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신화에서 성찰로

― “풍요의 축제”를 넘어 “역사의 기억”으로

11월의 미국은 언제나 같은 장면으로 시작된다. 공항의 긴 줄, 도시 외곽으로 뻗어나가는 자동차 행렬, 그리고 가족을 기다리는 식탁 위의 커다란 칠면조 한 마리. 매년 네 번째 목요일, 미국인들은 이 의식을 되풀이한다.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은 가족의 재회를 상징하는 날이자, 미국 문화의 원형처럼 여겨지는 전통이다. 그러나 이 전통의 이면에는 축복과 죄의식, 풍요와 배제, 신화와 진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제 추수감사절은 더 이상 단순한 ‘감사의 날’이 아니라, 미국 사회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거울이 되어가고 있다.

Ⅰ. 신화로 만들어진 기원 ― ‘1621년의 식탁’과 그 너머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대부분의 미국인은 추수감사절의 기원을 1621년, 플리머스(Plymouth) 식민지 시절로 기억한다.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 속에서 청교도들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뒤, 원주민인 와마파노아그(Wampanoag) 부족의 도움으로 풍성한 수확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앉아 칠면조와 옥수수를 나누며 “첫 추수감사절”을 치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국가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신화의 일부였다.

실제 기록에 따르면, 그 식사는 단순한 “감사의 만찬”이 아니라, 전쟁 이후의 정치적 화해의 자리였다. 당시 청교도들은 원주민의 협력을 얻어 생존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토지 분쟁과 종교적 갈등이 격화되면서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졌다. 와마파노아그 족은 결국 전염병과 전쟁으로 대부분이 사라졌고, “감사의 식탁”은 식민지 확장의 서막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 서사를 “평화와 협력의 상징”으로 포장해 국가 정체성의 기초로 삼았다. 1863년, 남북전쟁의 한가운데서 링컨 대통령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을 국가 공휴일로 선포했다. 내전으로 찢긴 미국을 하나로 묶기 위해, ‘1621년의 식탁’은 새로운 의미로 다시 쓰였다. 추수감사절은 그렇게 종교적 의식이 아닌 정치적 통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Ⅱ. 산업화가 만든 축제 ― 소비의 의례로 변한 감사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추수감사절은 급격히 변모했다. 산업화와 대량생산 체제의 확립은 미국의 생활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풍요와 효율, 편리함이 미덕이 되었고, 추수감사절 식탁 역시 이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칠면조, 파이, 통조림 크랜베리 소스, 인스턴트 매시드 포테이토는 미국의 표준 메뉴로 정착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1950~60년대 텔레비전 시대의 도래는 이 전통을 더 널리 퍼뜨렸다. ‘가정의 행복’과 ‘미국적 생활양식’을 상징하는 광고 이미지 속에는 언제나 한 가족이 등장했다. 거실 중앙의 커다란 식탁, 모범적인 주부, 미소 짓는 아이들, 그리고 금빛으로 구워진 칠면조 한 마리. 이 이미지는 곧 ‘이상적인 미국 가정’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부터 추수감사절은 단순히 감사를 표현하는 날이 아니라, 연말 소비 시즌의 시작점이 되었다.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는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경제의 축제였다. 미국 경제의 순환은 ‘감사의 식탁’에서 출발해 ‘소비의 행진’으로 이어졌고, 산업 사회의 효율성과 자본주의의 에너지가 이 날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그러나 풍요의 그림자는 언제나 존재했다. 빈곤층과 이민자 공동체에서는 칠면조를 구입하지 못하는 가족들이 늘어났고, 도시 빈민 구호단체의 무료 급식소가 “또 하나의 추수감사절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풍요를 나누는 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평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날이기도 했다.

Ⅲ. 역사 속 침묵한 목소리 ― ‘국가의 축제’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

1970년대 이후, 추수감사절의 역사적 서사에 대한 재검토가 본격화됐다. 보스턴과 매사추세츠 일대의 원주민 단체들은 “첫 추수감사절”이 자신들에게는 ‘상실과 비극의 시작’이었다고 주장했다. 1970년, 플리머스에서 열린 ‘국가 추수감사절 350주년 기념식’에 초청된 원주민 대표 프랭크 제임스(Frank James)는 연설문에서 “그날은 평화가 아니라 정복의 날이었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그의 발언을 검열했고, 그 사건이 바로 “National Day of Mourning(국가적 애도의 날)” 운동으로 이어졌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그 이후 매년 추수감사절 당일, 매사추세츠의 플리머스 언덕에는 원주민과 연대자들이 모여 묵념과 시위를 이어간다. 그들은 이 날을 ‘감사의 날’이 아니라 ‘애도의 날’로 기억하며, 식민주의의 폭력과 토착민 학살의 역사를 알리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와 같은 역사적 재조명에 따라 학교 교과서가 수정되었고, 공공기관에서도 ‘Thanksgiving’ 대신 ‘National Day of Remembrance’라는 용어를 병행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현대 미국의 다양성 담론 속에서, 추수감사절은 백인 중심의 내러티브를 넘어서는 재해석의 장이 되고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라틴계, 아시아계 커뮤니티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날을 기념한다. 음식 문화도 다양해졌다. 전통적인 칠면조 대신 한식 불고기나 타코, 퀴노아 샐러드가 식탁에 오르고, 감사의 의미는 “생존과 공동체의 지속”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메뉴의 차이가 아니라, 추수감사절이라는 상징이 다인종 사회 속에서 어떻게 다시 쓰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감사’라는 단어는 이제 더 이상 특정 종교나 민족의 소유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정체성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언어’로 진화하고 있다.

Ⅳ. 기후위기와 공급망의 시대 ― ‘풍요’의 불안한 미래

2020년대의 추수감사절은 또 다른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기후변화, 전쟁, 공급망 불안, 인플레이션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풍요의 식탁’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 농무부(USDA)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평균 추수감사절 디너 비용은 전년 대비 12% 상승했다. 특히 유제품, 제빵류, 포장 식재료의 상승률이 두드러졌고, 칠면조 공급에도 일시적 차질이 있었다.

환경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기후 불안정성이 초래한 새로운 농업 리스크”로 분석한다. 이상 고온과 가뭄이 닭과 칠면조의 사육 주기에 영향을 미치고, 해양 온도 상승은 곡물 가격을 자극한다. 결과적으로 추수감사절의 상징인 ‘풍요’는 더 이상 당연한 전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 위기는 또 다른 변화를 불러왔다. 지속 가능한 식문화, 지역 농산물 소비, 식물성 대체식품이 새로운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플랜트 베이스드 뱅큇(Plant-Based Banquet)’이라는 이름으로 채식 추수감사절 코스를 선보이고, 젊은 세대는 전통 대신 가치 중심의 식탁을 선택한다. 이는 단지 음식의 변화가 아니라, 추수감사절이 다시 한 번 시대의 윤리를 반영하는 축제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Ⅴ. 다시 쓰이는 전통 ― 감사의 윤리, 기억의 정치

이제 추수감사절은 더 이상 과거의 신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매년 새롭게 쓰이는 이야기이고, 각 세대가 자기만의 의미를 덧입히는 문화적 텍스트다. 팬데믹 이후 미국 사회는 인간 관계의 단절과 회복을 동시에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추수감사절은 단순한 가족 모임을 넘어, “함께 살아남은 이들”의 연대의 날로 확장되었다.

각지의 자원봉사단체, 푸드뱅크, 지역 교회는 여전히 이날 수백만 명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한다.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감사의 도시”를 만든다. 이는 신화로서의 감사가 아니라, 행위로서의 감사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감사가 항상 공평하게 분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풍요의 신화를 통해 국가 정체성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식민주의와 불평등의 구조를 은폐해왔다. 이제 그 서사는 수정되고 있다. 감사는 누가 누구에게, 무엇에 대해, 어떤 관계 속에서 전하는가를 묻는 윤리적 행위가 되었다.

이날의 의미를 다시 묻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감사의 식탁은 우리의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자리다.” 과거의 풍요를 되풀이하는 대신, 그것이 가능했던 희생과 관계를 성찰하는 것. 그곳에서 비로소 진정한 감사가 시작된다.

뉴욕앤뉴저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Previous Story

Macy’s, 미국의 쇼윈도를 만든 이름

Latest from Culture

“작은 상자에서 시작된 거대한 경제”- POP MART

중국의 팝마트(POP MART International Group, 泡泡瑪特)는 단순한 장난감 제조업체가 아니다. 2010년 베이징에서 설립된 이 기업은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자”라는 단순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10년 만에 글로벌 완구 산업의 중심에 올라섰다.…

영화관의 운명: AMC의 도전과 재생

미국의 도시 어디에서나 붉은 네온으로 빛나는 세 글자, AMC는 단순한 영화관의 이름을 넘어 한 세기의 대중문화를 상징한다. 1920년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시작된 작은 극장은 어느새 800여 개의 지점과 9,000개가 넘는 스크린을 거느린 세계…

[In To the Bway]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목소리, & Juliet

셰익스피어를 비틀다 ― “만약 줄리엣이 죽지 않았다면” 브로드웨이의 최신 히트작 & Juliet은 묘하게도 우리에게 낯익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이 비극적으로 막을 내린 뒤, 줄리엣이 만약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아 새로운…

한글날 특집 | 미국에서 높아지는 한국어의 위상

한글날, 문자 이상의 의미 매년 10월 9일은 대한민국의 국경일이자 공휴일로 지정된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을 기념하며, 한글의 창제 정신과 그 우수성을 되새기는 날이다. 그러나 한글날의 의미는 이제 단지 문자 체계의 발명을…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