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정말 ‘보이지 않는 손’을 더 정교하게 만들고 있는가?
AI 시대의 시장은 겉보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효율적으로 보인다. 가격은 실시간으로 조정되고, 수요와 공급은 알고리즘을 통해 예측된다.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더 ‘적절한’ 상품을 추천받고, 기업은 불필요한 비용을 줄인다. 이 모든 과정은 마치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기술을 통해 고도화된 결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익숙한 비유는 지금의 현실을 설명하기에는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결코 자동적 정의의 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한된 조건 아래에서 개인의 이익 추구가 사회적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관찰에 불과했다. 스미스는 시장을 신뢰했지만, 시장 참여자를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는 상인과 자본가들이 공공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독점과 담합을 반복적으로 경계했다.
AI 시대의 시장은 이 경고를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오늘날 시장의 핵심 행위자는 더 이상 다수의 개인이 아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소유한 소수의 플랫폼 기업이 시장의 구조 자체를 설계한다. 추천 시스템은 소비자의 선택을 ‘예측’하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선택의 지형을 결정한다. 가격은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코드의 산물이며, 시장은 자연 질서가 아니라 설계된 환경이 된다.
이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 기업의 서버 안에서 작동하는 명확한 손이다. 애덤 스미스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자유시장의 진화가 아니라 자유시장의 전제가 무너진 상태에 가깝다. 시장이 분산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집중된 권력의 연산 결과가 되는 순간, 보이지 않는 손은 작동을 멈춘다.
노동이 더 이상 부를 만들지 못한다면, 국부는 어디서 오는가?
AI 시대에 가장 불편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더 이상 노동을 통해 부를 창출하지 못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면, 국부는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자동화된 생산, 알고리즘 기반 서비스, 생성형 AI의 확산은 노동의 가치를 급격히 낮추거나, 최소한 가시성에서 밀어낸다. 인간은 일하고 있지만, 그 일은 점점 시장에서 가격을 매기기 어려운 영역으로 이동한다.
이 상황은 『국부론』의 핵심 명제—노동은 부의 원천이라는 주장—를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를 더 깊이 읽어보면, 그의 노동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협소한 의미의 노동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미스에게 노동은 단순히 시간을 들여 일하는 행위가 아니라,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능력 전체였다.

AI는 결코 가치의 진공 상태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데이터는 인간의 언어, 경험, 판단의 축적이며, 알고리즘은 인간이 설정한 목적과 기준 위에서 움직인다. AI가 생산하는 결과물은 인간 노동의 연장선에 있다. 문제는 이 노동이 더 이상 임금이라는 형태로 보상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부는 증가하지만, 그 국부가 다수의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다.
애덤 스미스는 이 상황을 낯설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미 18세기 자본주의 초기에, 생산성이 증가해도 노동자의 삶이 반드시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국부론』은 효율의 찬가가 아니라, 번영의 조건을 묻는 책이다. 그리고 그 조건은 언제나 다수의 생활 안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AI 시대의 국부는 더 이상 노동 시간의 합이 아니다. 그것은 데이터, 네트워크,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집합적 결과다. 그렇다면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분배다. 국부가 어디서 오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가 핵심이 된다. 이 질문은 애덤 스미스의 세계관 안에서 충분히 정당한 질문이다.
빅테크의 부와 지식 독점은 피할 수 없는 미래인가?
AI가 빅테크 기업들의 부와 지식 독점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데이터는 규모의 경제를 만들고, 알고리즘은 규모가 클수록 정교해진다. 이 구조에서는 선두 기업이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그 데이터를 통해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며, 다시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순환이 발생한다. 이는 경쟁이 아니라 집중의 논리다.

중요한 점은, 애덤 스미스가 이 상황을 이상 현상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독점으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독점을 막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독점이 사회를 파괴하지 않도록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있었다.
AI 시대의 빅테크는 단순한 기업이 아니다. 그것은 정보 인프라이며, 사회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행위자다. 『국부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존재를 완전히 시장에 맡기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임이다. 스미스가 옹호한 자유시장은 권력이 분산된 상태에서만 작동한다.
따라서 빅테크 독점에 대한 규제는 반시장적 조치가 아니다. 그것은 시장이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복원하는 행위다. 데이터 접근의 공공성, 알고리즘 투명성, 플랫폼의 인프라적 성격에 대한 인정은 스미스적 자유주의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사상을 오늘의 조건에 맞게 적용하는 일에 가깝다.
문제는 정치적 의지다. AI 시대의 국가는 더 이상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의 이분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느냐다. 시장을 대신해 생산하는 국가가 아니라, 시장이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도록 규칙을 설계하는 국가가 요구된다.
노동 이후의 시대, 인간은 어떤 존재로 남게 될 것인가?
AI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경제 구조가 아니라, 인간의 위치다.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노동자였다.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으며, 그 임금을 통해 삶을 유지했다. 그러나 AI가 생산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순간, 이 공식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이때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우리에게 뜻밖의 힌트를 제공한다. 그는 인간을 단순한 노동 단위로 보지 않았다.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을 함께 읽으면, 스미스에게 인간은 경제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도덕적·사회적 존재였다. 시장은 인간을 위한 수단이지, 인간을 대체하는 목적이 아니었다.
AI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노동자에서 시민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다. 어떤 기술을 허용할 것인지, 생산성 증가의 혜택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자동화의 속도를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지는 더 이상 시장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노동을 통한 부 창출이 약화되는 시대에, 국부의 정당성은 생산이 아니라 분배와 참여에서 나온다. 기본소득, 공공 서비스 확대, 교육과 정보 접근의 보편화 같은 논의는 이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문제의식을 다음 단계로 확장하는 일이다.
맺음말: 『국부론』은 AI 시대에도 끝나지 않은 질문이다
AI는 자본주의를 끝내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를 더 정직하게 드러낸다. 생산성은 극대화되지만, 그 혜택은 자동으로 공유되지 않는다. 빅테크의 독점은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현 체제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렇기에 해법 역시 기술이 아니라 제도와 시민적 판단에 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해답집이 아니다. 그것은 질문의 책이다. 국부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떤 조건에서 정당화되는가. AI 시대에 이 질문들은 더 절실해졌다. 인간이 노동을 통해 부를 만들지 못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인간이 사회를 설계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AI 이후의 자본주의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하다. 국부가 늘어나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번영한 사회라는 애덤 스미스의 기준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그 기준을 다시 묻는 일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경제적·도덕적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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