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하는 쇼핑몰, 버겐 카운티가 보여주는 미국의 단면

경험 을 원하는 소비자... 그러나 쇼핑몰은 시간을 놓쳤다.

한때 ‘소비의 성지’였던 버겐 카운티

뉴저지 북부의 버겐 카운티는 뉴욕시와 허드슨 강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다. 이곳은 뉴저지에서 가장 부유한 카운티 중 하나이자, 전통적으로 대형 쇼핑몰의 중심지였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웨스트필드 가든 스테이트 플라자(Westfield Garden State Plaza)는 1957년 개장 당시 동부 최대의 쇼핑몰로 주목받았다. 메이시스(Macy’s), JCPenney, 노드스트롬(Nordstrom) 등 유명 백화점과 수백 개의 브랜드 매장이 들어서며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또한 버겐 타운 센터(Bergen Town Center), 파라무스 파크 몰 등 인근 대형 몰들은 뉴욕·뉴저지 주민들뿐만 아니라 관광객까지 끌어모으며, 지역 경제의 심장 역할을 해왔다.

쇼핑몰은 단순한 구매 공간을 넘어 가족 나들이와 사회적 교류의 중심이었다. 주말이면 부모는 아이들과 함께 푸드코트와 영화관을 찾았고, 청소년들은 몰의 카페와 매장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문화를 공유했다. 버겐 카운티의 쇼핑몰은 곧 지역 공동체의 생활 무대였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그러나 이런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버겐 카운티의 몰은 여전히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점점 더 많은 공실과 유동인구 감소라는 현실을 마주한다.

붕괴의 징후 ― 온라인과 팬데믹의 이중 타격

버겐 카운티 몰의 몰락은 단순히 한 지역 현상이 아니다.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구조적 변화가 집약된 결과다.

첫 번째 원인은 전자상거래(E-commerce)의 폭발적 성장이다. 아마존(Amazon)을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은 소비자들의 구매 습관을 송두리째 바꿨다.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상품을 집 앞까지 배송받을 수 있는 시대에, 거대한 몰을 찾아가는 것은 점점 번거로운 선택이 되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두 번째는 앵커 테넌트의 붕괴다. 시어스(Sears)와 JCPenney 같은 전통적 백화점이 연이어 파산하거나 대규모 점포를 축소하면서, 몰의 핵심 동력이 사라졌다. 가든 스테이트 플라자에서도 과거 수천 명을 끌어들였던 대형 매장 자리가 텅 비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앵커 테넌트 붕괴는 곧 소규모 매장 철수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유동인구 감소를 부르는 악순환을 낳았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몰락을 가속화시켰다. 봉쇄와 이동 제한으로 수개월간 쇼핑몰 문이 닫히자 소비자들은 온라인 쇼핑에 완전히 적응했다.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굳이 몰을 찾지 않는다. 일부 매장은 다시 문을 열었지만, 예전만큼의 활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버겐 카운티 몰의 현장은 이 모든 요인이 중첩된 결과를 보여준다. 여전히 크고 화려하지만, 내부에는 점점 더 많은 빈 공간과 폐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소비 문화의 변화 ― 경험을 원하지만 몰은 늦었다

몰의 몰락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 문화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밀레니얼과 Z세대는 과거처럼 물건 자체의 소유보다 경험과 체험을 중시한다. 카페, 레스토랑, 체험형 전시, 피트니스 같은 공간이 젊은 세대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많은 쇼핑몰은 여전히 전통적 소매점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었고, 세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버겐 카운티의 아메리카 드림(American Dream Mall)은 이러한 흐름을 의식해 대형 워터파크, 실내 스키장, 테마파크를 도입하며 “체험형 몰”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막대한 건설 비용과 낮은 방문객 수로 인해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곳은 몰이 아니라 거대한 테마파크지만, 쇼핑은 온라인에서 한다”는 말이 돌기도 한다.

이 대비는 쇼핑몰이 처한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경험 소비를 받아들이지 못한 몰은 쇠퇴했고, 받아들인 몰은 새로운 형태로 변신했지만 재정적 부담과 수요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버겐 카운티의 교훈 ― 몰락 이후 무엇을 세울 것인가

버겐 카운티 몰의 사례는 미국 사회가 직면한 질문을 보여준다. “몰락한 쇼핑몰 자리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

일부 전문가들은 빈 몰을 주거 공간, 사무실, 커뮤니티 센터, 심지어 물류창고로 재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실제로 뉴저지 일부 지역에서는 오래된 몰이 아파트 단지나 의료 시설로 전환되기도 했다. 대규모 주차장과 넓은 건물을 갖춘 몰은 새로운 도시 자원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정서적 반발도 존재한다. 쇼핑몰은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라, 세대의 추억과 공동체의 기억이 깃든 장소다. 버겐 카운티 주민들 중 상당수는 어린 시절 가족과 주말을 보낸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한다. 몰락은 경제적 쇠퇴인 동시에, 문화적 상실이기도 하다.

버겐 카운티의 몰은 이제 과거처럼 ‘소비의 성지’가 아니라, 새로운 도시 비전의 시험대로 바뀌고 있다. 이 변화는 불가피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의 목소리와 문화적 기억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맺음말

버겐 카운티의 쇼핑몰 몰락은 미국 전역에서 진행되는 구조적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전자상거래의 부상, 앵커 테넌트 붕괴, 팬데믹의 가속화, 소비 문화의 전환이 동시에 몰을 흔들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그러나 몰락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버겐 카운티의 사례는 쇼핑몰을 새로운 도시 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와 과제를 동시에 제시한다. 과거의 ‘소비의 성지’는 사라지고 있지만, 그 빈자리에 미래의 ‘공동체 공간’이 들어설 가능성도 열려 있다.

결국 버겐 카운티 몰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소비만을 위한 공간을 원하는가, 아니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원하는가?”

뉴욕앤뉴저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Previous Story

다저스 김혜성, 스넬과 함께 손흥민 경기 찾아가 ‘찰칵’

Next Story

MTA, 2026년 요금 인상 공식화… 팬데믹 후유증 속 재정 압박 심화

Latest from Economy

패스트푸드의 이단아, 칙필레(Chick-fil-A)를 말하다

작은 다이너에서 미국 최대 치킨 체인으로 1946년, 조지아주 애틀랜타 교외 햇트빌에서 한 청년 사업가가 문을 연 작은 다이너가 있었다. 이름은 Dwarf Grill. 창업자 S. Truett Cathy는 단순하지만 맛있는 치킨 메뉴를 개발해 지역…

[달러 패권의 역사 ②] 위기와 백스톱에서 오늘까지

금융위기 속에서 드러난 달러의 힘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달러 패권의 그림자와 힘을 동시에 보여준 사건이었다. 태국 바트화의 붕괴로 시작된 위기는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신흥국으로 번졌다. 공통점은 이들 국가가 달러에 고정된 환율…

[달러 패권의 역사 ①] 브레튼우즈에서 페트로달러까지

왜 지금 달러 패권을 다시 묻는가 세계 경제의 언어는 달러다.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체결되는 채권 거래, 런던 금속거래소에서 책정되는 원자재 가격, 상하이와 싱가포르를 거쳐 이동하는 컨테이너 화물의 인보이스까지, 달러는 21세기 국제경제를 움직이는 기본…

경제학 용어로 읽는 인플레이션 시대 (2)

서론: 물가와 성장 사이의 줄타기 경제를 움직이는 두 축은 물가 안정과 성장 유지다. 그러나 두 가지 목표는 종종 충돌한다. 물가가 치솟으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 억제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기가 둔화된다. 반대로 경기…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