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달러 패권을 다시 묻는가
세계 경제의 언어는 달러다.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체결되는 채권 거래, 런던 금속거래소에서 책정되는 원자재 가격, 상하이와 싱가포르를 거쳐 이동하는 컨테이너 화물의 인보이스까지, 달러는 21세기 국제경제를 움직이는 기본 단위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 “달러 패권”은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20세기 격동의 국제질서 속에서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때로는 흔들리며, 다시 강화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 연준의 금리 정책, 대러시아 제재와 이에 따른 “디-달러화(de-dollarization)” 논쟁을 매일 접한다. 위안화 결제 시스템이나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새로운 실험들은 달러 중심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달러 패권의 역사적 기원을 살펴야 한다. 달러가 어떻게 국제통화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제도적·정치적 선택이 있었는지를 고찰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브레튼우즈 체제 ―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순간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시점에 44개 연합국 대표들이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즈에 모였다. 회의의 목표는 단순했다. 전쟁의 폐허를 수습하고, 다시는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금융 붕괴를 겪지 않기 위한 새로운 국제금융 질서를 세우는 것이었다.
회의 결과, 각국 통화는 달러에 고정하고(±1% 범위 내 조정 허용), 달러는 금 1온스=35달러로 태환하도록 결정되었다. 즉, 달러는 금과 직접 연결되고, 다른 모든 통화는 달러를 통해 간접적으로 금에 묶였다. 이렇게 해서 달러는 “금본위제의 유일한 대리인”이 되었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같은 자리에서 탄생했다.
전쟁으로 유럽과 일본의 경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미국은 세계 금 보유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달러는 자연스럽게 신뢰를 얻었다. 유럽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1948~1952)에서 133억 달러가 투입되며 달러 유통은 가속화되었다. 이 시기 달러는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자유세계의 재건과 미국식 경제질서의 상징이었다.
닉슨 쇼크 ― 금태환의 종언과 변동환율제
그러나 이 “달러=금”의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19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 비용과 해외 원조, 다국적 기업의 해외 확장으로 인해 달러는 과잉 공급되었다. 각국 중앙은행은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려 했고, 미국의 금 보유고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19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금태환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닉슨 쇼크였다. 달러는 더 이상 금으로 교환되지 않았고, 브레튼우즈 체제는 사실상 붕괴되었다. 이후 1973년부터 주요 통화들은 자유변동환율제로 전환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달러는 금의 뒷받침을 잃었음에도 국제통화 지위를 유지했다. 이는 미국 경제 규모와 금융시장의 깊이, 그리고 달러를 대체할 경쟁 통화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미국은 더 이상 금의 제약을 받지 않고 달러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달러 패권의 성격은 “금에 의해 보증된 화폐”에서 “국력과 신뢰로 유지되는 화폐”로 변모한 것이다.
페트로달러와 글로벌 금융화 ― 달러의 새로운 무대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 달러 패권은 흔들릴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오일 쇼크와 함께 달러는 오히려 새로운 무기를 얻게 되었다. 1974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경제·군사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사우디가 석유 판매 수익을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틀을 마련했다. 이로써 달러는 석유 거래의 핵심 통화로 자리 잡았다.

“석유는 반드시 달러로만 결제해야 한다”라는 조약은 없었다. 그러나 사우디와 미국의 긴밀한 협력, 그리고 국제 원유 거래에서 달러가 기본 통화로 사용되는 관행이 확립되면서,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정착되었다. 이는 전 세계가 원유 수입을 위해 달러를 확보해야 하는 구조를 만들었고, 달러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를 보장했다.
동시에 유로달러 시장과 런던의 금융허브는 급팽창하며, 달러는 상품 결제와 금융투자의 표준 언어로 굳어졌다. 1980년대에는 중남미 부채위기와 브래디 플랜을 통해 달러 표시 채권이 신흥국 금융의 기본 틀로 자리잡았다. 1990년대 초 냉전 종식과 함께 미국식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달러는 단순한 통화를 넘어 글로벌 금융화의 심장으로 기능했다.
맺음말
브레튼우즈의 설계와 닉슨 쇼크, 그리고 페트로달러의 등장까지, 20세기 후반 달러는 세 차례의 전환점을 거치며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했다. 금의 담보를 잃었음에도, 달러는 오히려 더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며 국제 금융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달러 패권을 둘러싼 도전은 여전히 계속된다. 그러나 그 기원을 돌아볼 때, 달러의 힘은 단순히 경제적 지표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선택, 정치적 동맹, 금융시장의 깊이가 결합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이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읽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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