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의 아침 공기는 언제나 분주하지만, 첼시에서 맞는 아침은 유독 겹겹의 시간을 품고 있다. 허드슨강에서 불어온 서늘한 바람이 10번 애비뉴를 따라 늘어선 붉은 벽돌의 낡은 창고 건물 사이를 휘감을 때,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100년 전 이곳을 지배했을 석탄 연기와 증기기관차의 묵직한 소음, 부두 노동자들의 거친 함성이 아련하게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자하 하디드의 손길이 빚어낸 유려한 곡선의 하이엔드 콘도와 그 유리창에 반사되는 아침 햇살이 미래적인 풍경을 펼쳐낸다. 이곳이 바로 첼시다. 과거의 유령과 미래의 초상이, 날것의 예술과 세련된 자본이 가장 첨예하고 또 가장 매혹적으로 공존하는 맨해튼의 살아있는 캔버스. 나는 오늘, 이 변화무쌍한 동네의 속살을 걷어내고 그 심장부로 걸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역사의 퇴적층: 부두 노동자의 동네에서 예술의 성지로
첼시의 연대기는 한 권의 두꺼운 소설과 같다. 19세기 중반, 허드슨강 철도가 이 지역을 관통하기 전까지 이곳은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난 한적한 전원이었다. 그러나 강철 레일이 깔리고 부두가 건설되면서 첼시의 운명은 완전히 새로운 장으로 접어들었다. 거대한 나비스코 비스킷 공장(현 첼시 마켓)이 쉴 새 없이 과자를 구워냈고, 공장과 부두를 잇는 고가 철도 위로는 화물 열차가 굉음을 내며 달렸다. 거리는 공장 노동자와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의 터전이었고, 붉은 벽돌의 연립주택(Tenement)에는 수많은 가족의 희로애락이 켜켜이 쌓여갔다. 첼시는 뉴욕의 산업혁명을 이끈 심장이었지만, 그 심장은 뜨겁고 거칠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해운업의 중심이 뉴저지로 넘어가고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심장은 동력을 잃는 듯했다. 첼시는 한동안 잊혀진 동네, 버려진 창고들만 뒹구는 회색 지대로 남았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버려짐’이 첼시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1990년대, 천정부지로 치솟는 소호(SoHo)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예술가와 갤러리스트들이 첼시의 텅 비고 넓은 공간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낡은 차고와 창고의 셔터를 올리고 새하얀 페인트를 칠했다. 그리고 그곳에 뉴욕의 가장 전위적이고 대담한 현대 미술을 내걸었다. 래리 가고시안, 데이비드 즈워너, 폴라 쿠퍼와 같은 거물급 갤러리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면서, 첼시는 하룻밤 사이에 세계 현대 미술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부두 노동자의 땀방울이 스며든 아스팔트 위로, 이제는 예술 애호가들의 구두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녹색 동맥과 유리 성채: 하이라인과 허드슨 야드의 충격

예술의 심장으로 다시 태어난 첼시에게, 21세기는 또 한 번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그 시작은 바로 ‘하이라인 파크(The High Line)’였다.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철거 직전까지 갔던 낡은 고가 산업 철도를 공중 정원으로 되살리자는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허무맹랑한 꿈처럼 들렸다. 그러나 2009년, 그 꿈이 현실이 되어 문을 열었을 때, 하이라인은 단순히 아름다운 공원을 넘어 첼시의 모든 것을 바꾸는 ‘녹색 동맥’이 되었다.
이 1.45마일의 산책로는 첼시의 심장부를 관통하며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 전 세계의 건축가들은 이 녹색 동맥을 따라 앞다투어 자신의 예술혼을 담은 건축물을 세웠고, 하이라인 주변은 순식간에 럭셔리 콘도와 부티크 호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의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주말이면 공원을 가득 메운 관광객과 뉴요커들로 인해 첼시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활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정점은 첼시의 북쪽 경계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유리 성채’, 허드슨 야드(Hudson Yards)였다. 미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민간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인 허드슨 야드는 첼시를 또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초고층 오피스 빌딩과 명품 쇼핑몰, 최고급 주거 타워가 들어서면서, 첼시는 이제 예술과 주거를 넘어 뉴욕의 새로운 비즈니스 및 상업 허브로서의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이 두 거대한 프로젝트는 첼시의 부동산 지도를 완전히 새로 그렸고, 한때 10번 애비뉴 서쪽을 기피하던 뉴요커들의 발걸음을 허드슨강 바로 앞까지 이끌었다. 물론, 이 눈부신 발전의 그늘에는 과거의 소박함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씁쓸함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냉혹한 현실이 공존하고 있었다.
삶의 풍경: 붉은 벽돌과 유리창 사이, 뉴욕의 가장 뜨거운 주소지

오늘날 첼시에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뉴욕이 제공하는 거의 모든 형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웨스트 20번가 블록을 걷다 보면, 19세기의 우아함이 그대로 보존된 갈색 사암 타운하우스들이 조용히 위용을 뽐낸다. 이곳의 삶은 마치 역사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고풍스러운 계단과 작은 정원을 품고 있다. 반면, 갤러리들이 밀집한 거리의 낡은 공장 건물 꼭대기에는, 높은 천장과 거대한 창을 가진 로프트가 숨겨져 있다. 이곳은 예술가의 아틀리에였던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그리고 하이라인을 따라서는,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들이 빚어낸 현대적인 럭셔리 콘도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통유리창 너머로 허드슨강의 일몰과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곳의 삶은, 뉴욕의 가장 현대적이고 부유한 단면을 상징한다. 이러한 다양성만큼이나 가격의 스펙트럼 또한 넓지만, 분명한 것은 첼시가 이제 맨해튼에서 가장 비싼 주소지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침실 하나짜리 아파트의 월세가 5,500달러에서 시작하고, 평균 매매가는 150만 달러를 훌쩍 넘는다. 이 숫자는 첼시라는 이름이 가진 가치와 열망의 크기를 냉정하게 증명한다.

이 높은 가격표 뒤에는 완벽에 가까운 생활 환경이 버티고 있다. 뉴욕 최고의 공립학교들이 속한 2학군이라는 명성은 아이를 둔 가족들을 끌어들이고, 홀푸드 마켓과 첼시 마켓은 가장 신선한 식재료를 제공한다. 갤러리 오프닝에 참석하고, 허드슨 리버 파크에서 조깅을 하며, 최신 유행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즐기는 일상이 이곳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과거의 불안했던 치안은 옛말이 된 지 오래, 이제 첼시는 뉴욕에서 가장 안전하고 살기 좋은 동네 중 하나로 꼽힌다. 붉은 벽돌과 유리창 사이, 첼시는 그렇게 뉴욕의 가장 뜨겁고 선망받는 삶의 풍경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이 낡고도 새로운 캔버스 위에서, 삶은 여전히 가장 치열하고 아름다운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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