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서쪽 9번가와 15가 사이,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 한 채가 있다. 처음 마주하면 그저 평범한 산업 시대의 잔재처럼 보이지만, 그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도시의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이곳이 바로 첼시 마켓(Chelsea Market)이다. 뉴욕의 산업 시대가 남긴 공장 건축이 오늘날 세계적인 미식과 창의 산업의 거점으로 탈바꿈한 장소, 첼시 마켓은 ‘재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공간 중 하나다.

첼시 마켓의 역사는 18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은 원래 내셔널 비스킷 컴퍼니(National Biscuit Company), 즉 오늘날 나비스코(Nabisco)의 제과 공장이었다. 벽돌과 철골 구조로 이루어진 이 건물에서는 1912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쿠키 중 하나인 ‘오레오(Oreo)’가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이 공장은 20세기 초 뉴욕의 산업 발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제조 시설로, 근대화의 상징이자 첼시 지역 경제의 심장이었다.
그러나 1950~70년대 들어 미국의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첼시 일대의 산업지대도 급격히 침체되었다. 나비스코는 본사를 뉴저지로 이전했고, 공장은 방치된 채 낡아갔다. 벽돌 벽에는 낡은 포스터와 페인트 자국만 남았고, 한때 기계가 내던 리듬은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도시의 또 다른 많은 공장 건물처럼 이곳 역시 철거될 운명에 놓였지만, 1990년대 들어 뉴욕의 도시 구조는 전환점을 맞는다. 낡은 산업지대를 보존하고 재활용하려는 ‘도시 재생(urban regeneration)’의 흐름이 시작된 것이다.
1997년, 부동산 개발사 Jamestown Properties는 이 오래된 제과 공장을 리모델링하여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벽돌의 질감과 철제 구조, 파이프와 기계의 흔적은 그대로 두고, 그 안에 새로운 기능을 불어넣었다. 그 결과, 첼시 마켓은 뉴욕의 대표적인 ‘리노베이션 건축’이 되었고, 과거의 노동 공간이 오늘날의 문화 소비 공간으로 변모했다. 공장의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그 안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한 것이다.

현재의 첼시 마켓은 1층과 지하층에 펼쳐진 음식점과 상점, 그리고 상부층의 사무실로 구성되어 있다.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Amy’s Bread의 구운 빵 냄새가 복도를 따라 퍼지고, The Lobster Place에서는 신선한 해산물이 즉석에서 조리된다. Jacques Torres Chocolates의 달콤한 초콜릿 향이 공기 중에 섞이며, Spices and Tease 매대에는 세계 각국의 향신료가 진열되어 있다. 뉴욕의 미식 문화가 한데 모여 있는 셈이다.
그러나 첼시 마켓이 단순한 ‘음식 시장’으로만 평가되지는 않는다. 그 안에는 뉴욕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창의 산업의 흐름이 함께 담겨 있다. 건물의 일부는 미디어 기업과 스타트업 오피스로 활용되고 있으며, 그 상징적 정점에는 구글이 있다. 2018년 구글은 이 건물을 약 24억 달러에 인수하며, 기술과 창의의 결합을 대표하는 뉴욕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과거 제과 기계가 있던 자리에는 이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흐르고, 쿠키 냄새 대신 디지털 혁신의 기운이 가득하다.

첼시 마켓의 매력은 단지 재개발의 성공 사례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시간의 층위’가 느껴진다. 높은 천장, 노출된 파이프, 오래된 타일 벽은 과거의 기억을 품고 있고, 그 위를 새로운 빛과 향이 덮는다. 건물 복도 한쪽에는 여전히 “Oreo was born here”라는 문구가 남아 있으며,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과거의 흔적을 스치듯 지나간다. 이곳은 ‘과거의 시간’을 팔아 수익을 내는 상업 공간이 아니라, 시간 그 자체가 상품이 된 공간이다.
첼시 마켓은 또한 ‘뉴욕의 일상’을 상징한다. 현지인들은 점심 식사나 간단한 브런치를 즐기러 이곳을 찾고, 관광객들은 하이 라인(High Line)에서 내려와 이 시장을 자연스럽게 거닌다. 하이 라인과 첼시 마켓은 서로를 보완하는 구조다. 산업의 잔해가 녹지로, 공장이 문화로 재탄생한 두 공간이 서로 연결되며, 도시의 과거와 미래를 하나로 잇는다.

물론 이곳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너무 많은 인파로 인해 점심시간에는 붐비고, 현지인보다는 관광객 중심으로 변화했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는 “뉴욕의 진짜 시장이 아니라 관광용 복합몰”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첼시 마켓의 본질은 그 상업성 너머에 있다. 그곳은 도시의 시간, 그리고 인간의 노동과 창조의 흔적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오늘날 첼시 마켓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뉴욕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과거의 벽돌이 현재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 대화 속에서 도시의 정체성이 재구성된다. 오레오 쿠키를 처음 구웠던 기계의 자리에 젊은 요리사들이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고, 오래된 파이프 사이로 카메라를 든 여행자들이 스쳐간다. 그 풍경 속에서 첼시 마켓은 여전히 굽고, 식히고, 다시 굽는다. 그것은 단지 빵이나 쿠키가 아니라, 뉴욕이라는 도시의 시간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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