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반, 세계는 한때 ‘국경 없는 시민사회’를 꿈꿨다. 자유로운 이동, 보편적 인권, 글로벌 규범과 연대는 더 이상 이상이 아니라 현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서사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감각은 연대가 아니라 불안이며, 확장이 아니라 수축이다. 제국은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더 이상 팽창하지 않는다. 국가는 존재하지만, 시민은 보호받지 못한다.
이 글은 흔히 ‘신제국주의의 부활’이라 불리는 현재의 정치적·사회적 국면을 제국의 형태 변화, 세계 권력의 전략,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의 조건 변화라는 세 축을 통해 인문학적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제국은 돌아왔는가,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연명하는가

오늘날의 세계 질서를 ‘제국의 귀환’이라고 부르는 것은 직관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개념적으로는 불충분하다. 19세기 제국주의는 영토 확장, 식민 통치, 군사 점령이라는 명확한 형식을 가졌다. 그러나 오늘날 강대국의 행태는 이 고전적 모델과 일치하지 않는다. 영토는 늘어나지 않고, 식민지는 관리되지 않으며, 군대는 점령보다는 억제와 경고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 새로운 형태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개념은 ‘팽창하지 않는 제국’이다. 이 제국은 공간을 확장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과 가능성을 지배한다. 특정 국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무엇을 할 수 없게 되는지를 미리 규정한다. 제재, 기술 통제, 금융 접근 제한, 안보 의존 구조는 모두 이러한 시간 지배의 장치다.
이 질서에서 제국은 세계를 통치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선택이 등장하는 순간을 끊임없이 지연시킨다. 이는 안정된 질서를 만드는 제국이 아니라, 대안을 늦추는 제국이다. 오늘날 ‘신제국주의’로 보이는 현상은 강력한 팽창의 결과가 아니라, 헤게모니가 더 이상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방어적 형식이다.
규범의 제국에서 감정의 제국으로
냉전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스스로를 ‘규범 제국’으로 상상해 왔다. 민주주의, 자유시장,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는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국제 질서를 정당화하는 언어였다. 그러나 최근의 정치적 흐름은 이 보편 언어를 점점 철회하거나 거래의 언어로 대체한다.

이 전환의 핵심은 합리성에서 정동(감정)으로의 이동이다. 오늘날 제국적 권력은 장기 전략이나 일관된 규범보다, 분노·공포·자존심·모욕 같은 감정 언어를 통해 작동한다. 이는 계산된 질서라기보다, 동원을 위한 서사에 가깝다.
이 감정의 제국은 안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불안정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강력한 동원력을 갖는다. 제국은 더 이상 세계를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지지층의 감정을 끊임없이 자극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유지한다. 이때 외부의 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의 적이다. 제국은 외부를 식민화하지 못할수록, 내부의 다양성과 모호성을 위협으로 전환한다.
팽창 없는 제국의 시대, 다른 세계 파워들의 생존 전략
이 팽창하지 않는 제국 질서 속에서 다른 세계 권력들은 ‘대체 제국’을 꿈꾸지 않는다. 그 대신 묻는 질문은 하나다. 이 불안정한 질서 안에서 얼마나 자율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가.
중국은 정면 대체 전략을 취하지 않는다.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려 하지도, 완전히 순응하지도 않는다. 대신 기술·금융·외교 영역에서 평행 질서를 구축한다. 이는 제국이 되려는 시도라기보다, 제국이 작동하지 않을 때를 대비한 백업 시스템에 가깝다.

러시아는 질서를 대체할 능력은 없지만, 질서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 능력은 있다. 불안정성을 가속함으로써, 기존 질서의 정당성을 잠식한다. 이는 생존 전략이기보다는 교란 전략이다.
유럽은 규범의 언어를 여전히 유지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힘은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유럽은 제국 없는 제국의 흉내, 혹은 도덕적 관리자의 자기 상상 속에 머문다.
글로벌 사우스와 중견국들은 보다 실용적이다. 이들은 어느 편에도 완전히 서지 않는다. 대신 상황에 따라 언어를 바꾸고, 도덕보다 생존을 기준으로 선택한다. 이들에게 제국은 무너뜨릴 대상이 아니라, 틈을 활용해야 할 환경이다.
시민권의 위계화: 미국 시민권자, 영주권자, 비시민권자
이제 시선을 국가에서 시민으로 옮겨보자. 팽창하지 않는 제국의 가장 큰 희생자는 영토 밖의 국가가 아니라, 국가 안의 시민들이다. 오늘날 시민은 더 이상 하나의 동질적 범주가 아니다. 시민권은 위계화되었고, 보호는 조건화되었다.

미국 시민권자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법적 지위를 갖지만, 그 보호는 무조건적이지 않다. 시민권은 권리라기보다 충성과 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자격처럼 작동한다. 시민은 정치의 주체이기보다, 정치적으로 동원 가능한 대상이 된다.
영주권자는 현대 정치질서에서 가장 상징적인 존재다. 이들은 세금을 내고, 노동을 제공하며, 공동체를 구성하지만, 완전한 정치적 주체는 아니다. 영주권자는 합법적이지만 완결되지 않은 시민성을 살아간다. 위기의 순간, 이들은 가장 먼저 문제적 존재로 호명된다.
비시민권자는 더 이상 단순한 외부인이 아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완전히 배제되지도, 완전히 포함되지도 않은 상태—영구적 임시성—가 이들의 조건이다. 이들은 사회의 바깥이 아니라, 사회가 작동하기 위해 유지되는 불안의 층위다.
세계 시민사회 이후, ‘후기 시민’의 시대
한때 세계는 ‘세계 시민사회’를 상상했다. 국경을 넘어 연대하는 시민, 보편적 인권을 공유하는 주체, 글로벌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공동체. 그러나 이 이상은 사실상 붕괴했다. 그 자리에 등장한 것은 연대 없는 시민성이다.
국가는 보호를 약속하지 않고, 세계는 연대를 제공하지 않으며, 개인은 스스로를 관리해야 한다. 시민권은 더 이상 충분한 보호를 보장하지 않는다. 대신 개인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증명해야 한다. 교육, 기술, 자본, 네트워크는 생존의 도구가 된다.

이 시대의 시민을 가장 정확하게 정의하는 개념은 ‘후기 시민(post-citizen)’이다. 후기 시민은 보호받는 주체도, 세계가 연대하는 존재도 아니다. 그는 불안정한 질서 속에서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는 존재다.
맺음말: 이 시대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
지금의 세계는 제국이 너무 강해서가 아니라, 제국이 더 이상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팽창하지 않는 제국은 지속 가능한 질서가 아니라, 붕괴를 지연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 지연의 시간 속에서 각자 도생의 기술을 익히며 살아간다.
이 시대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늘의 세계는
팽창하지 않는 제국 아래에서
보호가 권리가 아닌 자격이 되고,
시민이 연대가 아닌 생존으로 규정되는
‘후기 제국·후기 시민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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