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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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달러의 부상: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경제 지형을 바꾸다

미국 국채를 먹고 자라는 코인, 미국 단기시장의 새 변수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국채 최대 수요처 중 하나로 떠올랐다.”

최근 월가에서는 이런 말이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실제로 테더(USDT)는 2025년 2분기 기준 1,200억 달러 이상을 미국 단기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일부 신흥국 중앙은행의 보유액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미 재무부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대규모 재정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수요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스테이블코인 발행량이 급증할 경우 단기금리에 구조적 영향을 줄 수 있고, 무엇보다 대규모 상환 사태가 발생하면 단기채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파이어세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월가의 한 채권 트레이더는 “스테이블코인은 국채 시장의 숨은 큰손이 됐다. 지금은 도움이 되지만, 위기 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은행예금을 위협하는 새로운 돈의 흐름

스테이블코인은 이제 단순한 암호화폐가 아니다. 기업 재무팀이 실제로 활용하는 새로운 자금 운용 수단이 되고 있다. 원격 근로자 급여 지급, 해외 법인 정산, 공급망 거래 등 과거 은행 전신 송금에 의존하던 영역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 변화는 은행에 위협이 된다. 고객이 은행 예금 대신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하고 이를 온체인 대출이나 결제에 활용한다면, 은행의 예금 기반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은행 예금은 통화정책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핵심 경로인데, 이 흐름이 약화되면 연준의 정책 효과도 달라질 수 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경제학자들은 이를 두고 “연준이 금리를 움직여도 디지털 자금은 다른 길을 간다”는 표현을 쓴다. 디파이(탈중앙 금융) 시장에서 형성되는 이자율은 기준금리와 동떨어진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통화정책의 전통적 경로가 우회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제 혁신, 그러나 소비자 보호는 여전히 공백

국경 없는 결제. 낮은 수수료. 24시간 365일 정산. 스테이블코인이 불러온 결제 혁신의 키워드다.

비자는 이미 USDC를 정산망에 편입했고, 스트라이프는 글로벌 가맹점 결제에 다시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했다. 덕분에 국경 간 전자상거래와 해외 프리랜서 급여 지급이 한층 효율적이 됐다.

하지만 소비자 보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카드 결제에는 ‘차지백’ 제도가 있지만, 스테이블코인 결제에는 이런 안전장치가 없다. 거래 오류나 사기 피해가 발생해도 소비자가 보호받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혁신은 빠르지만 규제는 늦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규제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지 고심 중이다. 미국 의회에서 논의 중인 스테이블코인 법안도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달러 패권, 블록체인 위에서 재편되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국내를 넘어 글로벌 금융질서에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의 95% 이상이 달러에 연동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달러 패권의 디지털 버전이라 할 만하다. 신흥국에서는 자국 통화보다 스테이블코인을 더 신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사실상 ‘비공식 달러화’가 진행되는 셈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기회이자 도전이다. 스테이블코인이 달러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국제 금융 불안정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자국 통화 가치가 무너지는 신흥국이 늘어나면 글로벌 경제는 더 큰 불균형에 직면하게 된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연준이 추진 중인 디지털 달러(CBDC) 역시 이 흐름과 얽혀 있다.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달러의 전도사 역할을 한다면 CBDC의 필요성이 줄어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스테이블코인이 위기 요인으로 작동한다면 중앙은행이 직접 디지털 달러를 내놓아야 할 동력이 커질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경제의 새로운 변수이자 기회다.

  • 단기 국채 시장의 숨은 큰손으로 자리 잡으며 재정 조달 비용을 낮추는 축복이 될 수도 있다.
  • 동시에 위기 시 금융 불안을 증폭시키는 뇌관이 될 수도 있다.
  • 은행예금을 대체하며 통화정책의 힘을 약화시키는 도전자가 될 수도 있다.
  • 결제 혁신을 주도하며 달러 패권의 디지털화를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변방의 자산이 아니다. 미국 경제와 세계 금융질서 속에서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한 새로운 디지털 달러다. 그 흐름이 어디로 향할지는, 이제 규제와 시장, 그리고 위기 대응 능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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