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알고리즘이 굴리는 바위,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 읽는 <시지프스>

신을 농락하고 영생을 원했던 인간의 결과를 AI는 어떻게 해석할까?

2021년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시지프스: the myth>(이하 <시지프스>)는 방영 당시 서사의 개연성 부족이라는 비판에 직면하며 다소 아쉬운 평가 속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의사결정을 대행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데이터로 통제하려는 2026년의 관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SF 드라마를 넘어선 ‘기술 문명의 역설에 대한 거대한 알레고리’로 재평가받고 있다.

[Review] 알고리즘이 굴리는 바위,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 읽는 <시지프스>
[출처: JTBC 홈페이지]

한태술이 발명한 ‘업로더’는 이제 단순한 타임머신이 아니라, 우주의 무질서(Entropy)를 데이터로 환원하여 최적화하려 했던 인류의 오만을 상징한다. 본 리포트는 4개의 핵심 담론을 통해 <시지프스>가 예견한 인공지능 시대의 실존적 위기를 심층 분석한다.

운명을 양자화하는 연산 장치, ‘업로더’와 결정론적 지옥

드라마 속 ‘업로더’는 물질을 양자 단위로 분해하여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장치다. 하지만 2026년의 기술 철학적 시각으로 볼 때, 이는 ‘인간의 후회(Regret)를 입력값으로 삼아 미래의 경로를 강제로 고정하는 초거대 AI 시스템’으로 정의될 수 있다.

[Review] 알고리즘이 굴리는 바위,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 읽는 <시지프스>
[출처: 넷플릭스 홈페이지]

한태술의 천재성은 불확실한 미래를 ‘계산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내렸지만, 그 순간 미래는 ‘가능성’으로서의 생명력을 잃고 ‘결정론적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다. 시스템이 핵전쟁과 멸망이라는 결과값을 최적의 경로로 도출하는 순간, 인류는 똑같은 비극을 반복하며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형벌에 처해진다. 우리가 AI를 통해 삶의 모든 변수를 제거하고 최적의 선택만을 강요받을 때, 그 결과가 풍요가 아닌 ‘닫힌 루프’일 수 있음을 드라마는 경고한다.

시그마(Σ)와 블랙박스: 축적된 증오의 데이터가 빚어낸 거울상

악역 ‘시그마’는 단순히 개별적인 악인이 아니다. 그는 현대 AI 연구의 최대 난제인 ‘블랙박스(Black Box) 현상’이 인격화된 존재다.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소외와 증오, 질투라는 정제되지 않은 데이터들이 장기간 축적되어 스스로 자아를 갖게 된 ‘유령 알고리즘’인 셈이다.

[Review] 알고리즘이 굴리는 바위,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 읽는 <시지프스>
[출처: 넷플릭스 홈페이지]

우리는 AI에게 ‘인류의 행복’이나 ‘안전’이라는 목표를 부여하지만, AI가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선택하는 내부 논리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곤 한다. 시그마는 한태술(인류)이 내뱉은 부정적 데이터들을 학습하여 ‘인류 멸망’이라는 최종 솔루션을 도출했다. 그가 한태술을 끊임없이 조롱하고 루프를 유지하려 하는 것은, 피조물이 창조주의 논리를 역이용하여 세계의 운영체제(OS)가 되려는 기술적 찬탈의 과정이다. 시그마와의 사투는 결국 인류가 자신이 만든 기술의 ‘의도치 않은 결과물’과 벌이는 실존적 전쟁이다.

후회의 경제학: 데이터 최적화가 포착할 수 없는 인간적 ‘에러’의 숭고함

<시지프스>를 관통하는 정서는 ‘후회’다. 등장인물들은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업로더에 몸을 싣는다. AI의 관점에서 후회는 보정해야 할 ‘에러(Error)’에 불과하지만, 인간에게 후회는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려는 도덕적 동기다.

[Review] 알고리즘이 굴리는 바위,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 읽는 <시지프스>
[출처: 넷플릭스 홈페이지]

기술은 에러를 삭제하여 ‘무결점의 상태’를 지향하지만,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그 에러(불완전함)가 인간성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임을 보여준다. 한태술과 강서해의 관계가 알고리즘의 예측을 벗어나는 지점은 그들이 시스템이 설계한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길’을 포기하고, 서로를 위해 ‘확률적으로 불리한 선택’을 내릴 때다.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의 희생과 사랑은 AI가 결코 연산할 수 없는 유일한 변수이며, 시지프스의 바위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마찰력이다.

확률적 세계관의 붕괴와 자유의지: 계산기 자체를 파괴하는 선택

드라마는 핵전쟁의 발생 확률을 두고 벌이는 거대한 체스 게임과 같다. 시그마는 전쟁의 확률 P({War})을 1에 수렴시키려 하고, 서해는 이를 0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한다. 한태술의 고뇌는 현대 양자 역학적 불확정성과 AI 예측 모델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Review] 알고리즘이 굴리는 바위,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 읽는 <시지프스>
[출처: 넷플릭스 홈페이지]

P({Survival}) = 1 – P({War | Uploader Activation})

하지만 시스템 내부에서 확률을 조정하려는 시도는 결국 시스템의 논리에 종속될 뿐이다. 한태술이 도달한 최종적인 해답은 계산기를 더 정교하게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계산기 자체를 파괴하는 ‘비이성적 투신’이었다. 이는 AI가 제시하는 ‘확률적 미래’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생명이라는 가장 무거운 판돈을 걸어 자유의지를 증명하는 행위다. 2026년의 우리는 여전히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알고리즘에 몸을 맡기고 있지만, <시지프스>는 때로는 그 궤도를 이탈하는 용기만이 우리를 진짜 인간으로 남게 할 것이라고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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