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미국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나라다. 하나는 인종, 젠더, 문화, 세대의 다양성이 그 어느 때보다 폭넓게 확장된 다원 사회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 다른 가치와 세계관이 충돌하며 깊게 균열된 분열의 사회다.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실리콘밸리에서 텍사스의 교외까지, ‘하나의 미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무수한 ‘미국들’이 공존한다. 문제는, 그 공존이 조화로운 공존이 아니라, 각자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병렬적 공동체의 집합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한때 미국은 단일한 서사로 정의될 수 있었다. 20세기 중반의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화를 중심으로 통합된 사회였다.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백인 중산층 남성 중심의 산업사회 구조와 결합하여, 사회적 이동의 서사로 작동했다. 그러나 그 신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기술자본의 집중, 글로벌화, 세대 간 격차는 그 믿음을 무너뜨렸다. 주택 보유율은 급감했고, 교육비와 의료비는 치솟았으며, 한때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안정된 일자리는 사라졌다. 노력은 더 이상 보상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 결과, 미국은 하나의 중심 이야기를 잃은 사회가 되었다. 대신 수많은 정체성이 등장했다. 인종, 젠더, 종교, 성적 지향, 지역, 교육 수준, 이민 여부—이 모든 요소가 사회적 소속을 결정한다. 이제 미국은 단일한 ‘국민 정체성’을 기반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의 정체성은 ‘우리’의 정의를 압도하고, 집단 간 경계는 날로 선명해진다.
이 변화는 인구 구조에서도 뚜렷하다. 미국 인구의 약 40%가 이미 ‘비(非)백인’이며, 2050년에는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뉴욕, LA, 휴스턴 같은 대도시에서는 이미 다수-소수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다문화 사회의 이상은 실현된 듯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다문화성은 새로운 분열을 낳았다. 서로 다른 언어, 신념, 생활 방식이 물리적으로는 인접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멀어져 있다.
과거 미국이 자신을 ‘Melting Pot’이라 불렀다면, 이제는 ‘Salad Bowl’이라 부른다. 녹아들기보다 각자의 색을 유지한 채 공존하는 사회라는 의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샐러드의 재료들이 같은 그릇 안에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공통의 문화 코드와 상징이 사라지고, “무엇이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가”에 대한 합의가 붕괴되었다.
이런 현상은 정치 영역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은 이제 정책 차원이 아니라 존재론적 갈등의 양상으로 번졌다. 한쪽은 자신들을 ‘전통적 미국의 수호자’로, 다른 쪽은 ‘민주주의의 최후의 방어선’으로 인식한다. 양 진영의 지지자들은 서로를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적대의 대상으로 본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의 70%, 공화당 지지자의 절반 이상이 “상대 당은 미국을 위협한다”고 믿는다.

문제는 정치적 대립이 단순히 ‘좌우의 싸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관의 충돌이라는 점이다. 낙태, 총기, 기후, 교육, 인종, 젠더 같은 모든 사안은 단순한 정책 논쟁이 아니라, “누가 진짜 미국인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로 전환된다. 이념적 대화 대신 도덕적 심판이 정치의 언어를 대신한다.
경제적 요인도 분열을 부추긴다. 디지털 자본주의는 부와 권력의 집중을 가속화했다. 상위 1%가 전체 부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하위 절반은 2%를 나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자본과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은 전례 없는 수익을 내지만, 그 아래에서는 ‘긱 워커(gig worker)’와 프리랜서들이 불안정한 생존을 이어간다. 이 격차는 단지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의 문제로 이어진다. “나는 이 사회에 의미 있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개인의 분노로 바뀌고, 그 분노는 다시 정치적 분열로 번진다.
이와 같은 양극화는 도시의 풍경에서도 드러난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기준으로 몇 블록만 옮겨도 억만장자의 펜트하우스와 홈리스 쉘터가 공존한다. 다양성의 상징인 도시는 동시에 불평등의 축소판이다. ‘다중의 도시’는 아름다운 구호이지만, 실제로는 계층과 인종, 문화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살아가는 평행사회(parallel society)가 되고 있다.
문화적 차원에서도 미국은 더 이상 하나의 공통 언어를 갖지 못한다. 디지털 미디어와 SNS의 시대는 정보의 민주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현실의 분열을 낳았다. 사람들은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이해한다. 예컨대 한쪽에서는 시위를 “정의의 외침”으로, 다른 쪽에서는 “폭동과 무질서”로 본다. 이제 미국인들은 서로 다른 현실을 믿는 시민들이 되었다.

이처럼 다양성과 분열은 동전의 양면이다. 다양성은 민주주의의 자산이지만, 공적 언어가 사라질 때 그 다양성은 오히려 공공영역을 붕괴시킨다.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차이의 인정’만이 아니라, 공유된 의미의 구조다. 하지만 미국은 지금 그 구조를 잃어버린 상태다.
인문학적으로 보면, 이 현상은 ‘정체성 정치의 딜레마’로 해석된다. 과거 주변부였던 집단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분명 진보지만, 그만큼 “중심”이었던 집단의 불안과 반발도 커졌다. 포용의 언어가 때로는 배제의 언어로 바뀌고, 정의의 요구가 때로는 분노의 감정으로 전환된다. 다양성의 정치가 민주주의의 심장을 지키려다, 오히려 사회의 분열을 가속화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도시 인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대도시들은 이 모순의 최전선이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같은 도시는 문화적 다양성의 실험장이자, 불평등의 현장이다.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 이민 공동체들이 한 도시 안에서 공존하지만, 실제 생활 공간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다양성은 물리적 공간에서는 함께 있지만, 사회적 경험에서는 분리된 상태로 존재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공통 서사의 붕괴’다. 과거에는 미디어가 국가의 내러티브를 형성했다. CNN, 뉴욕타임스, ABC 같은 매체는 미국인들이 “같은 현실”을 바라보게 만드는 공적 거울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는 수천 개의 미시적 서사로 분절되었다. 각자의 플랫폼이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미국은 이제 ‘공유된 진실(shared reality)’을 잃고, ‘개인화된 확신(personalized conviction)’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적 풍경도 바뀌었다. 교회 출석률은 줄었지만, 새로운 형태의 영성이 확산되고 있다. 명상, 생태 신학, 사회 정의 운동, 공동체 기반 예배 등은 전통 종교를 대체하는 새로운 신앙 형식이다. 뉴욕의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은 이런 시대정신을 상징한다. 완성되지 않은 성당, 그러나 끊임없이 예술과 시민운동, 생명축복식이 이어지는 공간. 그 불완전한 건축은 오히려 진행형 신앙의 메타포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완전하지 않기에 살아 있고, 불안정하기에 움직인다.
미국의 역사는 스스로를 “진행 중인 실험(experiment in progress)”이라 불러왔다. 이 실험은 언제나 위기와 혁신을 동시에 품었다. 노예해방, 여성참정권, 시민권운동, LGBTQ 권리운동—이 모든 변화는 갈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갱신한 과정이었다. 지금의 혼란 또한, 어쩌면 그 연장선에 있다. 완전함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의 가능성. 그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독특한 생명력이다.
앞으로의 미국은 통합의 회복이 아니라 조율의 윤리(coordination ethics)를 배워야 한다. 서로 다른 정체성과 가치가 완전히 합의하지 않더라도, 함께 작동할 수 있는 정치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하나의 중심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주변들이 공존 가능한 거리를 유지하는 기술이다.
결국, 미국은 지금 “하나의 나라”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나라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이 다중성은 불안하지만, 동시에 창조적이다.
분열은 위기이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태어난다.

지금의 미국은 불완전하고, 분열되어 있으며,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 미완의 상태야말로 미국이 가진 가장 인간적인 면모다.
완성된 제국은 멈추지만, 미완의 사회는 계속 스스로를 고쳐 나간다.
미국은 여전히 자신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함께 살 수 있는가?”
그 질문이 지속되는 한, 미국은 아직 끝나지 않은 나라다.
“미국은 미완성의 성당이다.
완전하지 않기에 살아 있고,
분열 속에서도 여전히 건설 중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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