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산업 발전, 연계 산업의 지형을 바꾸다

– 제조, 반도체, 로봇, 정책·글로벌 협력으로 확산되는 AI 생태계

제조 혁신의 중심, 산업 AI

인공지능(AI)의 진화는 더 이상 연구실과 소프트웨어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제조 현장은 AI 기술의 가장 강력한 실험실이자 성장 무대다. 한국 정부는 ‘AI-팩토리(AI-Factory)’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하며 산업 현장의 전 공정을 대상으로 AI를 확산시키고 있다.

AI-팩토리의 핵심은 예지 보전(Predictive Maintenance)과 품질 검사(Quality Inspection)이다. 과거에는 기계가 고장 난 이후 정비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AI가 센서 데이터를 분석해 언제 어떤 부품이 고장 날지를 사전에 예측해준다. 이로써 불필요한 정비 비용을 줄이고, 생산 라인의 가동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또한 품질 관리에서도 AI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기존에는 숙련된 작업자가 제품의 외관이나 성능을 확인했지만, AI 기반 컴퓨터 비전 기술은 나노 단위의 결함까지 잡아내며 검사 속도와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이 덕분에 반도체·자동차·바이오 등 고정밀 산업에서 불량률은 낮아지고, 생산 효율성은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정부는 특히 바이오와 2차전지 산업을 전략 분야로 지정했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신약 후보물질 탐색과 임상 데이터 분석에서 AI가 연구 기간을 단축시키고 있다. 2차전지 분야에서는 배터리 소재 설계, 충·방전 사이클 분석, 제조 공정의 최적화에 AI가 투입되며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AI 활용이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에도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업종별로 공통 활용이 가능한 산업 AI 모델을 개발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저비용으로 쉽게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 중이다. 이른바 ‘산업 AI 민주화’가 현실화되는 셈이다.

반도체와 인프라, AI의 엔진

AI 생태계의 중심에는 하드웨어와 인프라가 있다.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하고 처리하는 데는 막대한 연산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GPU, 메모리 반도체, 클라우드 인프라가 AI 발전의 기반이 된다.

한국은 반도체 분야에서 이미 세계 정상급 위상을 확보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만 보면 DRAM 시장 점유율 약 70.5%, NAND 약 52.6%를 차지하며 글로벌 리더십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SK하이닉스가 2025년 1분기 DRAM 시장 점유율 36%로 삼성전자(34%)를 넘어서는 돌풍을 일으켰다. 이는 AI 반도체 수요 급증이 불러온 판도 변화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SK하이닉스는 9조 원(약 68억 달러) 규모의 신규 반도체 공장 건설을 발표했다.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이 공장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AI 특화 반도체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불어 50여 개 협력 중소기업과의 동반 혁신을 통해 생태계 전반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전략도 병행한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AI 산업의 연산 엔진은 GPU다. NVIDIA가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AMD·인텔도 AI 가속기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기에 한국 반도체 기업이 제공하는 HBM 메모리가 GPU와 결합해 초거대 언어모델(LLM)의 성능을 뒷받침하고 있다.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 서비스는 사실상 GPU와 HBM의 결합 위에서 가능해진 기술이다.

또한 클라우드 인프라의 중요성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AWS, MS Azure, 구글 클라우드 같은 글로벌 사업자는 AI 모델 훈련용 인프라를 제공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네이버 클라우드, KT,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등을 통해 맞춤형 AI 인프라 서비스를 확대 중이다.

결국 AI 하드웨어와 인프라는 단순한 지원 기술이 아니라, AI 산업 전체를 움직이는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 반도체와 인프라 경쟁력이 곧 국가 AI 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다.

로봇·휴머노이드, AI의 실체화

AI의 발전은 디지털 세계를 넘어 물리적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로봇과 휴머노이드 산업이 있다. 한국은 제조업 자동화 수준에서 세계 2위에 오를 만큼 산업용 로봇 활용이 활발하다.

정부는 2030년까지 국내 로봇 시장을 약 20조 원 규모로 4배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산업용 로봇뿐 아니라 서비스 로봇, 의료 로봇, 물류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기술이 접목되고 있다. 예컨대 물류창고에서는 AI 로봇이 자율주행하며 제품을 분류하고, 병원에서는 AI 기반 로봇이 수술을 보조한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특히 주목받는 움직임은 2025년 4월 출범한 K-휴머노이드 연합(K-Humanoid Alliance)이다. 정부, 대학, 로봇 제조사, 반도체 기업이 힘을 모아 2028년까지 20kg 이상을 다룰 수 있는 휴머노이드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단순히 로봇을 개발하는 차원을 넘어, 휴머노이드가 사람과 같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는 시도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개발이다. 클라우드에 의존하지 않고 로봇 자체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어야, 실제 현장에서의 활용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AI 연산 능력을 소형화·저전력화하는 기술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또한 휴머노이드 산업은 단순 기술 개발이 아니라 인재 양성과 직결된다. K-휴머노이드 연합은 관련 학과 신설, 산학 협력, 전문 교육 과정을 통해 차세대 로봇·AI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이는 향후 글로벌 로봇 시장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확보하는 토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로봇과 휴머노이드 산업은 AI가 단순히 ‘보이지 않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같은 형체를 통해 현실 세계 속에서 작동하는 기술임을 보여준다. 이는 대중의 AI 체감도를 높이는 동시에, 산업 전반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불어넣고 있다.

정책과 글로벌 협력, AI 생태계의 완성

AI 산업은 민간 기업의 기술 혁신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국가적 정책 지원과 글로벌 협력이 결합될 때 비로소 생태계가 완성된다.

한국 정부는 100조 원 규모의 AI 펀드 조성을 발표하며, 세제 혜택·규제 완화·금융 지원·판로 개척 등 전 주기 패키지 정책을 가동 중이다. 목표는 명확하다. 한국을 세계 AI 3대 강국 반열에 올려놓고, 국가 잠재 성장률을 3%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2026년에는 연구개발(R&D) 지출을 35.3조 원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공개됐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로, 기초 연구부터 응용 기술까지 전 분야를 망라한다. 정부의 투자 확대는 기업과 연구기관의 AI 혁신을 가속화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전망이다.

동시에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OpenAI는 2025년 5월 서울에 첫 아시아 사무소를 개설했다. 한국 내 ChatGPT 유료 구독자가 미국 다음으로 많다는 점, 그리고 한국의 강력한 반도체·AI 생태계가 주요 이유였다. OpenAI는 카카오 등 국내 기업과 협력하며 한국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섰다.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경쟁에서 핵심 공급망을 쥐고 있으며, 네이버와 카카오는 자체 초거대 언어 모델(LLM)을 개발해 국내외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실리콘밸리식 ‘격돌 경쟁’이 아니라,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협력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모델’을 택했다. ‘Deep Tech Value-up’ 프로그램은 AI, 바이오, 그린테크 스타트업을 대기업과 연결해 상호 혁신을 촉진하고 있다. 이는 한국형 혁신 모델로 주목받으며 해외에서도 벤치마킹 사례가 되고 있다.

정책과 글로벌 협력은 단순 지원을 넘어 AI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한다. 규제 완화, 인재 육성, 국제 협력, 시장 확대가 동시에 이뤄질 때 AI는 국가 경제 전반을 견인하는 핵심 엔진으로 작동할 것이다.

AI 시대 우리가 주목해야할 산업은?

AI는 이제 단일 산업이 아니라, 제조·반도체·로봇·정책이라는 복합적 연계 산업 구조 속에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라는 기존 강점을 활용하며, 글로벌 AI 경쟁의 중심 무대로 부상 중이다.

앞으로의 관건은 균형이다.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춘 제도적 안전망,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 글로벌 협력과 국가 전략의 조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AI가 가져올 거대한 변화는 피할 수 없는 미래다. 중요한 것은 그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고 활용하느냐이다.

뉴욕앤뉴저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Previous Story

[오피니언] 민주주의 회복력을 통해 본 100년간의 인류 역사

Latest from Economy

스테이블코인의 명과 암: 미국 경제가 직면할 기회와 위험

폭발적 성장, 2조 달러 시장을 향해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시장의 조연에서 이제는 중심 무대로 올라섰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주목받는 동안, 실질적인 거래와 자금 이동을 떠받쳐온 것은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다. 2020년대 초반만 해도 몇백억 달러…

패스트푸드의 이단아, 칙필레(Chick-fil-A)를 말하다

작은 다이너에서 미국 최대 치킨 체인으로 1946년, 조지아주 애틀랜타 교외 햇트빌에서 한 청년 사업가가 문을 연 작은 다이너가 있었다. 이름은 Dwarf Grill. 창업자 S. Truett Cathy는 단순하지만 맛있는 치킨 메뉴를 개발해 지역…

몰락하는 쇼핑몰, 버겐 카운티가 보여주는 미국의 단면

한때 ‘소비의 성지’였던 버겐 카운티 뉴저지 북부의 버겐 카운티는 뉴욕시와 허드슨 강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다. 이곳은 뉴저지에서 가장 부유한 카운티 중 하나이자, 전통적으로 대형 쇼핑몰의 중심지였다. 웨스트필드 가든 스테이트 플라자(Westfield Garden…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