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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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의 명과 암: 미국 경제가 직면할 기회와 위험

디지털 런의 그림자, 금융 불안의 가능성

폭발적 성장, 2조 달러 시장을 향해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시장의 조연에서 이제는 중심 무대로 올라섰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주목받는 동안, 실질적인 거래와 자금 이동을 떠받쳐온 것은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다.

2020년대 초반만 해도 몇백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던 시가총액은 이제 수천억 달러에 달한다. 주요 리서치 기관과 투자은행들은 2028년 전후로 시장 규모가 2조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이 폭발적 성장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첫째는 디지털 금융 수요의 확대다. 국경 없는 송금, 원격 근로자의 급여 지급, 글로벌 이커머스의 정산 등에서 스테이블코인의 효용이 입증되고 있다. 둘째는 안전자산 선호다.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 대신, 달러에 고정된 스테이블코인이 투자자들에게 ‘디지털 현금’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테더(USDT)는 여전히 가장 큰 발행량을 자랑하지만, 규제 친화적 이미지를 가진 USDC 역시 빠르게 성장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경쟁 구도는 뚜렷하지만,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절대적 지위는 흔들림이 없다.

문제는 성장의 속도가 미국 경제와 금융 당국이 준비한 규제의 속도를 훨씬 앞질렀다는 점이다. “시장 성장 곡선이 이렇게 가파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한 금융 정책 연구자의 말처럼, 제도적 장치와 감독 체계는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책과 규제, 시험대에 오르다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을 가장 경계하는 곳은 미국 재무부와 연준이다. 이들은 스테이블코인이 가진 이중적 속성을 잘 알고 있다. 한편으로는 달러 패권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 불안정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

2025년 의회를 통과한 GENIUS Act는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했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반드시 1:1 준비금을 보유하고, 그 자산을 현금이나 단기 국채 같은 고유동성 자산에 한정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반기별 보고서 제출과 AML(자금세탁방지) 규제 준수도 의무화했다.

이와 동시에 뉴욕 금융감독청(DFS)은 2022년부터 이미 엄격한 상환 가능성·월별 증빙 규제를 적용해 왔고, 이는 사실상 연방 규제의 전신 역할을 했다.

국제기구의 시각은 보다 냉정하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의 세 가지 시험, 즉 단일성·탄력성·무결성을 아직 충족시키지 못한다”며, 본원통화를 대체할 수 없다는 신중론을 강조했다.

결국 정책과 규제는 시험대에 올랐다. 시장은 급속히 팽창하는데, 감독 체계는 뒤따라가는 형국이다. “제도화가 늦으면 위험이, 너무 빠르면 혁신이 죽는다.” 이 딜레마가 당국을 괴롭히고 있다.

기업과 투자자, 새로운 기회를 찾다

규제가 미처 자리 잡기도 전에, 기업과 투자자들은 스테이블코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먼저 글로벌 기업들이다. 미국과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은 이미 트레저리 관리와 국경 간 지급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파일럿 형태로 활용하고 있다. 결제 속도와 비용 절감 효과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일부 기술 기업들은 원격 근로자 급여를 USDC로 지급하고, 현지에서 달러로 환전하는 방식을 시험 중이다.

핀테크 업계는 더 발 빠르다. 스트라이프, 페이팔 같은 기업들은 자사 결제망에 스테이블코인을 접목하며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다. 특히 중소 온라인 상인들에게는 가맹점 수수료 절감이라는 현실적 이익이 크다.

투자자들에게도 기회는 크다. 온체인 대출과 예치 서비스는 전통적인 머니마켓펀드와 비슷한 수익을 제공하면서도, 디지털 자산 생태계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이는 새로운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물론 위험도 존재한다. 해킹, 사기, 규제 불확실성은 여전히 시장을 위협한다. 그러나 기회를 노리는 자금의 흐름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디지털 런의 그림자, 금융 불안의 가능성

스테이블코인의 ‘명(明)’이 분명하다면, ‘암(暗)’도 존재한다. 가장 큰 위험은 디지털 런(digital run)이다.

만약 대규모 발행사에서 신뢰 문제가 발생해 투자자들이 일시에 상환을 요구한다면, 준비금으로 보유한 단기 국채와 레포 자산이 대거 매각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금융시장 전반에 충격을 주고, 단기금리가 급등하며 유동성 경색을 불러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디지털 뱅크런”이라고 부른다. 전통적 은행 런과 달리,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는 거래가 몇 분 만에 이뤄지기 때문에 속도와 규모가 훨씬 크다.

또한 사이버 보안과 자금세탁 우려도 여전하다. 최근 몇 년간 스테이블코인을 경유한 불법 송금 사례가 적발되며, 국제 제재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경제가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통화정책의 약화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려도, 온체인에서 형성되는 스테이블코인 금리는 다른 궤적을 그릴 수 있다.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전달되는 경로가 왜곡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은 미국 경제에 두 얼굴을 동시에 드러낸다. 한쪽은 혁신과 기회, 다른 한쪽은 불안과 위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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