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로(Blue Law)는 그 이름만으로도 미국 사회의 독특한 법·문화적 전통을 보여준다. ‘블루’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18세기 초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발간된 법전의 종이가 청색이었던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종교적 색채와 사회적 규율이 짙게 배어 있는 법적 관습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자리잡았다.
기원은 17세기 청교도 식민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교도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신앙의 핵심으로 삼았다. 따라서 일요일에는 술집을 여는 것도, 상점을 운영하는 것도, 심지어는 오락과 스포츠조차 금지됐다. 오직 예배와 기도, 그리고 가정 내 신앙생활만 허용됐다. 이러한 규범이 시간이 흐르면서 일요일 영업 제한 법률로 제도화된 것이 바로 블루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적 엄격성은 점차 완화되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미국인들의 생활 패턴은 달라졌다. 주 6일 근무 체제 속에서 일요일은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유일한 날이자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날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블루로는 종교적 규범을 넘어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호하는 세속적 장치로 재해석되었다.
이 과정에서 법적 논란도 많았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 “경제 활동을 제한한다”는 비판과 “휴식일은 사회적 필요”라는 옹호가 팽팽히 맞섰다. 결국 1961년 연방대법원은 McGowan v. Maryland 판결에서 블루로를 합헌이라고 선언했다. 재판부는 “블루로는 특정 종교 강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복지를 위한 세속적 목적을 가진 제도”라고 명확히 했다. 이 판결은 미국 전역에서 블루로가 존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대다수 주에서는 블루로를 폐지하거나 크게 약화시켰다. 24시간 영업과 소비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일요일 쇼핑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뉴저지의 버겐 카운티는 예외적으로 블루로를 엄격히 유지해왔다.
뉴저지와 버겐 카운티: 마지막 남은 ‘휴일의 섬’
뉴저지주의 블루로는 1959년에 제정된 일요영업 제한법(Sunday Closing Law)에 기반한다. 이 법은 카운티 주민투표를 거쳐야 발효되는 구조였다. 즉, 주민들이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 폐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 뉴저지의 대부분 카운티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이 제도를 없앴다.
그러나 버겐 카운티는 달랐다. 이곳에서는 여러 차례 주민투표가 있었음에도 블루로가 계속 유지되었다. 1993년 주민투표에서도 다수는 “일요일 영업 제한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택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일요일을 ‘가족의 날’로 지키고자 하는 문화적 합의 때문이었다.

버겐 카운티에서 블루로가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다. 의류, 신발, 가구, 가전제품, 건축자재 등은 일요일에 팔 수 없다. 대형 마트조차도 식료품 코너만 운영하고, 나머지 구역은 셔터를 내린다. 버겐 주민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지만, 외지인에게는 기이하게 보이기도 한다.
파라무스(Paramus) 시의 경우 블루로를 더욱 엄격히 적용한다. 시 조례 391장은 “일요일 모든 세속적 영업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예외 조항을 두어 약국, 식당, 농산물 판매, 비알코올 음료, 신문·잡지 판매, 휘발유 판매, 레크리에이션 및 오락 활동은 허용한다. 덕분에 일요일에도 약국이나 영화관, 놀이공원, 식당은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이처럼 버겐 카운티의 블루로는 단순한 법률이 아니라 생활 방식과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주민들은 일요일에 대규모 쇼핑을 하기보다는 가족과 교외로 나가거나, 종교 활동과 여가를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블루로는 단순한 제한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이자 공동체적 합의인 셈이다.
American Dream 몰, 법의 경계에 서다
이 전통에 균열을 낸 것은 American Dream 몰이다. 뉴저지 이스트러더포드에 위치한 이 대형 복합단지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한다. 실내 스키장, 워터파크, 놀이공원, 아쿠아리움, 호텔, 그리고 수많은 의류·명품 매장을 갖춘 이곳은 단순한 쇼핑몰을 넘어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도시와 같다.

몰 건설 당시 지역 당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운영 측은 블루로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놀이공원과 워터파크 같은 오락 시설은 일요일에도 열지만, 의류나 가전 등 금지 품목의 소매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24년 들어 American Dream은 일요일에도 의류 매장을 열기 시작했다.
몰 측의 주장은 명확하다. “우리는 주정부 소유 부지인 메도우랜즈 스포츠 단지에 속해 있으므로, 카운티의 블루로 적용 대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 주유지에서는 카운티 법률이 미치지 않는다는 논리다. 반면 파라무스와 버겐 카운티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주민투표로 채택된 블루로를 무시하고, 약속을 어긴 채 불법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송의 쟁점은 법적 관할권에 있다. 과연 카운티 블루로가 주 소유 부지 내 대형 복합단지에도 적용되는가? 아니면 American Dream의 주장대로 면제되는가? 현재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문제는 지역 사회 전체의 뜨거운 논란으로 번졌다.
휴식일 전통과 현대 상업의 충돌: 사회적 의미와 전망
American Dream 몰 사태는 단순히 영업 허용 여부를 넘어 현대 소비문화와 전통적 생활 규범의 충돌을 보여준다. 버겐 카운티 주민들은 블루로를 단순히 규제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교통 체증을 줄이고, 대형 상업 활동이 없는 평화로운 일요일을 지켜주는 장치로 받아들인다. 실제로 버겐 카운티는 뉴저지에서 가장 혼잡한 지역 중 하나로, 일요일 쇼핑 금지가 교통 완화 효과를 가져온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글로벌 자본과 초대형 상업 시설은 일요일까지 영업을 확대해야만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American Dream처럼 막대한 건설비용과 운영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프로젝트는 매일매일의 매출이 절실하다. 따라서 블루로는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현대 상업 모델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규제가 된다.
이번 소송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두 가지 시나리오로 전개될 수 있다.
- 법원이 버겐 카운티의 손을 들어줄 경우, American Dream은 다시 일요일 영업을 제한해야 한다. 이는 블루로의 정당성과 지역 공동체의 합의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반대로 American Dream이 승리한다면, 버겐 카운티의 블루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다른 상점과 몰들도 일요일 영업을 시작할 것이고, 지역 전통은 무너질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이번 사건은 단순한 법적 분쟁을 넘어, “일요일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사회적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일요일은 여전히 가족과 공동체의 날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소비와 엔터테인먼트의 또 다른 날이 되어야 하는가. 버겐 카운티의 선택과 법원의 판결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줄 것이다.
블루로의 미래는…
블루로는 청교도 전통에서 시작해 시민적 휴식일로 재해석된, 미국 법·문화사의 독특한 유산이다. 대부분 지역에서 사라졌지만, 뉴저지 버겐 카운티에서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거대 상업 시설 American Dream 몰은 이 전통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영업권 다툼을 넘어, 지역 정체성과 글로벌 자본, 전통과 현대가 충돌하는 상징적 무대다. 버겐 카운티 주민들이 지켜온 조용한 일요일이 계속될지, 아니면 소비의 물결 속에 사라질지는 이제 법원의 판단과 지역사회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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