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교차로’, 그 상징의 탄생과 쇠락
맨해튼의 중심, 42번가와 브로드웨이, 7번 애비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타임스퀘어(Times Square)는 1904년 뉴욕타임스 본사가 ‘롱에이커 스퀘어(Long Acre Square)’로 불리던 지역에 자리를 잡으며 그 이름을 얻게 되었다. 뉴욕타임스의 영향력과 함께 이곳은 뉴욕시의 심장부로 자리매김했고, 마천루 사이를 가로지르는 밝은 네온과 LED 전광판, 하루 30만 명 이상이 오가는 인파는 타임스퀘어를 ‘세계의 교차로(Crossroads of the World)’라 불리게 했다.

그러나 이 상징적인 공간도 영원하지 않았다. 1960년대 이후 타임스퀘어는 뉴욕시의 쇠퇴와 함께 점점 범죄, 마약, 풍속영화 상영관 등이 득세하는 암울한 지역으로 전락했다. 관광객은 물론 뉴요커들조차 기피하던 공간이 되었고, 당시 언론은 ‘도시의 부끄러운 얼굴’이라 지적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도시 재정 위기와 맞물려 타임스퀘어는 뉴욕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굳어졌고, “불야성”이라는 말은 더 이상 빛의 축제를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부활의 시작: 1990년대 재개발과 민간 자본의 유입
타임스퀘어의 진정한 변화는 1990년대 초, 당시 뉴욕 시장이던 루돌프 줄리아니와 민간 기업들이 힘을 합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디즈니가 42번가의 낙후된 파라마운트 극장을 리모델링해 ‘뉴 암스테르담 극장’으로 재개장하면서, 브로드웨이 극장가의 중심으로서 타임스퀘어의 위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어 타임스퀘어 주변으로 미국 최대의 광고주들이 앞다투어 입주했고, 마담 투소 밀랍인형관, M&M 월드, 하드락 카페, 레드랍스터 등 가족 중심의 관광 상업 시설이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거리는 보다 청결해졌고, 경찰의 순찰도 증가했으며, 공식적으로 타임스퀘어를 관리하는 ‘타임스퀘어 얼라이언스’가 설립되어 민관 협력으로 지역 유지와 활성화를 도모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뉴욕의 부활’이라는 상징적 메시지로 확산되었고, 타임스퀘어는 다시금 ‘세계인의 광장’으로 거듭났다. 특히 매년 12월 31일 자정 직전의 ‘볼 드롭(ball drop)’ 이벤트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상징적 행사로 자리잡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여는 전 지구적 의식을 이곳에서 구현하고 있다.
다시 시작된 변신: 주거지화, 복합시설화, 공공예술의 도입

2020년대 들어 타임스퀘어는 또 다른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단순한 관광지나 엔터테인먼트 중심지를 넘어, 뉴욕시의 상시 거주지이자 지속가능한 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다. 그 중심에는 ‘5 타임스퀘어(5 Times Square)’의 재개발이 있다.

기존의 오피스 빌딩이었던 이 건물은 2025년부터 대규모 리모델링에 착수해 총 1,250세대 규모의 레지던스로 변신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약 300세대는 영구적인 저소득층 임대주택으로, 나머지 대부분은 스튜디오와 1베드룸으로 구성된 중간층 타겟의 주거 공간이다. 이 같은 시도는 타임스퀘어가 더 이상 ‘방문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는 공간’으로 변화하려는 실험이자, 맨해튼의 미래 도시모델로서 주목받고 있다.
이와 함께 TSX Broadway, 더 토치(The Torch) 등 새로운 복합 리테일·문화·숙박 공간들도 문을 열거나 공사 중이다. 특히 TSX Broadway는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초로 공연장(팔래스 극장)을 공중부양한 채 리노베이션한 프로젝트로, 하단은 쇼핑몰, 중단은 공연장, 상단은 호텔로 구성된 다층 복합건물이다. 이러한 공간의 다기능성은 도시 공간의 수직적 활용도와 문화 경제의 집약화를 상징하는 사례로 꼽힌다.

또한 타임스퀘어의 여러 광장과 보행로에서는 ‘TSQ 아트 프로젝트’를 통해 상시 공공예술이 전시된다. 조형물, 영상 설치, AR 기반 체험 콘텐츠까지 다양한 매체가 활용되며, 이는 단순한 ‘인증샷’ 이상의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관광객과 시민의 경험을 예술로 확장하는 이 시도는 세계 주요 도시들이 추진 중인 ‘공공성 회복’ 프로젝트와도 맥을 같이 한다.
4. ‘미디어 허브’로서의 변화: GMA 스튜디오의 이탈이 말하는 것

26년간 타임스퀘어의 랜드마크로 기능했던 ABC 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스튜디오가 2025년 6월 허드슨 스퀘어로 이사하며 방송을 종료한 것은, 미디어 산업의 물리적 거점이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굿모닝 아메리카’는 타임스퀘어의 대형 유리 스튜디오에서 실시간으로 뉴요커들의 일상과 관광객들의 열기를 방송에 담아내며, 이 공간 자체를 일종의 ‘브랜드 스튜디오’로 만들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과 방송 콘텐츠의 다양화, 그리고 팬데믹 이후의 원격근무 확산 등으로 인해 방송 제작의 물리적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ABC는 디즈니의 뉴 본사가 위치한 허드슨 스퀘어로 스튜디오를 통합 이전하면서, 고정비가 높은 타임스퀘어를 떠나 보다 효율적인 스튜디오 환경으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타임스퀘어의 미디어 중심지로서의 위상에 다소 변화가 생겼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는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의 도입 가능성을 시사한다. 예컨대 NFT 기반 공공광고, 인터랙티브 미디어 전광판, 실시간 스트리밍 부스 등의 도입은 타임스퀘어를 전통적 미디어의 공간에서 미래형 디지털 플랫폼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5. 타임스퀘어의 미래는 무엇을 향하는가
2025년 현재, 타임스퀘어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복합적인 도시 실험의 장이 되고 있다. 관광, 거주, 예술, 경제, 교통, 미디어가 교차하는 이 도시는 기존의 ‘아이콘’에서 ‘플랫폼’으로 변신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는 우려도 따른다. 급격한 재개발과 임대료 상승은 지역의 상업 다양성을 해칠 수 있으며, 과도한 브랜드화는 지역의 자율성과 비정형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한 상시 혼잡과 교통 문제, 쓰레기 및 보안 이슈는 타임스퀘어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임스퀘어는 여전히 도시 진화의 최전선에 있다. 이곳은 ‘불가능한 도시 공간’이 어떻게 재구성되고, 공공성과 수익성, 경험과 일상이 어떻게 교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사례다. 전 세계 도시들이 팬데믹 이후의 도시 비전을 고민하고 있는 지금, 타임스퀘어는 단순히 “세계의 교차로”가 아니라, 세계 도시 미래의 교차점이 되어가고 있다.
ⓒ 뉴욕앤뉴저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