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아침, 뉴욕 하늘은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후, 전 세계는 믿기 어려운 충격 속에 빠져들었다.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펜타곤을 잇달아 들이받으면서, 미국뿐 아니라 전 지구가 함께 아픔을 겪은 날이었다. 약 3,000명의 목숨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안에는 80여 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 역시 그 아픔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한국인 희생자 수는 28명. 숫자로는 전체의 작은 비율이지만, 이는 한국 사회에도 깊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희생자들 개개인의 직업이나 가족관계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모두 당대의 이민 사회, 혹은 국제 금융과 무역, 혹은 뉴욕 현지 커뮤니티 속에서 삶을 이어가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희생의 기록: 숫자 속의 이름 없는 삶들
9·11 테러 희생자들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숫자로 기억한다. 총 희생자 약 3,000명, 소방관과 경찰관 약 400명, 그리고 84개국에서 온 외국인들. 그 안에 포함된 한국인 28명의 존재는 한국 언론과 외교부를 통해 공식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들 개개인의 신상은 철저히 보호되고 있다. 나이, 직업, 가족관계 같은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고, 지금도 명확한 개인적 서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유가족의 의사를 존중하고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한국 사회의 집단적 기억 속에서는 “한국인 28명”이라는 숫자만 남았다.
숫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금융회사 사무실에서 일하던 직장인이었을 수도 있고, 무역을 위해 잠시 뉴욕을 찾은 기업인, 혹은 새 삶을 꿈꾸며 이민 사회에서 자리 잡아가던 교민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아직 어린 나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꿈과 삶은 건물과 함께 무너져 내렸지만, 그 빈자리는 여전히 가족과 공동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메모리얼의 의미: 이름이 새겨진 곳에서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에 자리한 9·11 메모리얼 앤드 뮤지엄은 희생자들을 위한 영원한 추모 공간이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린 자리에 조성된 두 개의 거대한 분수대 주변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그 안에는 한국인 28명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

뉴욕을 찾는 한국인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물이 끝없이 흘러내리는 어두운 연못 가장자리에 손가락을 대고 이름을 더듬는 순간, 사람들은 그 이름이 단순한 철자가 아니라 살아 있던 한 사람의 흔적임을 깨닫는다.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 보는 행위는 곧 추모의 언어다.
한국에서도 매년 9월 11일이 되면 작은 추모 모임이 열린다. 뉴욕 교민 사회는 물론, 서울과 부산 등지의 시민사회 단체들도 이 날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 한다. 숫자 뒤에 가려진 개인의 삶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서다.
기억의 공백과 우리가 해야 할 일
시간은 흘러 어느덧 24년이 지났다. 세상은 변했고, 뉴욕의 스카이라인도 다시 세워졌다. 그러나 9·11은 여전히 현재형의 기억이다. 특히 한국인 희생자들의 경우,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28명”이라는 숫자로만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공백은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은 고통 속에서도 세상에 이야기를 남길 힘이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조용히 이름 없는 추모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그들의 존재를 기억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록 얼굴과 이름을 다 알 수는 없어도, “한국인 희생자 28명”이라는 사실 자체가 한국 사회의 집단적 기억 속에 새겨져야 한다.

역사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비극의 기록을 단순한 통계에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하고, 그들의 자리를 기억하며, 더 이상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짐하는 일이다.
맺음말: 24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방법
2025년, 9·11 테러는 24주년을 맞았다. 24년이라는 시간은 짧지 않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한국인 희생자 28명 또한 그러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름을 다 알 수 없어도, 직업과 나이를 다 알 수 없어도, 그들이 이 비극의 한가운데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뉴욕의 메모리얼에 새겨진 이름처럼, 한국 사회의 기억에도 그 숫자와 존재를 새겨야 한다.
추모는 과거를 위로하는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9·11 한국인 희생자 28명을 기억한다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3만 명의 군중이 아닌 단 28명의 이름일지라도,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다시 묻는다. “당신들을 기억합니다.” 이 말이야말로 그들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위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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