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는 전 세계 어디서나 사랑받는 음식이지만, 뉴욕·뉴저지·코네티컷, 이른바 트라이스테이트 지역에서의 피자는 단순한 한 끼를 넘어선다. 여기서는 한 조각의 피자가 곧 문화와 역사, 그리고 지역 정체성의 상징이 된다. 세 주 모두 얇은 크러스트 계열을 자랑하지만, 각자의 피자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번 로드트립은 이 세 가지 스타일을 하루 만에 모두 경험하면서,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시대의 흔적을 맛보는 여정이다.
첫 번째 여정 – 뉴욕, 클래식 슬라이스의 도시
뉴욕은 ‘뉴욕 스타일 피자’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브랜드가 되어 있다. 얇고 넓은 크러스트, 적당히 바삭하면서도 접어 들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운 가운데, 토마토 소스와 모짜렐라 치즈의 비율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뉴욕의 피자는 길거리에서 한 조각씩 사 먹는 ‘슬라이스 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대도시의 빠른 생활 리듬 속에서, 주문하면 몇 분 안에 손에 쥘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고, 피자는 그 조건에 완벽히 부합했다.

그리니치 빌리지의 조스 피자(Joe’s Pizza)는 이 문화의 교과서 같은 존재다. 1975년 개업한 이래, 이곳은 화려한 토핑보다 ‘기본의 완벽함’을 추구해왔다. 도우는 매일 매장에서 직접 반죽하고, 토마토 소스는 산미와 단맛이 균형을 이루며, 치즈는 과하지 않게 올려져 소스와 함께 어우러진다. 한 조각을 집어 들고 접어 베어 물면, 얇은 크러스트의 쫄깃함과 소스의 상큼함, 치즈의 부드러운 고소함이 한 번에 퍼진다. 이 한 입이야말로 수십 년간 뉴욕 피자의 표준이 되어온 맛이다.
뉴욕의 피자는 단순히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만이 아니다. 20세기 초, 수많은 유럽 이민자가 몰려들면서 값싸고 든든하며,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화덕과 간단한 재료만 있으면 대량 생산이 가능했던 피자는 곧 도시의 주식처럼 자리 잡았다. 이후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성장과 함께 냉동 피자와 배달 서비스가 도입되면서 대중성은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두 번째 여정 – 뉴저지, 토마토 파이의 전통
뉴저지의 피자 문화는 뉴욕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독자적인 전통도 뚜렷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트렌턴 토마토 파이(Trenton Tomato Pie)다. 이 스타일의 가장 큰 특징은 치즈와 토핑 위에 토마토 소스를 얹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소스의 산미와 신선한 향이 먼저 다가온다. 크러스트는 얇지만 뉴욕 스타일보다 조금 더 바삭한 편이고, 소스의 풍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재료가 단순한 것이 일반적이다.

로빈스빌의 파파스 토마토 파이(Papa’s Tomato Pies)는 1912년 개업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토마토 파이 전문점이다. 창업자 조 파파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건너온 이민자로, 당시 이민자 사회에서 귀한 올리브 오일과 토마토, 치즈를 아껴 쓰면서도 맛을 내기 위해 소스의 배치를 바꿨다. 그 결과, 재료가 입안에 닿는 순서까지 설계된 독특한 피자가 탄생했다. 파파스의 토마토 파이는 소스의 깊은 맛과 바삭한 도우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뉴저지 북부에는 또 다른 피자 전통이 있다. ‘바 피자(Bar Pie)’라 불리는 초박형 피자다. 주로 술집에서 간단한 안주로 내놓던 이 피자는 지름이 작고, 크러스트가 거의 크래커처럼 얇다. 오렌지(Orange)에 있는 스타 태번(Star Tavern)이 그 대표 주자로, 얇지만 토핑이 가득 얹힌 바 피자는 현지인들에게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세 번째 여정 – 코네티컷, 뉴헤이븐의 Apizza
마지막 목적지는 코네티컷 뉴헤이븐. 이곳의 피자는 ‘아피짜(apizza)’라는 독자적인 이름을 갖고 있다. 발음은 ‘아-비츠(ah-beets)’에 가깝다. 이탈리아 남부 방언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뉴헤이븐 이민자 사회에서 독특하게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피짜의 핵심은 석탄 화덕에서 굽는 초고온 조리 방식이다. 600도 이상의 온도에서 몇 분 만에 구워내기 때문에, 크러스트는 바삭하면서도 불에 그을린 듯한 ‘차드(charred)’ 흔적이 남는다. 이 불향은 뉴헤이븐 스타일의 상징이다.

1925년 문을 연 프랭크 페페 피제리아 나폴레타나(Frank Pepe Pizzeria Napoletana)는 아피짜의 대명사다. 특히 ‘화이트 클램 피자’는 토마토 소스를 전혀 쓰지 않고, 신선한 조개, 마늘, 올리브 오일, 로마노 치즈로만 맛을 낸다. 바다 향과 불향이 어우러져, 처음 맛보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바로 옆의 살리스 아피짜(Sally’s Apizza)는 진한 토마토 소스와 균형 잡힌 치즈, 그리고 완벽한 charred crust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또 다른 강자인 모던 아피짜(Modern Apizza)는 보다 부드러운 도우와 다양한 토핑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뉴헤이븐의 피자 문화는 단순한 미식 트렌드가 아니라, 이민 역사와 지역 정체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이다. 20세기 초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석탄을 이용한 제철소와 공장에서 일하며, 같은 연료로 빵과 피자를 구웠던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석탄 화덕 불향’은 뉴헤이븐 피자의 상징이 되었고, 이 전통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동일한 방식으로 굽고 있다.
도로 위의 맛, 맛 속의 이야기
뉴욕에서 뉴저지, 다시 코네티컷으로 이어지는 하루 로드트립은 단순히 세 지역의 피자를 시식하는 것이 아니다. 각 피자에는 이민자들의 생존 전략, 지역의 경제 환경, 그리고 세대를 거쳐 내려온 요리 철학이 담겨 있다. 뉴욕의 한 조각에는 대도시의 속도와 실용성이, 뉴저지의 토마토 파이에는 가정식의 따뜻함과 전통이, 뉴헤이븐의 아피짜에는 장인정신과 실험정신이 녹아 있다.
이 여정을 떠나려면 식사량 조절이 필수다. 각 매장에서 한 판을 먹기보다 한두 조각씩만 맛보아야 한다. 이동 시간은 총 4~5시간가량이지만, 주차와 대기 시간을 고려하면 하루를 꽉 채워야 한다. 특히 금·토요일 저녁 시간대에는 인기 매장 앞에 한 시간 이상 줄이 늘어설 수 있다. 미리 예약하거나 한산한 시간대를 공략하는 것이 좋다.
문화와 음식이 만나는 지점
트라이스테이트 지역의 피자 문화는 단순한 요리법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결과다. 19~20세기 이탈리아 남부에서 온 이민자들은 고향에서 먹던 나폴리 피자를 미국의 재료와 환경에 맞게 변형했다. 토마토 품종, 치즈의 가공 방식, 화덕의 연료까지 모두 현지화 과정을 거쳤다. 뉴욕의 가스 오븐, 뉴저지의 바 피자 데크 오븐, 코네티컷의 석탄 화덕은 각 지역의 산업 구조와 생활 패턴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세 조각의 지도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의 피자를 하루에 모두 맛본다는 것은, 한 입마다 다른 지도를 그려나가는 일이다. 각 조각은 재료와 조리법뿐 아니라, 그 지역의 역사, 이민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도시의 성격을 담고 있다. 세 지역을 잇는 도로 위에서, 그리고 그 도로 끝에서 만나는 피자 한 조각 위에서, 우리는 트라이스테이트라는 이름의 문화 지형도를 완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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