산 토큰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이 확장되고 있다. 미국의 주요 금융기관들도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JP모건은 자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한 스테이블 코인 기반 결제 시스템을 실험 중이다. 아마존, 월마트 등 대형 리테일 기업들도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한 내부 결제 수단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첫째, 스테이블 코인의 본질적인 신뢰성 문제다. 테더(USDT)의 경우, 과거 여러 차례 담보 자산의 구성과 투명성 문제로 비판을 받아왔다. 둘째, 기술적 해킹이나 스마트 계약 오류에 따른 보안 리스크도 존재한다. 셋째, 다양한 국가 간 규제 기준의 불일치도 스테이블 코인의 글로벌 확산에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스테이블 코인을 디지털 달러 시대의 전초 기지로 삼고, 관련 산업의 육성 및 규제 체계를 정비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GENIUS 법안이 시행되면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포괄적인 스테이블 코인 법적 체계를 갖춘 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며, 이는 디지털 화폐 주도권 경쟁에서 중요한 우위를 점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이제 단순한 암호화폐의 한 종류가 아니라, 금융 정책, 통화 전략, 디지털 경제 구조에까지 깊숙이 침투한 핵심 변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의 정책 방향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규제하면서도 활용하는 ‘현실적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앞으로 글로벌 금융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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