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세기 동안 민주주의는 반복되는 충격과 반동 속에서도 제도를 복원하고 규범을 재정렬하는 능력을 입증해 왔다. 1920~40년대 사이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부상은 자유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냈지만, 전쟁의 폐허 위에서 이루어진 헌정 복원과 제도 재설계는 ‘패배를 통한 학습’이 가능한 정치체의 강점을 보여줬다. 독일의 기본법, 일본의 전후 헌정 질서, 이탈리아의 공화정 전환은 모두 권력분립, 사법 독립, 정당체계의 재구성 같은 장치를 강화하며 권위주의 복귀의 비용을 높였다. 전간기 붕괴—전후 복원—제도적 내구성이라는 순환은 민주주의가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그 실패 자체를 재발 방지의 설계 자료로 전환하는 독특한 진화 메커니즘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후 국제질서의 설계 또한 민주주의 회복력의 확장판이었다. 유엔 체제, 브레튼우즈 금융기구, 유럽통합의 단계적 심화는 국내 정치의 견제 장치를 국경 너머의 제도 협력으로 연결했다. 특히 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서 유럽연합으로 이어진 구조는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 법의 지배와 합의 절차를 초국가적 수준에 내장시키며, 안보·경제 위기 때마다 정책 조정과 분쟁 조절의 안정판으로 작동했다. 민주주의가 국내의 규범과 절차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복원력을 다자 규칙에 투영해 국제적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이 전후 경제성장과 장기 평화의 기반이 되었다.
탈식민화의 파도 속에서도 회복력은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었다. 독립 직후 권위주의로 선회하거나 군부 쿠데타를 겪은 국가들이 적지 않았지만, 민간 주도의 헌정 복귀와 시민사회 성장, 사법권 독립을 향한 점진적 개혁이 반복되며 ‘제도적 되돌림’이 누적됐다. 인도의 선거 민주주의, 라틴아메리카의 민주화 회귀, 남유럽과 동아시아의 권위주의 이행은 선거만이 아니라 정당 재편, 지방분권, 인권 기구의 제도화를 동반했다. 민주주의 회복력은 완만하고 불균등했지만, 실패와 회귀의 국면조차 다음 전환을 준비하는 학습 과정으로 흡수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관성이 되었다.
1970년대 석유위기,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경제 충격은 민주주의의 취약 지대를 드러냈다. 그러나 독립 중앙은행의 설계, 자동안정화 장치, 의회의 예산통제와 감사, 언론·시민사회의 감시 결합은 시장과 정치를 분리하기보다 상호 견제하는 장기 장치를 낳았다. 위기 직후 반(反)정치 정서와 포퓰리즘이 고개를 들었지만, 조세·복지·거버넌스 개혁을 둘러싼 공론장의 복귀가 반복되면서 제도는 충격 흡수력을 키웠다. 요지는 민주주의가 성장률을 늘 언제나 최대로 만들진 못해도, 위기 비용을 사회적으로 합리화하고 분배하는 절차를 발전시켜 총체적 붕괴를 피하는 경향을 강화해 왔다는 점이다.
인권과 시민권의 확대도 회복력의 중요한 면모였다. 여성 참정권의 보편화, 민권운동, 성소수자 권리의 제도화, 이주민·소수자 보호 규범의 확산은 다수결의 전제 위에 소수 보호의 헌정 원리를 중층화했다. 이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제도화된 협상과 판결, 정책 실험으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처리 능력을 만들었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패자’의 안전망을 두툼하게 하여 패배를 체제 전복의 유혹이 아닌 다음 선거와 소송, 입법 로비로 전환하도록 유인했고, 이 점이 체제의 장기 존속을 가능케 했다.
정보기술의 확산과 플랫폼 경제의 등장 이후 민주주의는 허위정보와 양극화라는 구조적 도전을 맞았다. 그러나 데이터 투명성 확대, 선거 무결성 보호 장치, 플랫폼 규제와 공영 저널리즘의 복원 논의, 시민 미디어 리터러시의 제도화 같은 대응이 빠르게 축적됐다. 디지털 공간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통로였던 초기 단계와 달리, 최근에는 의회·행정부·사법부가 각각의 권한으로 알고리즘 책임성과 선거정보 보호를 규율하려는 시도가 늘었고, 시민사회는 탐사보도·팩트체크·오픈데이터 운동으로 대응 벡터를 다변화했다. 회복력의 본질은 완벽한 방어가 아니라, 공격 벡터가 바뀔 때 조정 속도와 학습 능력으로 균열을 좁혀 가는 데 있다.

안보와 전쟁의 영역에서도 민주주의 회복력은 장기 효과를 냈다. 민주국가 간 전쟁 회피 경향과 동맹의 제도화는 군사력보다 규범과 경제적 상호의존을 억지의 핵심으로 부상시켰다. 냉전 종식 후의 재조정,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법치 논쟁,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집단 억지 강화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위협 앞에서 단기적 일탈을 보이기도 하지만, 다층 동맹과 제재·국제형사 사법 협력으로 다시 규범·절차의 궤도로 복귀하는 경향을 축적했다. 이는 권위주의 블록과의 경쟁에서도 ‘장기전에서의 체력’을 결정하는 요소로 작동했다.
팬데믹과 같은 비전통적 재난은 민주주의 통치가 효율성에서 항상 우위를 갖지 않음을 드러냈지만, 투명한 데이터 공개, 의회 감독, 사법적 권리 구제, 지방정부의 실험과 상향식 확산 같은 메커니즘이 정책 신뢰를 복원했다. 초기의 혼선과 정책 실패는 공청회, 국정조사, 감사와 예산 재설계를 통해 제도화되었고, 이후 공중보건 역량은 위기 전보다 상향 평준화됐다. 민주주의 회복력은 ‘신속·단일 명령’ 대신 ‘분산·조정·책임’의 명확화로 집행 역량을 키우는 방식으로 축적되었다.
물론 민주주의 후퇴(backsliding),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사법·언론의 정치화, 제도 불신의 심화는 지난 10여 년간 반복된 역풍이었다. 회복력은 이런 후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후퇴의 비용을 키우고 되돌림의 경로를 남겨 두는 설계 능력을 의미한다. 독립기관의 임기 보장, 헌법재판과 선거관리의 자율성, 지역자치의 역량 축적, 정당 내부민주주의와 공천제도 개선, 시민사회의 자원 동원 능력은 후퇴의 깊이를 제한하고 복귀의 속도를 높이는 ‘보이지 않는 보험’으로 기능했다. 역사적 사례가 말해 주는 것은,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는 체제가 아니라 무너질 때 다시 일어나는 법을 학습한 체제라는 점이다.
요컨대 지난 100년의 인류사는 민주주의가 승리만으로 진보한 것이 아니라, 패배와 균열을 제도·규범·문화의 학습 자료로 전환하는 회복력으로 전진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쟁과 경제위기, 탈식민과 세계화, 디지털 전환과 팬데믹을 거치며 민주주의는 ‘절차의 정당성’과 ‘권력의 책임성’, ‘소수 보호’와 ‘공론장의 재활성화’를 교차 강화해 왔다. 앞으로도 민주주의가 직면할 도전은 기술, 안보, 기후, 불평등이라는 복합 위기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세기의 경험은, 위기 그 자체가 민주주의를 끝내기보다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개조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웅변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회복력이 인류사를 바꿔 온 방식이며, 다음 100년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낙관의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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