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슨 스퀘어 파크: 도시의 심장 속에 숨은 정원

― 뉴욕의 시간과 예술, 그리고 일상의 풍경이 만나는 곳

맨해튼의 정중앙, 플랫아이언 빌딩이 바라보는 자리에는 도시의 숨결이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있다. 메디슨 스퀘어 파크(Madison Square Park). 뉴욕을 상징하는 수많은 공원 중에서도 이곳은 특별하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도시의 역사와 예술, 일상의 리듬이 동시에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5번가와 매디슨 애비뉴, 23번가와 26번가 사이에 자리한 이 공원은 뉴요커에게는 점심시간의 피난처이자, 여행자에게는 도시의 심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메디슨 스퀘어 파크의 역사는 17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686년, 뉴욕시 헌장에 의해 공공 토지로 지정된 이곳은 처음에는 도자기 묘지(potter’s field)로 사용되었고, 이후에는 군사 훈련장과 병기고가 자리했던 장소였다. 산업화 이전의 뉴욕에서 이 지역은 아직 변두리였다. 하지만 도시가 북쪽으로 확장되던 19세기 중반, 사람들은 이곳을 시민의 휴식과 문화의 중심지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1847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메디슨 스퀘어 파크의 형태가 공식적으로 탄생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메디슨 스퀘어는 뉴욕의 문화 중심지였다. 건축가 스탠퍼드 화이트(Stanford White)가 설계한 ‘두 번째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 이 근처에 세워지며, 음악, 예술, 사교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 시기 공원은 뉴요커들이 산책을 즐기고, 사회적 담론이 오가던 장소였다. 그때부터 이 공원은 단순한 녹지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도시의 문화적 상징이자, 시민 공동체의 정체성이 응축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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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 이후 도시가 산업화와 고층화의 파도를 겪으며 한동안 공원은 쇠퇴기를 맞았다. 하지만 2000년대 초, ‘메디슨 스퀘어 파크 컨서번시(Madison Square Park Conservancy)’가 결성되면서 이 공간은 다시 태어났다. 주민과 시 정부, 그리고 예술가들의 협력으로 공원이 복원되었고,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공공예술의 무대로 자리 잡았다. 지금의 메디슨 스퀘어 파크는 녹지, 예술, 커뮤니티가 공존하는 도시형 문화공간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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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부를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조각상과 기념물들이다. 가장 오래된 작품은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 데이비드 패러것 제독의 동상이다. 조각가 어거스터스 세인트고든스(Augustus Saint-Gaudens)가 조형을 맡고, 건축가 스탠퍼드 화이트가 받침대를 설계한 이 기념물은 예술과 역사, 그리고 건축의 조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공원은 또한 일시적으로 설치되는 공공미술 전시로도 유명하다. 계절마다 새로운 작품이 들어서고, 예술가들은 공원의 지형과 식생을 이용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해석한다. 2025년 현재는 조각가 래리 벨(Larry Bell)의 대형 유리 설치작품이 공원을 채우고 있다.

메디슨 스퀘어 파크의 진정한 매력은 규모가 아니라 ‘리듬’에 있다. 평일 오전이면 인근의 노매드(NoMad) 지역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커피를 들고 산책로를 거닐고, 점심 무렵에는 인근의 쉑쉑(Shake Shack) 앞에 긴 줄이 늘어선다. 오후에는 아이들이 놀이터를 뛰어다니고, 해질녘이 되면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이곳에서는 도시의 일상이 그대로 흐른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동시에 개인적인 공간이기도 한 ‘공공의 사적 공간’. 그것이 메디슨 스퀘어 파크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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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또한 ‘시민의 정원’으로서 기능한다. 메디슨 스퀘어 파크 컨서번시는 정기적으로 커뮤니티 행사를 주최한다. 정원 가꾸기 프로그램, 아침 요가, 지역 농부 시장, 그리고 ‘테이스트 오브 아시아(Taste of Asia)’ 같은 문화축제가 열리며, 도시 속에서 공동체가 만나는 시간을 만든다. 이 공원은 관광 명소이기 이전에, 뉴욕이라는 도시가 여전히 ‘사람의 도시’임을 상기시키는 장소다.

가을의 단풍, 겨울의 조각 전시, 봄의 개화와 여름의 그늘. 메디슨 스퀘어 파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표정을 달리한다. 높이 솟은 플랫아이언 빌딩의 그림자가 공원을 덮고, 햇살이 잔디 위로 번질 때, 도시의 경직된 풍경은 잠시 부드러워진다. 메디슨 스퀘어 파크는 뉴욕의 중심에서 ‘멈춤’을 허락하는 공간이다. 거대한 도시 속에서도 인간적인 속도를 되찾을 수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이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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