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그게 요즘 밈이야?”

Z세대 청소년을 사로잡은 디지털 유머의 언어학

“rizz가 없네”, “그건 완전 NPC야”, “Skibidi bop, yes yes!”
이제 미국 청소년 사이에서 이런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온라인 영상 플랫폼 TikTok과 YouTube Shorts, 커뮤니티 Reddit, Discord 채널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이 말들은 모두 ‘밈(meme)’에서 파생된 표현이다. 밈은 더 이상 단순한 유머나 웃음을 유발하는 콘텐츠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밈은 미국 청소년 세대의 소통 방식이며, 그들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디지털 언어이자 문화 코드로 기능하고 있다.

밈의 언어는 속도와 압축, 그리고 반복의 미학 위에 세워져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도 있지만,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이 밈들이 ‘소속감’을 만들어내고 ‘감정’을 공유하며, 때로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는다. 본 기사는 미국 내 밈 문화의 실태를 분석하고, 밈이 청소년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하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조명한다.

Z세대의 언어가 된 밈: 일상의 코드로 자리잡다

“지금 애들이 쓰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캘리포니아 공립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최근 수업시간 중 들은 “gyatt”이라는 단어가 성적 의미를 포함한 밈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교사들조차도 무엇이 밈이고, 무엇이 그냥 유행어인지 분간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밈(meme)은 원래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1976년 《이기적 유전자》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문화적 유전자가 퍼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하지만 2020년대의 ‘밈’은 그 정의를 한참 벗어나 있다. 이제 밈은 짧은 문구, 이미지, 영상, 짧은 노래, 심지어는 몸짓이나 필터를 통해도 전달된다. 가장 큰 특징은 빠른 생성과 빠른 확산, 그리고 짧은 생명주기다.

Pew Research Center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13~18세 청소년의 83%는 하루 한 번 이상 밈을 소비하거나 공유하고 있다. 이들의 주요 밈 소비 플랫폼은 TikTok(79%), YouTube Shorts(68%), Instagram Reels(55%) 순이다. 이 수치는 ‘밈’이 단순한 유머를 넘어서 Z세대의 디지털 문법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Z세대의 밈 언어는 표준어 대신 약어와 은어, 그리고 사운드 바이트(sound bite) 중심으로 구성된다. 텍스트보다 시각적이고, 정형화된 감정 표현보다 혼성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다음은 현재 미국 청소년 사이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주요 밈 용어들이다:

용어의미사용 예시
Rizz연애 감각/매력“He’s got no rizz.”
NPC비사회적/기계적 행동“He’s acting like an NPC.”
Skibidi무의미하지만 반복되는 소리 (밈 출처 표현)“Skibidi bop yes yes!”
Sigma Grindset자수성가형 고독한 남성상“Stay focused. Sigma mindset.”
Ohio memes말도 안 되는 이상한 상황 표현“Only in Ohio…”
Fanum Tax친구 음식 몰래 먹는 상황을 풍자“Yo, that’s Fanum Tax!”

이러한 표현들은 Z세대 내부에서만 해석 가능한 문화 코드가 되었고, 외부세대가 접근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 유행하는 밈의 얼굴들: 2025년 최신 트렌드

2025년 현재,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퍼진 밈은 단순한 짤방이 아니라 인터랙티브하고, 애니메이션 기반이며, 세계관을 내포한 콘텐츠들이다. 그 중심에는 TikTok과 YouTube Shorts라는 알고리즘 기반의 플랫폼이 있다.

Skibidi Toilet: 기괴함이 유행이 되다

2023년 YouTube Shorts를 통해 확산된 ‘Skibidi Toilet’은 말하는 화장실 속 얼굴들이 감시카메라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영상의 기괴함, B급 애니메이션 느낌, 그리고 “Skibidi bop yes yes”라는 중독성 강한 반복 멘트가 결합돼 어린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튜브 채널 *DaFuq!?Boom!*에서 시작된 이 밈은 전 세계 조회수 100억 회를 돌파했으며, TikTok에서는 관련 사운드로 400만 개 이상의 콘텐츠가 생성되었다.

이 밈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지만, 청소년들은 오히려 그 ‘의미 없음’ 자체에 매력을 느낀다. 이는 디지털 세대가 정형화된 서사보다는 빠르고 짧은 감정 자극에 더 몰입하는 특성을 반영한다.

NPC Walk Challenge: 현실은 시뮬레이션?

이 밈은 TikTok에서 유행 중인 챌린지로, 사용자가 실제 게임의 NPC(Non-Playable Character)처럼 걷고 말하는 행동을 촬영한다. 반복적인 문구와 어색한 몸짓은 게임 속 인물처럼 보이며, 현실에서의 사회적 부적응을 패러디하거나 조롱하는 성격이 짙다.

청소년들은 이를 통해 불안, 어색함, 규범화된 일상을 풍자한다. 사회적 역할 수행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NPC 밈은 하나의 해방구 역할을 한다.

Corecore와 Weirdcore: 감정의 밈화

‘Corecore’는 청소년의 정서적 공허함, 우울감, 환경 위기 등을 담은 짧은 영상 시리즈를 통해 심리적 공감을 유도하는 밈 장르다. 이 밈은 TikTok의 ‘감성 편집 영상’으로 대표되며, 음악과 상징 이미지를 조합해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전한다.

반면 ‘Weirdcore’는 기괴하고 낯선 비주얼 이미지를 활용해 불쾌하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부각하는 밈으로, 꿈과 환상의 경계를 탐색한다.

이러한 밈들은 단순한 웃음을 넘어 Z세대의 감정 상태와 사회 인식을 반영하는 디지털 미술 형식으로도 볼 수 있다.

웃음 뒤에 숨겨진 그림자: 혐오와 단절의 밈

청소년 밈 문화는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밈이 때때로 성차별, 인종차별, 외모 조롱, 정치적 편향 등 다양한 문제를 포함하며 논란을 야기한다.

혐오 밈의 확산

  • Chad vs. Virgin: 이상적인 남성과 실패한 남성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
  • Karen: 특정 인종과 연령층(중년 백인 여성)을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방식으로 비판받는다.
  • Gyatt, Thicc: 여성 신체를 희화화하며 대상화하는 표현으로 주로 소비된다.

이러한 밈은 학교 현장에서 성희롱적 언어 사용 증가와 함께 나타나며, 교육당국과 교사들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교육 현장의 갈등

밈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와 부모는 청소년과의 소통에서 단절을 경험한다. 일부 교육구는 SNS 사용을 제한하거나 밈 관련 용어를 금지하려 하지만, 오히려 이는 청소년의 저항과 새로운 밈 생산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는다.

전문가들은 밈을 단순히 단속할 것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와 디지털 시민성을 함께 교육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새로운 리터러시의 탄생: 밈을 읽고, 가르쳐야 할 때

전문가들은 ‘밈’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언어이자 커뮤니케이션 체계라고 본다. 이에 따라 미국 일부 교육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시도들을 시작하고 있다.

  • 밈 분석 수업: 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해석하고 그 사회문화적 배경을 분석하는 활동.
  • 디지털 감수성 교육: 밈 속 혐오나 편견을 읽어내고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함께 토론.
  • 창작 프로젝트: 학생이 밈을 제작하며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표현하도록 유도.

이는 단순한 트렌드 교육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디지털 사회에서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훈련하는 과정이다.

밈을 이해하는 것이 세대를 이해하는 길

미국 청소년 밈 문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디지털 환경 속에서 형성된 Z세대 정체성의 표현이다. 기성세대가 밈을 외면하거나 억압하는 대신, 이를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해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밈을 읽는 것은 결국, 청소년이 바라보는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세대 간 소통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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