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STE OF NEW YORK] 르뱅 베이커리, 뉴욕의 영혼을 구워내다

뉴욕의 아이콘이 된 쿠키 이야기

뉴욕의 가을 아침, 센트럴 파크 서쪽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를 거닐다 보면, 어디선가 불어오는 달콤한 공기의 결을 문득 마주하게 된다. 갈색 버터와 진한 초콜릿, 고소하게 구워진 견과류의 향기가 뒤섞여 마치 보이지 않는 손처럼 행인들의 발걸음을 74번가의 한 지점으로 이끈다. 그 끝에는, 마치 오래된 유럽의 골목에서 발견한 듯한 파란색 차양 아래, 반지하로 향하는 몇 개의 계단이 있다. ‘르뱅 베이커리(Levain Bakery)’. 그 이름 앞에는 이른 시간부터 늘 순례자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일까. 이 모든 기다림의 끝에 있는 것은 고작, 혹은 무려, 쿠키 한 조각이다. 하지만 이곳의 쿠키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다. 그것은 뉴욕이라는 도시가 품은 투박함과 따뜻함, 그리고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관대함을 한 덩어리로 뭉쳐 구워낸, 이 도시의 또 다른 상징이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전사의 심장을 위로한, 한 조각의 투박한 온기

르뱅의 신화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나 치밀한 사업 계획서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그 시작은 오히려 땀과 근육의 고통, 그리고 그것을 이겨낸 자만이 누릴 자격이 있는 순수한 쾌락에 대한 갈망에 있었다. 1990년대, 월스트리트와 패션계의 치열함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하던 두 친구, 팸 위크스와 코니 맥도날드는 철인 3종 경기의 극한에 도전하며 서로를 의지했다. 차가운 허드슨강을 가르고, 끝없는 아스팔트 위를 달리며 그들의 몸이 소진될 때마다, 영혼은 단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이 모든 것을 보상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맛은 무엇일까?”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그들이 꿈꾼 것은 섬세한 파티시에의 손끝에서 탄생한 앙증맞은 디저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굶주린 전사의 허기를 단번에 채워줄 묵직한 에너지 덩어리이자, 모든 고통을 잊게 할 만큼 강렬하고 원초적인 달콤함이었다. 1995년, 두 사람은 마침내 자신들의 꿈을 현실로 옮겼다. 74번가의 작은 반지하 주방, 그들은 천연 발효종을 뜻하는 ‘르뱅’이라는 이름 아래 장인의 빵을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한 켠에, 자신들의 훈련 후 간식으로 탄생했던 투박한 쿠키를 바구니에 담아두었다. 빵을 사러 왔던 이웃들은 호기심에 집어 든 그 거대한 쿠키 덩어리에 경탄했다. 그 맛은 곧 동네의 비밀이 되었고, 비밀은 소문이 되어 뉴욕 전체로 퍼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빵이 아닌, 오직 그 한 조각의 투박한 온기를 위해 기꺼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철인의 심장을 위로하던 작은 쿠키는, 그렇게 뉴욕의 영혼을 위로하는 거대한 전설이 되어가고 있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6온스의 미학, 쿠키라는 장르를 재창조하다

르뱅의 쿠키를 처음 손에 쥔 순간, 당신은 익숙했던 ‘쿠키’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성인 남자의 주먹만 한 크기, 스마트폰에 버금가는 6온스(약 170g)의 묵직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이다. 이것은 결코 가볍게 즐기는 간식이 아님을, 온전한 하나의 경험으로서 존재함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그리고 마침내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미학적 혁명은 시작된다.

‘바삭함’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경쾌하게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견고한 황금빛 크러스트가 허물어진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당신이 결코 쿠키의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이다. 그것은 완전히 익지 않은 브라우니의 심장부이며, 잘 만든 퐁당 쇼콜라의 뜨거운 중심이다. 녹진하고 꾸덕한 반죽 사이사이로, 용암처럼 녹아내린 초콜릿의 강물이 흐르고, 보석처럼 박힌 호두는 고소한 식감의 방점을 찍는다. 고온의 오븐이 선사한 이 극적인 대비, 즉 야성적으로 바삭한 겉면과 지극히 부드럽고 촉촉한 속살의 공존이야말로 르뱅을 르뱅이게 하는 위대한 비밀이다.

이 완벽한 질감의 무대 위에서, 네 명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매력을 뽐낸다. 모든 신화의 시작인 ‘초콜릿 칩 월넛’은 달콤한 초콜릿과 고소한 호두가 펼치는 가장 클래식하고도 완벽한 이중주다. ‘다크 초콜릿 초콜릿 칩’은 한 점의 타협도 없는 순수한 카카오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며, ‘다크 초콜릿 피넛버터 칩’은 쌉쌀함과 짭짤함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어른들의 동화를 들려준다. 그리고 ‘오트밀 레이즌’은 버터의 풍미 가득한 위로를 건넨다. 르뱅은 쿠키를 굽지 않는다. 그들은 크기와 질감, 온도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만족감’이라는 감정 그 자체를 구워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쿠키라는 낡은 장르를 해체하고, 전혀 새로운 차원의 디저트로 재창조해낸 것이다.

줄 서는 행위마저 문화로 만든, 뉴욕의 아이콘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르뱅의 성공 스토리는 단순히 맛있는 쿠키를 넘어, 하나의 ‘경험’을 어떻게 브랜드화하고 문화로 만드는지에 대한 가장 완벽한 교본이다. 74번가에 늘어선 긴 줄은 더 이상 기다림의 고통이 아니라, 곧 펼쳐질 황홀한 미각적 경험을 앞둔 신자들의 설레는 의식(Ritual)이 되었다. 사람들은 기꺼이 그 행렬의 일부가 되고, 마침내 손에 넣은 거대한 쿠키를 들어 올려 소셜 미디어에 인증하는 행위를 통해 이 문화에 동참한다. 르뱅의 쿠키는 맛의 대상을 넘어, 뉴욕을 방문했음을, 이 도시의 가장 뜨거운 현장을 경험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트로피가 된 것이다.

작은 동네의 사랑받는 빵집으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르뱅은 영리하게 자신들의 신화를 확장해나갔다. 뉴욕의 각기 다른 심장부인 할렘과 노호, 윌리엄스버그에 새로운 터를 잡으며 더 많은 뉴요커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뉴욕이라는 섬을 떠나 미국 전역의 식료품점 냉동고에 그들의 복제된 영혼을 심어 넣는, 가장 대담한 도전을 감행했다. 냉동 생지 쿠키의 등장은 르뱅의 신화를 경험하는 방식을 민주화했다. 이제 순례자처럼 뉴욕을 찾지 않아도, 누구나 자신의 집에서 오븐을 예열하고 단 10분 만에 그 전설의 맛을 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영리한 확장은 르뱅의 가치를 희석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명성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리고 마침내 ‘르뱅 스타일’이라는 고유명사는 전 세계 디저트계의 표준이 되었다. 이제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우리는 르뱅을 닮은, 두껍고 꾸덕한 쿠키들을 만날 수 있다. 이는 한 브랜드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르뱅은 쿠키를 파는 제국을 건설한 것을 넘어, 쿠키라는 세상의 문법을 바꾼 이름이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가장 진실된 맛은 결국 가장 강력한 문화가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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