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Bway] 미디어 황제의 그림자를 응시하다 —〈Murdoch: The Final Interview〉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을 둘러싼 논란은 늘 정치와 언론의 경계에서 진동해 왔다. 21세기 글로벌 미디어 지형을 가장 강하게 흔들어 온 인물이자, 동시에 권력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이런 인물을 오프브로드웨이 무대 한가운데 세워놓은 작품이 최근 Theater 555에서 공연 중인 〈Murdoch: The Final Interview〉다. 단 한 명의 배우가 90분 동안 머독의 삶과 카메라 뒤의 세계를 풀어놓는 1인극이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무대는 단순하다. 어두운 공간 위에 놓인 회전 의자 하나,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우는 영상과 프로젝션이 전부다. 하지만 이 미니멀한 구성은 오히려 ‘미디어 제국의 소음’을 시청각적으로 구현하는 장치가 된다. 머독의 마지막 인터뷰라는 설정 아래, 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뉴스코프와 폭스 미디어의 확장, 정치적 영향력, 가족과의 갈등, 그리고 언론윤리 논쟁까지 자신의 궤적을 마치 되감는 듯한 방식으로 되짚는다. 배우 제이미 잭슨(Jamie Jackson)은 머독뿐 아니라 그의 주변 인물들을 빠르게 전환하며 연기한다. 억양·표정·자세를 몇 초 만에 바꾸어가며 다양한 인물을 오가는 그의 연기는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확실한 장점이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연출 역시 디지털 기술과 1인극 형식을 결합해 흥미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영상과 사운드는 머독의 기억을 파편처럼 제시하고, 때로는 그의 말과 충돌하며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권력의 무게를 표현하는 조도 변화, 뉴스룸의 속도감을 연상케 하는 사운드, 정치적 스캔들이 터질 때의 번쩍임 등은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이는 오프브로드웨이가 가진 제한된 공간에서 ‘미디어 권력의 거대함’을 재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품의 한계도 명확하다. 무엇보다 머독이라는 거대한 인물을 90분, 그것도 1인극 형식으로 압축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서사적 공백을 남긴다. 그의 삶은 비판과 찬사가 공존하는 복잡한 스펙트럼 안에 있지만, 이 공연은 그 폭을 충분히 담아내기보다 풍자적 어조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 결과 언론 권력 구조나 정치적 유착 문제에 대한 분석은 아쉽게도 얕아지고, 장면 전환은 종종 산만해진다. 폭스뉴스와 보수 정치의 공조 같은 역사적 논란들은 언급되지만, 깊이 있는 탐구로 이어지지 않아 ‘비판은 강하지만 설득력은 약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플래시백과 영상·사운드 전환은 처음에는 신선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반복적 패턴이 드러나며 긴장감이 떨어진다. 특히 원작 텍스트가 머독의 개인적 성찰과 자기 책임에 대한 질문을 충분히 다루지 않아, 인터뷰라는 형식이 주는 심리적 깊이가 얕게 느껴지기도 한다. 즉, 관객의 기대는 큰데 작품이 포착해내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Murdoch: The Final Interview〉는 지금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가짜뉴스, 여론 조작, 정치적 편향, 미디어 신뢰 하락 등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러한 시대에, 언론 권력의 얼굴을 관객에게 다시 보여주며 “우리는 무엇을 믿어왔는가?”라는 근본적 고민을 환기한다. 이런 점에서 이 공연은 단순한 전기극이 아니라, 관객과 사회 전체를 향한 질문의 형태를 띤다.

결국 이 작품은 완벽하진 않지만, 지금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이미 잭슨의 뛰어난 1인 연기, 매체적 기법을 활용한 연출, 그리고 언론 권력에 대한 문제 제기 등은 공연의 완성도를 뒷받침한다. 깊이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미디어와 권력, 진실의 경계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한, 시대적 의미가 분명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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