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넷째 주 금요일. 미국의 도시들은 이른 새벽부터 기묘한 열기로 가득 찬다. 새벽 어스름 속, 수백 명의 인파가 매장 문 앞에 줄을 서고, 카트가 밀리고, 셔터가 오르는 순간 사람들은 일제히 뛰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가장 빠르게 할인 상품을 쟁취하고, 누군가는 그 광경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는다.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 이 말은 더 이상 단순한 세일 행사가 아니라, 현대 미국 자본주의의 의식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그러나 이 하루의 역사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경제와 문화, 그리고 인간 욕망의 궤적이 만들어낸 긴 이야기다.

Ⅰ. ‘검은 금요일’의 시작 ― 필라델피아의 혼잡한 거리에서 태어난 말
오늘날의 블랙프라이데이는 소비의 축제처럼 여겨지지만, 그 출발점은 오히려 불쾌한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1950년대 후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경찰관들은 추수감사절 다음날이 오면 긴장했다. 도시의 중심가가 쇼핑객과 관광객, 그리고 미식축구 팬들로 뒤엉켜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날은 ‘Army–Navy Game’이 열리는 주말이기도 했고, 수많은 차량이 한꺼번에 도심으로 몰렸다. 경찰은 그날을 “Black Friday”라 불렀다.
‘Black’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하나는 교통체증, 범죄, 혼잡, 그리고 피로. 다른 하나는 상점 주인들에게는 뜻밖의 축복이었다. 사람들은 쇼핑백을 가득 들고 나왔고, 상점의 계산기는 쉴 틈이 없었다. 필라델피아 언론이 이 표현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61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지역 신문에는 “추수감사절 다음날은 도심의 지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서 ‘Black Friday’라는 단어는 혼잡과 스트레스를 상징했다.

그러나 상점주들은 곧 이 표현을 부정적 의미로만 둘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Black’을 ‘흑자(Black Ink)’로 바꿔 읽기 시작했다. 붉은색 잉크로 적자(Deficit)를 표시하던 회계 장부가 이날 이후 검은색 잉크로 전환된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검은 금요일’은 불쾌한 날에서 번영의 날로 바뀌었고, 상업적 언어가 도덕적 이미지를 덮었다.
Ⅱ. 자본주의의 축제 ― 적자에서 흑자로, 신화의 탄생
1970년대 후반, 블랙프라이데이는 필라델피아를 넘어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소매업계는 이 날을 연말 매출의 분수령으로 규정했고, 언론은 ‘국가 경제의 온도계’로 묘사했다. 대형 백화점 체인과 쇼핑몰은 추수감사절 다음날 문을 열며 ‘도시 전체를 쇼핑센터로 바꾸는’ 이벤트를 벌였다. 광고 문구는 갈수록 자극적이었다. “1년에 단 하루, 가격이 사라진다.” “가장 먼저 들어오는 자가 승리한다.” 소비는 경쟁이 되었고, 경쟁은 문화가 되었다.
1980년대 들어 블랙프라이데이는 완전히 제도화되었다. 뉴스 카메라가 새벽 5시 매장 앞 줄을 중계했고, 방송국은 할인율과 재고량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언론이 만든 ‘풍경’은 곧 전통으로 굳어졌다. 사람들은 이 날을 ‘세일의 날’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이를 마케팅의 핵심 도구로 삼았다. 회계적 ‘흑자’의 은유는 이 시기에 완성되었고, 블랙프라이데이는 더 이상 경찰의 언어가 아닌 기업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블랙프라이데이가 ‘경제적 서사’를 넘어 ‘문화적 의례’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날의 열기 속에는 단순한 쇼핑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기다림”과 “획득”이라는 감정의 순환이었다. 물건을 싸게 산다는 경제적 만족뿐 아니라, 공동체적 참여감이 결합된 감정적 경험이었다. 사람들은 함께 새벽을 지새우며, 자신이 거대한 소비 서사의 일부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Ⅲ. 반짝이는 축제의 이면 ― 노동, 폭력, 그리고 소비의 피로
하지만 ‘경제의 축제’가 사람들에게 언제나 즐거움만을 준 것은 아니었다. 블랙프라이데이의 이면에는 노동과 착취의 문제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소매업체 직원들은 전날인 추수감사절에도 쉬지 못하고 새벽부터 근무해야 했다. 장시간 노동, 임금 체불, 인력 감축은 매년 반복되는 뉴스의 소재였다. 2012년, 대형마트 월마트 직원들이 추수감사절 당일 근무를 거부하며 파업을 벌인 사건은 이 문제를 세상에 드러냈다.
또한, 블랙프라이데이는 종종 폭력의 날이 되기도 했다. 할인 상품을 먼저 잡기 위한 몸싸움이 뉴스에 등장했고, 매장 앞 인파에 깔려 사망한 사고도 있었다. 2008년 뉴욕 롱아일랜드의 한 월마트에서는 개점 직후 인파에 밀려 보안요원이 숨졌다. 이 사건은 “소비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남았다.
환경적 측면에서도 비판이 커지고 있다. 대량 생산과 과잉 포장, 단기 할인 정책은 탄소 배출과 폐기물 증가로 이어진다. 지속가능성을 내세우는 브랜드조차 블랙프라이데이 때는 ‘예외’를 두곤 한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점점 더 피로해지고 있다. 구매의 즐거움이 아닌, ‘할인을 놓치면 손해 본다’는 강박이 그들을 움직인다. 블랙프라이데이는 언제부턴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소비’의 날이 되어가고 있다.
Ⅳ. 디지털 시대의 변주 ― 사이버 먼데이와 글로벌 소비 전쟁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상거래의 확산은 블랙프라이데이를 다시 한번 변형시켰다. 오프라인 매장이 열리기 전, 온라인 쇼핑몰은 이미 할인전을 시작했다. 그 결과, ‘사이버 먼데이(Cyber Monday)’가 탄생했다. 2005년, 미국의 전자상거래협회가 처음 사용한 이 용어는, ‘월요일에 직장 컴퓨터로 온라인 쇼핑을 하는 트렌드’를 포착한 말이었다. 이후 사이버 먼데이는 오프라인 블랙프라이데이와 쌍벽을 이루는 소비 시즌으로 성장했다.
세계화는 이 현상을 더 확산시켰다. 캐나다, 영국, 독일, 일본, 한국 등지에서도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이 도입되었다. 아마존, 이베이, 알리익스프레스 등 글로벌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할인 행사는 국경을 넘어선 소비의 전쟁터가 되었다. 특히 한국의 온라인 쇼핑몰들은 ‘코리아 세일 페스타’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형태의 행사를 진행하며, 미국식 소비 문화를 국내 시장에 이식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이동한 블랙프라이데이 역시 문제를 안고 있다. ‘가짜 세일’ 논란, 개인정보 유출, 알고리즘 조작, 가격 불투명성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온라인 유통망의 과열 경쟁은 배송 노동자들의 장시간 근로를 초래하고, 물류 인프라의 과부하로 이어졌다. 블랙프라이데이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화했지만, 동시에 그에 맞는 새로운 윤리적 고민을 낳았다.
Ⅴ. ‘블랙’의 의미를 다시 묻다 ― 소비 이후의 사회를 향하여
블랙프라이데이의 ‘블랙’은 여전히 해석의 여지가 많은 단어다. 그것은 흑자의 상징이자 혼잡의 색이며, 동시에 자본주의의 그늘을 드러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한 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이 하루는 미국 사회의 거울이 되어왔다. 대공황, 전쟁, 호황, 위기를 거치며 블랙프라이데이는 늘 시대의 심리를 반영했다.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소비했고, 소비는 위안을 대신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신화는 균열을 맞이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Buy Nothing Day(소비 없는 날)’ 운동에 동참하며, 블랙프라이데이를 거부한다. 그들은 소비를 멈춤으로써 자본의 속도를 늦추고, 진정한 자유를 회복하려 한다. 동시에 일부 기업들은 “그린 블랙프라이데이”, “기부의 금요일” 등 새로운 형태의 참여를 시도한다. 소비의 윤리가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블랙프라이데이는 이제 단순한 세일이 아니라, 현대인의 가치 판단을 시험하는 날이 되었다. 우리는 그날 무엇을 사고, 무엇을 포기하며, 무엇을 후회하는가? 그 선택의 순간마다 ‘블랙’의 의미는 다시 쓰인다. 소비의 열기가 식은 자리에서 남는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 사회가 지닌 관계와 윤리의 흔적이다.
결국,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문화적 상징이자, 그 내부 모순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할인율의 숫자 뒤에는 수많은 노동, 자원,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쌓여 있다. ‘검은 금요일’은 단지 쇼핑의 날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가치와 도덕을 비추는 어두운 거울이다. 그리고 그 거울을 마주할 용기야말로, 진정한 소비 이후의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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