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the Bway] 제프 로스, 브로드웨이에서 웃음과 눈물을 굽다: Take a Banana for the Ride 리뷰

새로운 형식의 브로드웨이... 자서전 그리고 해학

바나나에 담긴 한 소년의 기억

브로드웨이 네덜랜더 극장의 무대 위에 제프 로스가 섰을 때, 객석은 이미 그의 오랜 별명인 ‘로스트마스터 제너럴(Roastmaster General)’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번 쇼의 시작은 예상과 달랐다. 익숙한 신랄한 농담 대신, 그는 관객을 자신의 어린 시절로 데려갔다. 뉴저지 출신의 소년 제프에게 맨해튼은 꿈의 무대였고, 그때마다 그의 할아버지는 “Take a banana for the ride”라는 말을 건네며 바나나를 손에 쥐여주곤 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이 단순한 문장이 이번 쇼의 제목이자 핵심 모티프가 되었다. 바나나는 어린 손자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이자 준비성의 상징이었고, 동시에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버텨내기 위한 은유로 자리 잡았다. 제프 로스는 무대 위에서 그 기억을 풀어내며, 단순한 스탠드업 공연이 아닌 자전적 희비극을 시작했다.

여기서 관객은 곧 깨닫게 된다. 이 무대는 단순히 코미디언의 농담을 듣는 자리가 아니라, 한 인간이 겪어온 상실과 회복, 웃음과 눈물을 함께 나누는 여정이라는 사실을.

로스트마스터의 또 다른 얼굴

30여 년 동안 제프 로스는 할리우드와 코미디 무대에서 ‘가장 가차 없는 농담꾼’으로 불렸다. 그의 로스트는 늘 상대방을 정곡으로 찌르며 폭소를 자아냈다. 그러나 이번 브로드웨이 데뷔작은 자신을 향한 로스트였다.

무대 위에서 그는 부모의 사망, 어린 시절의 불안, 그리고 성인이 되어 마주한 암 진단까지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경험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동료 코미디언 밥 사겟과 노름 맥도널드, 길버트 가프리드 등 절친했던 인물들의 죽음을 회상하는 대목에서는, 객석에서도 숨을 죽인 채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보였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무거운 고백이 로스 특유의 유머와 결합될 때 만들어내는 독특한 긴장감이다. “암을 이겨낸 건 기적이었다. 하지만 병원비를 보고 나니 또 다른 기적이 필요하더라”라는 식의 대사는 웃음을 터뜨리게 하면서도 현실의 무게를 잊지 못하게 한다. 그는 자신을 무대 위 희생양으로 삼음으로써, 관객이 공감과 웃음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이는 코미디언으로서의 본능과 인간 제프 로스로서의 진정성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로스팅의 대가가 자신을 로스트하는 과정, 바로 그것이 이 작품이 가진 독창성이자 힘이다.

무대 위의 바나나, 유머와 감정의 교차점

〈Take a Banana for the Ride〉는 단순히 이야기만으로 구성된 쇼가 아니다. 무대 연출과 장치들은 로스의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프로젝션 화면에는 그의 어린 시절 사진과, 동료 코미디언들과의 추억이 차례로 비친다. 이는 공연이 개인적 회고록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문화적 기록으로 확장되도록 돕는다. 특히 무대 중반, 그는 바나나색 스팽글 수트를 입고 등장한다. 우스꽝스럽지만 눈부신 이 장면은, 바나나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유머와 보호의 갑옷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공연 후반부, 그는 관객 중 자원자를 무대로 불러올려 직접 로스팅을 펼친다. 익살스러운 조롱과 즉흥적 농담은 객석의 긴장을 풀어내고, 동시에 로스가 여전히 유쾌한 농담꾼임을 확인시킨다. 그러나 무대가 끝나갈 즈음, 그는 다시 조용히 할아버지의 바나나 이야기를 꺼내며 쇼를 마무리한다. 웃음과 눈물, 장난과 고백이 교차하는 순간, 관객은 제프 로스라는 한 코미디언의 삶을 깊이 공유한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브로드웨이가 맞이한 새로운 고백극

평단의 반응은 뜨거웠다. 뉴욕 타임스는 “따뜻하고 고양되며, 동시에 대단히 웃긴 쇼”라고 평가했고, 피플 매거진은 “이 시즌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웃긴 밤”이라고 극찬했다. 지미 키멜은 “이건 걸작이다”라며 SNS에 감탄을 남겼고, 사라 실버맨은 “웃음과 감정을 동시에 건드리는 공연”이라고 평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관객들은 공연장에서 단순히 코미디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함께 거닐며 울고 웃는 경험을 했다. 공연 직후의 여운은 극장을 나서는 순간에도 이어졌다. 브로드웨이는 오랜만에 코미디와 연극, 자전적 고백이 완벽히 교차하는 무대를 맞이한 것이다.

〈Take a Banana for the Ride〉는 결국 제프 로스라는 인물이 걸어온 길에 대한 기록이자, 동시에 우리 모두가 언젠가 겪게 될 상실과 회복의 보편적 이야기다. 바나나는 그저 과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긴 여정에서 건네받는 작은 위로이자, 다시 한 번 웃고 버틸 수 있게 하는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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