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패권의 역사 ②] 위기와 백스톱에서 오늘까지

정해진 미래- 달러 패권 이후의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드러난 달러의 힘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달러 패권의 그림자와 힘을 동시에 보여준 사건이었다. 태국 바트화의 붕괴로 시작된 위기는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신흥국으로 번졌다. 공통점은 이들 국가가 달러에 고정된 환율 제도(페그)를 유지하면서도, 막대한 달러 표시 차입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금리 인상과 자본 유출 압력이 겹치자, 달러 부족은 곧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달러 패권의 구조 속에서 신흥국 금융은 늘 취약했고, 위기는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출처:Alexander Grey]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달러는 중심에 있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서 비롯된 위기는 월스트리트 금융기관들을 연쇄적으로 무너뜨렸고,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위협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위기가 미국에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으로 여전히 달러를 선택했다. 연준은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과 달러 스와프 라인을 열어 위기 확산을 막았고, 이는 달러가 단순한 미국 통화가 아니라 세계 유동성의 최종 공급자라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연준의 글로벌 백스톱 ― 스와프와 FIMA

2008년 이후 연준은 달러 패권을 제도적으로 공고히 했다. 2013년에는 미국,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 영란은행, 스위스 중앙은행, 캐나다 중앙은행 간의 달러 스와프 라인을 상설화했다. 이는 금융위기가 재발할 경우 언제든 달러를 공급할 수 있는 글로벌 안전망이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을 때, 이 안전망은 다시 가동되었다. 연준은 기존의 상설 스와프 라인 외에도 한국, 브라질, 멕시코 등 신흥국 중앙은행과 임시 스와프 협정을 맺어 달러 유동성을 공급했다. 또한 FIMA 레포 제도를 도입하여,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담보로 연준에서 직접 달러를 빌릴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장치들은 달러가 단순히 미국의 통화가 아니라, 세계 금융 시스템의 백스톱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기 때마다 세계는 달러를 찾았고, 미국은 이를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였다.

오늘의 도전 ― 제재, 위안화, 그리고 디지털 자산

그러나 달러 패권은 영원하지 않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 중앙은행의 해외 자산을 동결하고, 주요 은행들을 SWIFT에서 배제했다. 이는 달러와 서방 금융 시스템이 강력한 제재 도구임을 입증했지만, 동시에 많은 국가들에게 “달러 의존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은 자국 통화 결제와 양자 통화 스와프를 늘려가고 있고, 위안화 국제화 노력도 가속화되고 있다.

IMF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은 2001년 72%에서 2024년 58%로 낮아졌다. 여전히 과반이지만, 점진적 하락세는 분명하다. 국제결제시스템(SWIFT)에서 달러 사용 비중은 약 50%를 유지하지만, 위안화도 2025년 기준 2.9% 수준으로 올라섰다. 아직 격차는 크지만, 새로운 균열의 조짐이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또한 블록체인 기반의 스테이블코인과 각국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국제 결제의 대안 실험으로 떠오르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시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연동형(USDT, USDC)이어서 달러 패권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중국이나 다른 신흥국이 자국 통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을 국제 무역 결제에 본격 도입한다면, 이는 달러 체제에 구조적 도전이 될 수 있다.

여전히 견고한가, 아니면 전환기인가

달러는 여전히 국제 금융의 언어다. 외환거래의 88%에 달러가 관여하고, 국제 무역 인보이스의 절반 이상이 달러로 작성된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보유한 국채 중 미국 국채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무엇보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사람들은 여전히 달러를 찾는다. 이는 달러 패권이 단순한 환율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인프라, 군사력, 동맹 네트워크, 심지어 문화적 영향력까지 결합된 복합적 현상임을 보여준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그러나 역사는 달러 패권이 불변의 질서가 아님을 일깨운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탄생, 닉슨 쇼크, 페트로달러의 부상, 그리고 연준의 글로벌 백스톱까지 달러 패권은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위안화 국제화, 디지털 화폐 실험, 제재 도구화에 따른 불신은 또 다른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맺음말

달러 패권의 역사는 미국 경제의 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위기 때마다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낸 적응력, 정치적 동맹과 군사적 힘이 뒷받침된 전략, 그리고 금융시장의 깊이가 결합된 결과다. 이제 21세기 중반을 향해 가면서, 달러는 여전히 중심이지만 새로운 경쟁자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달러 패권의 역사 ①]이 기원을 다뤘다면, 이번 [②]에서는 그 지속과 도전을 살펴보았다. 남은 과제는 이 흐름이 어떻게 결론지어질 것인가이다. 달러 패권은 점진적으로 약화될까, 아니면 새로운 형태로 재편될까. 확실한 것은, 그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세계 경제 질서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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