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영화제 2025: 경쟁 없는 영화 예술의 장, 반세기의 유산과 오늘

경쟁없는 영화 그 자체로의 축제

1963년의 시작, 예술 영화의 요람

뉴욕 영화제(New York Film Festival, NYFF)는 1963년, 링컨센터 영화협회(Film Society of Lincoln Center, 현재의 Film at Lincoln Center)에 의해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칸, 베를린, 베니스가 이미 화려한 경쟁과 권위를 앞세우며 국제 영화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뉴욕의 기획자 리처드 라우드(Richard Roud)와 아모스 포겔(Amos Vogel)은 전혀 다른 철학을 내세웠다. 바로 “경쟁 없는 영화제”, 즉 영화 자체와 관객·평론가 사이의 대화를 최우선에 두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철학은 초창기부터 파격적인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로베르 브레송, 오손 웰스 등 당대 가장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감독들이 뉴욕 영화제의 무대에 올랐다. 미국 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키라 구로사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작품들도 소개되며 ‘세계 영화의 창구’로 자리매김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1970~80년대에는 마틴 스코세이지, 우디 앨런, 코엔 형제 등 뉴욕을 기반으로 한 감독들이 참여하면서, 이 영화제가 단순히 수입 영화만을 소개하는 장이 아니라, 뉴욕 자체의 영화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장으로 성장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더욱 다양한 색채를 띠게 된다. 할리우드의 독립영화 붐과 더불어, 전 세계 신진 감독들의 데뷔작이 뉴욕에서 첫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봉준호(〈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압델라티프 케시시 등 비서구권 감독들이 소개되며, 뉴욕 영화제는 미국 내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제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처럼 NYFF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경쟁 없는 실험의 장’이라는 원칙을 지키며, 세계 영화사의 주요 흐름을 꾸준히 반영해왔다.

2025년의 라인업과 한국 영화의 존재감

2025년 제63회 뉴욕 영화제는 9월 26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된다. 올해 오프닝은 니콜 홀로프세너의 〈After the Hunt〉, 센터피스는 짐 자무시의 〈Father Mother Sister Brother〉, 폐막은 브래들리 쿠퍼의 〈Is This Thing On?〉이 맡았다. 이 세 작품만으로도 올해 영화제가 지향하는 방향을 엿볼 수 있다. 예술성과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감독과, 헐리우드의 스타 감독을 동시에 포용하며, 대중성과 예술성을 교차시키고 있는 것이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특히 주목받는 부분은 한국 영화 두 편의 선정이다.
첫 번째는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No Other Choice)다. 배우 이병헌이 주연을 맡아 경제적 위기와 생존의 갈림길에 선 한 남자의 이야기를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베니스와 토론토에서도 초청을 받았고, 뉴욕 영화제에서는 미국 내 첫 상영이 이루어진다. 평론가들은 “박찬욱 특유의 미학과 사회적 메시지가 결합된 수작”이라 평가한다.

[출처: CJ ENM]

두 번째는 홍상수 감독의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What Does That Nature Say to You)다. 일상의 대화를 통해 인간 내면의 공허와 관계의 단절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홍상수 특유의 미니멀리즘 스타일이 돋보인다. 홍상수의 작품은 이미 뉴욕 평단에서 오랜 시간 지지를 받아왔는데, 이번 영화 역시 ‘작은 이야기 속에서 세계를 비추는 시선’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시아 영화의 비중 확대도 눈에 띈다. 일본, 대만, 인도 감독들의 신작이 메인 슬레이트에 올랐으며, 기후 위기·사회 정의·젠더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역시 대거 포함되었다. 이는 뉴욕 영화제가 단순히 예술 영화만이 아니라, 동시대 사회의 가장 첨예한 의제들까지 포괄하는 문화적 대화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평단과 대중의 시각: 경쟁 없는 영화제의 힘

뉴욕 영화제는 평론가들에게 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경쟁 부문이 없기 때문에, 상영작은 오롯이 영화 자체의 가치와 감독의 비전에 의해 평가된다. 뉴욕 타임스는 “NYFF는 칸의 화려함도, 베니스의 정치성도 없지만, 영화 예술의 순수한 힘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무대”라고 평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평단의 시선에서 올해 영화제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아우른 균형이 특징이다. 박찬욱·홍상수의 작품이 예술영화 팬들에게 강한 매력을 제공한다면, 브래들리 쿠퍼나 할리우드 거물 감독의 참여는 대중적 관심을 끌어올린다. 이는 과거 “NYFF는 대중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에 대한 해답으로 읽힌다.

대중을 위한 접근성 확대 노력도 눈에 띈다. 타임스스퀘어 무료 야외 상영, 학생 할인 패스, 온라인 스트리밍 파트너십은 젊은 세대와 새로운 관객층을 영화제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또한 상영 이후 이어지는 감독과 배우의 Q&A, 관객 토론 프로그램은 단순한 ‘영화 관람’을 넘어선 ‘영화 담론의 공유’라는 NYFF만의 강점을 부각시킨다. 관객이 비평가가 되고, 감독이 청중과 직접 마주하는 이 과정에서 영화제는 하나의 살아 있는 문화 교류장이 된다.

세계 영화계 속 NYFF의 위상과 미래

오늘날 NYFF는 칸, 베니스, 베를린과 나란히 ‘세계 4대 영화제’라는 명칭으로 불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평적 권위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미국 내에서의 문화적 영향력 측면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과의 연결 고리는 무시할 수 없다. 많은 작품들이 뉴욕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뒤 오스카 후보로 이어졌다. 이는 영화제의 ‘비공식적인 오스카 시즌 개막’이라는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아시아 영화에 대한 꾸준한 관심 역시 중요한 성과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뉴욕 영화제를 거쳐 북미에서 주목을 받은 사례는 상징적이다. 올해 박찬욱과 홍상수의 초청 역시, 한국 영화가 더 이상 ‘외국 영화’가 아닌 세계 영화 담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향후 과제는 다양성과 포용성의 확대다. 젠더, 인종,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NYFF의 미래 위상을 결정할 것이다. 또한 디지털 플랫폼과의 연계를 강화해, 오프라인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될 필요가 있다.

맺음말

2025년 뉴욕 영화제는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 영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사회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경쟁이 아닌 대화 속에서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뉴욕이라는 도시의 정체성—다양성, 개방성, 실험정신—은 영화제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반세기를 넘어선 뉴욕 영화제는 오늘도 세계 영화의 흐름을 비추며, 미래를 향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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