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미드타운의 심장부, 5번가와 6번가 사이, 40번가와 42번가 사이에 자리 잡은 약 9.6에이커 규모의 공원. 오늘날 뉴요커와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브라이언트 파크는 처음부터 이런 화려한 명성을 누린 공간은 아니었다.
1840년대 이곳은 원래 크로톤 저수지(Croton Reservoir)와 맞닿아 있었고, 이름도 ‘Reservoir Square’였다. 1853년 이곳에는 뉴욕의 산업적 야망을 상징하던 크리스털 팰리스(Crystal Palace)와 라팅 전망대(Lating Observatory)가 세워졌다. 런던 만국박람회 건축물을 본뜬 크리스털 팰리스는 당시 뉴욕 시민들에게 근대 문명을 체험하는 공간이었지만, 185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광장은 한동안 황량하게 방치되었다.

1870년대 들어 공원화가 추진되었고, 1884년에는 저명한 언론인이자 노예제 폐지론자였던 윌리엄 컬렌 브라이언트를 기려 현재의 이름을 얻었다. 1911년에는 공원 동쪽에 뉴욕 공립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 본관이 들어서면서, 브라이언트 파크는 지적 휴식과 도시적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특별한 장소로 거듭났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도심의 범죄율 상승과 경제적 침체는 브라이언트 파크를 위험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마약 거래와 범죄가 횡행하며 시민들은 공원을 기피했고, 언론은 이곳을 ‘도심 속 슬럼’으로 묘사했다. 그러던 1980년대, 뉴욕시는 새로운 실험을 단행한다. 공공이 아닌 사적 비영리 단체에 공원의 운영을 맡긴 것이다.

이후 1992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과 함께 재개장한 브라이언트 파크는 오늘날 ‘작은 기적(small miracle)’이라 불린다. 도시의 낙후한 공간이 민관 협력 모델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힌다. 현재 브라이언트 파크는 매년 1,200만~1,900만 명이 방문하는 활기찬 광장으로, 맨해튼 한가운데에서 가장 사랑받는 공공 공간 중 하나다.
사적 비영리 단체의 독립 운영 ― Bryant Park Corporation의 모델
브라이언트 파크의 성공 신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Bryant Park Corporation(BPC)이다. 1980년대 공원의 쇠퇴가 심각해지자, 타임사(Time Inc.)의 의장이던 앤드류 하이셀(Andrew Heiskell)과 도시 공간 전문가 다니엘 비더만(Daniel Biederman)은 새로운 관리 방식을 구상했다. 그것이 바로 사적 비영리 법인을 통한 공원 운영이었다.
1980년 설립된 BPC는 1987년 뉴욕시와 15년 관리 계약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으로 공원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들의 운영 철학은 단순했다. 공원을 시장의 원리로 관리하되, 공공성을 잃지 않는다.

운영 자금은 뉴욕시 예산이 아니라, 주변 부동산세에서 조성되는 BID(사업 개선 지구) 기금, 기업 스폰서십, 기부금, 그리고 공원 내 상업 시설 및 이벤트 수익으로 충당된다. 덕분에 BPC는 재정적 자립을 확보했으며, 공공 행정의 제약을 벗어나 더 창의적이고 유연한 운영이 가능해졌다. 2024년 기준 BPC의 연간 예산은 약 2,900만 달러에 이른다.
이 구조의 핵심은 ‘민관 협력’이다. 공원은 여전히 뉴욕시 소유이지만, 관리와 운영은 민간이 맡는다. BPC는 공원의 청결 유지, 조경, 보안, 문화 프로그램, 레스토랑과 매점 관리까지 전담한다. 이 모든 것이 시민과 방문객에게는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된다.
이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도시 재생 연구자들은 브라이언트 파크를 “사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공 공원”이라고 부른다. 동시에 이는 공공과 민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대표적 성공 사례로, 다른 도시들―런던, 토론토, 뉴델리 등―이 벤치마킹하는 모델이 되었다.
오늘의 브라이언트 파크 ― 활력의 무대와 시민의 정원
브라이언트 파크는 오늘날 단순한 공원을 넘어 문화와 여가의 허브로 기능한다.
공원의 중심에는 넓은 잔디광장이 자리한다. 여름에는 점심을 즐기는 직장인으로, 저녁에는 야외 영화나 공연을 감상하는 시민들로 가득 찬다. 뉴욕 공립도서관 본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브로드웨이 콘서트나 무료 영화 상영은 이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겨울이면 광장은 ‘더 폰드(The Rink)’ 아이스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한다. 무료 입장이 가능한 이 스케이트장은 뉴욕 겨울의 명소로, 록펠러 센터 못지않은 인기를 끈다. 주변에는 홀리데이 마켓이 들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여름철에는 요가·태극권·저글링·보드게임 같은 무료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낮에는 도시인들이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도시 속 오아시스’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그리고 공원을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는 프랑스풍 회전목마 ‘Le Carrousel Magique’다. 2002년 설치된 이 회전목마는 직경 22피트, 14개의 동물 조형물을 갖춘 소형 구조물이지만, 어린이와 가족들에게는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이다. 클래식한 프렌치 카바레 음악이 흘러나오고, 바로크풍 장식이 어우러져 도심 한복판에서 마치 유럽의 작은 광장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여름에는 ‘Le Carrousel Extravaganza’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이 열려 마술, 인형극, 음악 공연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또한 브라이언트 파크는 ‘공원 화장실’마저 독창적으로 변모시켰다. 1911년 건축된 화장실 건물은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개보수되어, 오늘날에는 꽃과 음악, 미술 작품이 가득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언론은 이를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공 화장실”이라 부르며, 방문객에게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 모든 것 덕분에 브라이언트 파크는 이제 단순한 녹지 공간이 아니라, 맨해튼 시민의 일상과 세계 여행자의 추억을 동시에 품는 도시의 거실이 되었다.
브라이언트 파크가 남긴 교훈 ―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의 조화
브라이언트 파크의 이야기는 단순한 재생 성공담을 넘어, 오늘날 도시가 직면한 과제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첫째, 공공 공간의 재정적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BPC는 공원 운영을 위해 세금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수익과 기부, 상업 활동으로 안정적 재정을 구축했다. 이는 전 세계 대도시가 직면한 재정난 속에서 중요한 대안 모델이 된다.
둘째, 문화 프로그램의 다양성이 도시를 살린다. 브라이언트 파크는 단순히 조경을 가꾸는 데 그치지 않고, 요가 수업부터 클래식 공연, 영화제, 어린이 프로그램까지 연중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는 공원을 단순한 ‘녹지’에서 ‘활동의 무대’로 전환시킨 핵심이다.

셋째, 민간 운영과 공공성의 균형이다. BPC는 상업적 요소를 도입하면서도 공원 이용 자체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한다. 커피를 사지 않아도, 티켓을 끊지 않아도, 누구나 잔디에 앉아 휴식을 누릴 수 있다. 이는 상업화 논란을 최소화하면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한 중요한 전략이다.
넷째, 도시 정체성과 시민 자부심이다. 한때 범죄와 방치의 상징이었던 공간이 이제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명소로 바뀌었다. 이는 뉴욕이 도시 재생을 통해 어떤 자부심을 회복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맨해튼의 심장이 된 브라이언 파크는…
브라이언트 파크는 맨해튼이라는 세계적 대도시의 한가운데서, 공공 공간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무대다. 쇠퇴와 범죄의 공간에서, 사적 비영리 단체의 창의적 운영을 통해 활력 넘치는 광장으로 변모한 이 공원은 오늘날 도시 재생의 교과서로 불린다.

넓은 잔디 위에서 책을 읽는 뉴요커, 아이와 함께 회전목마를 타는 가족, 겨울 밤 스케이트를 즐기는 연인, 그리고 도서관 계단에 앉아 햇살을 만끽하는 여행자. 이 모든 장면이 한데 모여 브라이언트 파크는 단순한 공원을 넘어 뉴욕의 일상과 꿈이 교차하는 무대가 되었다.
뉴욕을 찾는 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 하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도 이처럼 시민에게 활력을 돌려주는 ‘작은 기적’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심어준다는 점일 것이다. 브라이언트 파크의 이야기는 결국, 도시와 인간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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