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o the C] 맨해튼은 일하지 않는다

팬데믹 이후 뉴욕의 중산층 일자리 실종 보고서

중산층의 퇴장, 도시의 심장을 멈추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뉴욕시의 심장부인 맨해튼을 정지시켰다. 유령처럼 텅 빈 거리, 닫힌 상점, 출근하지 않는 사무실. 그 풍경은 일시적인 재난 상황처럼 보였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뒤바꿨다. 2025년 현재, 맨해튼은 완전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변화는, 뉴욕의 중산층이 도시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센터 포 어반 퓨처(Center for an Urban Future)’의 분석에 따르면, 팬데믹 전후 뉴욕시에서 중산층 일자리 약 76,000개가 사라졌다. 이 수치는 연봉 6만 9천 달러에서 10만 5천 달러 사이의 전통적 중간 소득 계층을 기준으로 산정된 것으로, 전체 중산층 일자리의 약 5%에 해당한다.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이 사라진 자리를 다른 계층이 채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상위 10%는 원격근무와 기술의 수혜를 받으며 더 부유해졌고, 하위 30%는 현장노동에 그대로 남아 있다.

중산층이 사라졌다는 것은 단순히 급여 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의 중심을 이루던 인력 기반이 무너졌다는 뜻이다. 이들은 맨해튼의 오피스에서 일하고, 인근 상점에서 소비하며, 대중교통으로 통근하고, 도시의 리듬을 만들어내던 존재였다. 이들의 이탈은 도시 구조 전반에 파장을 일으켰다.

소매업과 외식업, 행정지원직, 교육 보조직, 생산과 물류를 잇는 중간관리직들은 일터를 잃거나 완전히 구조조정되었고, 대신 맨해튼에는 고소득 전문직만 남아 원격으로 일하며 ‘출근 없는 오피스 경제’를 만들고 있다. 일부는 도시 외곽으로 이주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적 이동성과 공동체 기반도 함께 붕괴되었다.

맨해튼의 공백: 일자리는 어디로 갔는가

중산층 일자리 실종은 전체 노동시장과 도시 경제를 함께 재편했다. 특히 맨해튼은 팬데믹 이후 뉴욕시 전체 일자리 손실의 75%를 감당한 지역이다. 그 중심에는 사무실 기반의 산업과 서비스업 붕괴가 있었다.

외식업과 숙박업은 5만 9천여 개의 일자리를, 소매업은 3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은 대개 중산층을 구성하던 직군으로, 맨해튼 출근 인구의 급감은 소비자 기반을 직접적으로 무너뜨렸다. 브라이언트파크 근처에서 20년째 샐러드 바를 운영해온 자넷 이반스 씨는 “사무실 직원들의 점심 하나로 하루 매출 절반이 결정되었는데, 지금은 그들 자체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뿐만 아니다. 맨해튼의 상업용 부동산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공실률은 팬데믹 이전 8% 수준에서 현재 20%를 넘고 있으며, 이는 건설업 전반의 회복 지연으로 이어졌다. 뉴욕주 감사관 보고서에 따르면, 비주거 건설 분야는 여전히 팬데믹 이전 수준 대비 18,200개(약 11.3%)의 일자리가 줄어든 상태다. 건설업은 오랜 기간 동안 중산층 남성 노동자의 중심 직종이었으며, 공공 프로젝트와 민간 개발의 균형 속에서 안정성을 유지해온 분야다.

또 하나의 축은 ‘직업의 양극화’다. 디지털화와 자동화는 중간 기능직을 위협하고 있다. 금융 백오피스, HR, 데이터 입력, 리셉션 등 사무관리 분야는 재택 근무에 불리하고, 인공지능 및 자동화 도구로 대체 가능성이 높다. 맨해튼을 떠받치던 수만 개의 ‘보이지 않는 업무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원격근무는 도시 외곽으로의 인구 이동도 초래했다. 뉴저지, 롱아일랜드, 업스테이트 등지에서 자가 소유의 공간에서 일하는 중산층은 다시 도시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이제 더 이상 맨해튼에서 점심을 먹지 않고,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으며, 도심 소비에도 기여하지 않는다. 그 공백은 곧 맨해튼 경제의 붕괴된 생태계를 의미한다.

도시는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가

팬데믹 이후 뉴욕시는 회복을 선언했지만, 회복은 불균등하게 진행되었다. 고임금 전문직과 저소득층 일자리 사이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고, 중산층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뉴욕시의 일자리 창출 및 직업 재훈련 프로그램은 고기술 인력 확보와 청년층 직업체험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중년 중산층의 ‘직업 전환’ 문제는 구조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직업교육 예산은 팬데믹 직후보다 줄어들었고, 커뮤니티 칼리지의 일부 과정은 폐강되거나 민간 외주로 대체되었다. 이는 경력 중단 이후 재교육을 받아 재진입해야 하는 계층에 실질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도시 정치와 정책이 여전히 ‘성장’ 중심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대규모 부동산 개발, 고소득층 유치를 위한 도시 인프라 확충, 스타트업 유치 등은 여전히 도시 재정의 주요 축이지만, 그 안에 중산층의 자리는 없다. 그 결과, 뉴욕은 ‘살 수는 있지만 일하긴 어려운 도시’가 되었다.

‘뉴욕에서 성공하라’는 오래된 구호는 이제 ‘뉴욕에서 일자리를 찾지 말라’는 냉소로 대체되고 있다. 도시는 점점 더 비싸지고, 중심은 더 비어가며, 도시라는 공간은 이제 ‘일터’가 아닌 ‘거래소’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도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맨해튼은 왜 더 이상 일하지 않는가? 중산층 없는 도시는 과연 지속 가능한가?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팬데믹은 뉴욕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고, 중산층의 퇴장은 그 취약성의 중심에 있다. 도시를 떠받치던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고, 그 자리는 비워진 채 방치되었다. 우리는 이제 다시 물어야 한다.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은, 일하지 않는 도시의 침묵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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