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미국은 세계 철도의 상징이었다. 유럽의 산업혁명과 함께 급격히 성장한 철도망은 미국 대륙에서도 “국가 건설의 동맥” 역할을 했다. 1869년 유타주 프로몬토리 서밋에서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되던 순간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로 기록된다.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이어진 철길은 그 자체로 국가의 통합을 의미했고, 서부 개척과 이민자 유입, 그리고 자원의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 당시 신문과 정치인들은 철도를 “문명의 척추”라고 불렀으며, 철도가 없는 곳에는 도시도 존재할 수 없었다.

미국의 철도망은 폭발적으로 확장됐다. 1900년대 초반에는 총연장이 25만 마일을 넘었으며, 이는 세계 최장 규모였다. 각 지역의 경제는 철도를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중서부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시카고를 거쳐 동부 도시로 운송되었다. 석탄, 철강, 목재, 면화 등 원자재는 철도 없이는 시장에 도달할 수 없었다. 이 시기 미국 철도 회사들은 거대한 자본을 축적했고, 일부 회사들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실상 준정부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철도 산업은 곧 미국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제도적, 경제적 축이었다.
그러나 미국 철도의 번영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바로 ‘여객보다 화물’이었다. 유럽이 인구 밀집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여객 중심의 철도망을 발달시킨 것과 달리, 미국은 넓은 국토와 원자재 수송 필요성 때문에 화물 중심으로 발전했다. 길게 연결된 곡물 열차, 석탄 열차, 컨테이너 열차가 미국 철도의 주역이었고, 여객 열차는 보조적 역할에 불과했다. 대륙횡단철도조차도 여객보다 화물 운송에서 더 큰 수익을 창출했다. 이 구조는 훗날 고속철도 도입에 큰 장애물이 된다.

20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며 상황은 달라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는 새로운 교통 수단에 주목했다. 자동차와 항공기였다. 전쟁 기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한 항공 기술은 민간 여객기 시장에 빠르게 적용되었고, 전후 경제 성장 속에서 중산층은 자동차를 소유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와 공항은 새로운 국가 발전의 인프라로 부상했다. 반대로 철도는 점점 낙후 산업으로 밀려났다. 1940년대 후반부터 여객 철도 이용률은 급감했고, 철도 회사들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서비스를 줄였다. 결국 1971년, 미국 정부는 철도 여객 부문의 붕괴를 막기 위해 ‘암트랙(Amtrak)’을 설립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미 미국의 철도는 ‘화물 제국’이자 ‘여객의 몰락’이라는 뚜렷한 구조적 특징을 굳혀버렸다.
고속철도의 부재와 정치의 실패
고속철도의 역사는 일본에서 시작된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개통된 신칸센은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로, 일본의 경제 부흥과 기술적 자신감을 상징했다. 프랑스 역시 1981년 파리–리옹 구간에 떼제베(TGV)를 개통하며 고속철 시대에 합류했다. 이후 스페인, 독일, 중국 등도 경쟁적으로 고속철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철도사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왜 뒤처졌을까?
첫 번째 이유는 정치적 의지 부족이다. 미국에서도 1960~70년대 고속철도 도입 논의가 있었다. 당시 워싱턴–보스턴 구간에서 고속 여객 서비스 실험이 추진되었고, 이후 암트랙이 운영하는 ‘애셀라 익스프레스(Acela Express)’가 2000년 운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애셀라는 유럽과 일본의 진정한 고속철도와는 달랐다. 최고 속도는 시속 150마일(240km)에 이르지만, 이는 제한된 구간에서만 가능했고, 대부분은 선로 노후화와 규제 탓에 시속 100마일(160km) 수준에 머물렀다. 오늘날에도 애셀라는 ‘준고속’ 수준으로 평가된다.

정치적 반대는 고속철도 건설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고속철도는 막대한 초기 비용을 필요로 한다.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8년 주민투표에서 승인된 이 사업은 원래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를 연결하는 구간을 약 330억 달러, 2020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됐다. 그러나 정치적 갈등, 환경 규제, 토지 수용 문제, 그리고 미국산 자재 의무 조항 등으로 인해 비용은 1,100억 달러 이상으로 폭증했고, 완공 시점도 2030년대 이후로 미뤄졌다. 정치인들은 선거 주기마다 고속철도 예산을 ‘낭비’로 공격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업 방향은 뒤집혔다. 도로와 항공에 비해 철도는 ‘정치적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규제와 제도다. 미국의 철도는 오랫동안 민간 기업이 운영해 왔고, 정부는 간접적 감독만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철도는 수많은 규제에 묶였고, 새로운 인프라 건설보다는 기존 노선 유지와 보수에 치중하게 되었다. 여객 전용 고속선을 건설하려면 토지 수용, 환경 영향 평가, 안전 인증 등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반면 일본과 유럽은 국가 주도의 철도 정책을 통해 고속철도망을 단기간에 구축할 수 있었다.
화물 제국의 그늘과 지리적 장벽
미국이 고속철도에 실패한 또 다른 이유는 구조적 제약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 철도는 화물 중심으로 발전했다. 오늘날에도 미국 화물 철도는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수익성이 높은 시스템이다. 대규모 곡물, 석탄, 원유, 컨테이너를 대륙 횡단하는 길고 무거운 화물 열차는 미국 경제의 혈관과 같다. 문제는 이 선로를 여객 열차가 함께 사용한다는 점이다.

화물과 여객이 같은 선로를 쓰면, 여객 열차는 무거운 화물 열차와 충돌 가능성에 대비해 훨씬 더 무겁게 제작되어야 한다. 이는 고속 운행을 어렵게 만든다. 유럽과 일본의 고속철도가 가벼운 차체와 전용선 덕분에 300km/h 이상을 달릴 수 있는 것과 달리, 미국은 구조적으로 고속 운행이 제한되는 셈이다. 미국 연방철도청(FRA)은 충돌 안전 기준을 매우 엄격히 적용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미국 여객차량은 유럽의 고속철도 차량보다 최대 30~40% 더 무겁다.
지리적 조건도 중요한 변수다. 유럽이나 일본은 도시 간 거리가 300~500km로, 고속철도의 경제성이 가장 높은 구간이다. 반면 미국은 주요 도시들이 광활한 대륙에 흩어져 있다. 뉴욕–워싱턴 DC 구간은 고속철도에 적합하지만, 뉴욕–시카고, 시카고–댈러스,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같은 구간은 거리가 너무 길거나 인구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이런 조건에서는 항공이 더 빠르고 효율적인 선택지가 된다.
다시 철도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그렇다고 미국의 고속철도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최근 기후 변화 대응, 교통 혼잡, 도시 집중화라는 새로운 과제가 고속철도의 필요성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캘리포니아 프로젝트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민간 주도의 시도는 눈길을 끈다. 플로리다의 브라이트라인(Brightline)은 미국에서 드물게 성공한 고속 여객 서비스로 평가된다. 브라이트라인은 마이애미와 올랜도를 연결하며, 향후 탬파까지 연장될 예정이다. 또한 라스베이거스–로스앤젤레스를 잇는 고속철도 사업도 본격화되고 있다. 이 노선은 관광 수요가 집중되는 구간으로, 미국 고속철도의 상징적 첫걸음이 될 수 있다.
텍사스에서도 댈러스와 휴스턴을 잇는 고속철도 계획이 추진 중이다. 일본 JR 도카이가 기술을 제공하며, 신칸센 시스템이 미국에 도입될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다만 여전히 토지 수용과 정치적 반대라는 전통적 장애물이 존재한다.

암트랙 역시 기존 인프라를 점진적으로 개선하며 속도 향상과 서비스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노스이스트 코리더(NEC)’ 구간은 향후 업그레이드를 통해 진정한 고속 서비스에 가까워질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철도 인프라 투자에 적극적이며, 2021년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IIJA)’을 통해 암트랙과 철도 현대화에 수백억 달러를 배정했다.
미국은 19세기 철도의 나라였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자동차와 항공의 나라로 전환되었고, 철도는 화물 중심의 제도로 축소되었다. 이제 21세기, 기후 위기와 교통 혼잡, 도시 집중화가 철도의 부활을 요구한다. 미국의 고속철도가 현실이 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하지만 한때 세계에서 가장 긴 철길을 자랑했던 나라가 다시 ‘철도의 르네상스’를 열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시선은 미국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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