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포의 꿈이 제국이 되다 ― R.H. Macy의 시작과 뉴욕의 시대
1858년 뉴욕 맨해튼의 14번가, 그리 크지 않은 상점 하나가 문을 열었다. 창업자 로랜드 허시 메이시(Rowland Hussey Macy) 는 세탁업과 선원 생활, 도자기 장사까지 전전하다 마침내 ‘드라이 굿즈(Dry Goods)’라는 이름의 의류·잡화점을 세웠다. 그는 상점 문앞에 빨간 별을 내걸었는데, 그것은 어린 시절 고래잡이 선박에서의 경험을 상징했다. 별은 ‘행운’과 ‘항해’를 의미했고, 오늘날까지 Macy’s의 로고로 남아 있다. 첫날 매출은 단 11달러였지만, Macy는 확신했다. 사람들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경험을 사러 온다는 사실을.
그의 점포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마케팅을 도입했다. 고정 가격제, 시즌별 쇼윈도 디스플레이, 대규모 세일과 광고. 쇼핑이 아직 사치로 여겨지던 시절, Macy는 쇼핑을 ‘놀이이자 구경’으로 바꾸었다. 단순한 판매보다 감각의 자극을 중시한 그의 방식은 곧 ‘소비의 문화’를 이끌었다. 사람들은 Macy’s에서 물건을 사지 않아도, 유리창 너머로 계절의 변화를 구경했다. 그곳은 산업시대 뉴욕의 새로운 무대였다.

1870년대 들어 Macy’s는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1890년대, 독일계 유대인 형제 나탄(Nathan)과 이시도어 스트라우스(Isidor Straus) 가 경영에 참여하면서 현대적 유통기업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들은 당시 미국 내 백화점 산업의 선구자였다. Straus 형제는 혁신적 공급망 관리와 대량 구매 시스템을 도입해 Macy’s의 가격 경쟁력을 강화했다. 동시에 고객 신뢰를 중시해 ‘상품에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 환불’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이 정책은 소비자 보호의 출발점이자, Macy’s를 대중 친화적 브랜드로 만든 결정적 요소였다.
1902년, Macy’s는 마침내 오늘날의 상징이 된 허럴드 스퀘어(Herald Square) 로 본점을 이전한다. 당시 매장은 34번가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했고, 미국 최대 규모의 백화점이었다. 붉은 별이 새겨진 플래그십 스토어는 단순한 쇼핑센터가 아니라, 도시의 상징이자 뉴욕의 자존심이 되었다. Macy’s는 “도시가 꿈꾸는 소비의 정점”을 시각화한 공간이었다.
2. 소비의 제국, 그리고 미국식 백화점의 탄생
20세기 초반은 Macy’s의 전성기였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동시에 폭발하면서, 사람들은 생활의 품격을 높이고자 했다. Macy’s는 그 욕망을 정확히 읽었다. 그들의 매장은 단순히 물건을 진열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대의 무대’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매장 전면 유리창이 거대한 동화 속 장면으로 변했고, 어린이들은 쇼윈도 앞에서 눈을 반짝였다. Macy’s의 ‘윈도우 디스플레이’는 오늘날의 시각 디자인 산업과 브랜딩 개념을 탄생시킨 현장이기도 했다.

Macy’s는 또한 여성 소비자 중심의 문화를 만들었다. 남성 중심이던 19세기 사회에서 Macy’s는 여성들이 자유롭게 쇼핑하고, 상품을 선택하며,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공적 공간’을 제공했다. 백화점은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여성 해방의 상징적 무대였다. 사회학자들은 이 시기를 두고 “Macy’s는 소비를 통해 여성의 자율성을 확장시켰다”고 말한다.
1920년대, Macy’s는 전국적인 확장을 시작했다. 광고 캠페인과 세일 이벤트를 전국 신문에 싣고, 지방 도시에도 지점을 열었다. 그리고 1924년, Macy’s는 또 하나의 마케팅 실험을 단행했다. 그 해 11월 27일, 뉴욕의 거리를 행진하는 ‘Macy’s Christmas Parade’ 를 열었던 것이다. 본점 확장을 기념하고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을 알리는 행사로 기획된 이 퍼레이드는, 직원들이 직접 동물 탈을 쓰고 행진하는 유쾌한 이벤트였다. 예상보다 훨씬 큰 반응이 돌아왔다. 약 25만 명이 몰렸고, 신문들은 “뉴욕이 춤췄다”고 보도했다. 이 퍼레이드는 바로 오늘날의 Macy’s Thanksgiving Day Parade 로 이어진다.
Macy’s는 이 퍼레이드를 통해 소비 문화를 하나의 공공축제로 확장시켰다. 쇼핑의 문턱은 사라지고, 거리는 무대가 되었으며, 도시 전체가 브랜드의 일부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현대 마케팅의 원형이다.
3. 전쟁, 위기, 그리고 재도약 ― 미국 경제의 거울로서의 Macy’s
1930년대 대공황의 그늘 속에서도 Macy’s는 ‘희망의 쇼윈도’를 지켰다. 한정된 소비 여건 속에서도 사람들은 Macy’s에 들러 잠시 현실을 잊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Macy’s는 다시 퍼레이드를 열며 전후 복귀의 상징이 되었다. 풍선 속에 담긴 만화 캐릭터들은 전쟁의 피로를 잊게 만들었다. Macy’s의 풍선들은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라, 시대의 심리적 회복제였다.
1950~60년대는 Macy’s가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던 시기였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 상품들이 진열대에 올라가고, 중산층 가족들은 Macy’s 쇼핑백을 들고 도심을 걸었다. 영화 「Miracle on 34th Street」(1947)는 이 상징을 완벽히 각인시켰다. 영화 속 Macy’s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믿음과 기적’의 무대였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유통 산업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교외 쇼핑몰의 등장과 할인점 확산은 전통 백화점의 지위를 흔들었다. Macy’s는 여러 차례 구조조정을 거치며 방향을 모색했다. 그 중심에는 1994년 Federated Department Stores 의 인수가 있었다. Federated는 Bloomingdale’s, Filene’s 등 다양한 백화점 체인을 소유한 대형 그룹으로, 이 인수로 Macy’s는 미국 전역을 아우르는 거대 네트워크를 갖추게 되었다.

2005년 Federated는 May Department Stores 를 인수했고, 그 결과로 미 전역의 수많은 지역 백화점들이 ‘Macy’s’ 브랜드로 재편되었다. 그해 Federated는 사명을 아예 Macy’s, Inc. 로 변경했다. 한 지역 상점으로 시작했던 이름이, 이제는 국가적 브랜드이자 유통제국의 이름이 된 것이다.
4. 퍼레이드의 도시 ― Macy’s Thanksgiving Day Parade의 역사와 상징
추수감사절 전날 밤, 맨해튼 어퍼웨스트 79번가와 콜럼버스 애비뉴 일대가 들썩인다. 거대한 풍선들이 공기를 채우며 부풀어 오르고, 거리에는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이른 아침이 되면 뉴욕의 중심가가 열광으로 덮인다. Macy’s Thanksgiving Day Parade,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퍼레이드의 시작이다.
이 퍼레이드는 단순한 행진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문화의 축약판이다. 1927년부터 도입된 헬륨 풍선은 이제 퍼레이드의 상징이 되었다. 미키 마우스, 스누피, 슈퍼맨, 스파이더맨, 피카츄까지 — 시대를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허드슨 강의 바람을 타고 거리를 날았다. 1948년부터 NBC가 생중계하면서, Macy’s 퍼레이드는 미국 가정의 추수감사절 아침의 의례가 되었다. TV 앞에서 가족들이 커피를 마시며 풍선을 기다리는 그 풍경은, ‘가족’과 ‘도시’, 그리고 ‘브랜드’가 한 프레임에 담기는 독특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 축제에도 위기가 있었다. 1942~44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헬륨과 고무가 군수 자원으로 전용되며 퍼레이드가 중단됐다. 대신 Macy’s는 풍선 고무를 기부했고, “전쟁이 끝나면 다시 하늘을 띄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1945년, 약속은 지켜졌다. 이듬해 1946년에는 영화 「Miracle on 34th Street」가 개봉하면서 퍼레이드는 전설이 되었다.

1997년, Cat in the Hat 풍선이 강풍에 휘말려 전신주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몇몇 관람객이 부상당했다. 이후 퍼레이드는 풍선 크기와 풍속 제한 규정을 강화했고, 풍선 제작은 전문 엔지니어링 팀이 맡게 되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퍼레이드가 사상 처음으로 비대면·TV 중계 중심 행사로 바뀌었고, 거리 관람은 제한되었다. 그러나 Macy’s는 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소수의 공연팀과 상징적 풍선만으로 진행된 그 해의 퍼레이드는, 위기 속에서도 ‘계속되는 전통’의 의미를 증명했다.

오늘날 퍼레이드는 약 2.5마일(4킬로미터)의 경로를 따라 진행되며, 매년 약 350만 명의 관람객과 5천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은다. 행렬은 약 8천 명의 퍼포머, 30여 개의 플로트, 15개 이상의 밴드, 20여 개의 풍선으로 구성된다. 단 하루, 도시 전체가 Macy’s의 무대가 된다.
이 퍼레이드는 ‘상업’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지만,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미국의 감정 자산으로 변모했다. 그것은 상품이 아닌 감동의 경험을 파는 기업의 철학이기도 하다. Macy’s가 소비자와 맺은 관계는 단순한 구매자와 판매자의 관계를 넘어선다. Macy’s는 ‘소비’를 ‘축제’로, ‘브랜드’를 ‘전통’으로 만든 기업이다.
5. 새로운 세기, 재편되는 백화점 ― Macy’s의 현재와 미래
2020년대 들어 Macy’s는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았다. 온라인 쇼핑과 이커머스의 급성장이 기존 오프라인 백화점의 존재 이유를 흔들었다. Macy’s의 매출은 2015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고, 팬데믹 이후의 회복세 역시 제한적이었다. 이에 Macy’s는 “Bold New Chapter” 라는 이름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이다. 수익성이 낮은 약 150개 매장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그 대신 주요 도심지 플래그십 매장과 디지털 채널에 투자를 강화한다. 뉴욕 허럴드 스퀘어 본점은 리노베이션을 통해 ‘체험형 백화점’으로 재구성 중이다. 쇼윈도는 다시 ‘스토리텔링 공간’으로, 매장은 ‘라이프스타일 경험 구역’으로 변하고 있다.
동시에 Macy’s는 자회사 Bloomingdale’s 와 Bluemercury 브랜드를 통해 고급 시장과 뷰티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Bluemercury는 빠르게 성장하는 프리미엄 스킨케어 시장에서 Macy’s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Macy’s는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온라인몰과 오프라인 매장을 연계한 옴니채널 전략(Omni-channel strategy) 을 강화하며, 매장에서 구매한 상품을 온라인 계정에서 추적·교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Macy’s Marketplace’라는 개방형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중소 브랜드 입점을 늘리며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Macy’s의 본질은 여전히 ‘도시’에 있다. 허럴드 스퀘어의 본점은 여전히 뉴욕의 심장부에서 붉은 별을 빛내고 있으며, 매년 11월이 되면 전 세계 미디어가 그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Macy’s Thanksgiving Day Parade 는 여전히 미국 연말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이고, Macy’s의 쇼윈도는 여전히 뉴욕의 겨울을 가장 먼저 밝힌다.
167년 동안 Macy’s는 수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한 가지 진리를 지켜왔다.
소비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는 것. Macy’s는 상품을 팔지 않았다. 그들은 기억을 팔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여전히 뉴욕의 거리 위를, 헬륨 풍선처럼 천천히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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