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보다 먼저 존재했던 음식…그 시작은 기록되지 않은 일상의 밥
비빔밥의 역사는‘언제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 음식의 본질은 특정한 레시피가 아니라, 먹는 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밥 위에 여러 반찬을 올려 한데 섞어 먹는 행위는, 기록 이전의 일상 속에서 이미 자연스럽게 존재했다. 그래서 비빔밥은 오랫동안 ‘있었지만 굳이 이름 붙일 필요가 없었던 음식’이었다.

문헌에 등장하는 가장 이른 기록은 조선 후기의 『시의전서』다. 이 책에는‘부뷔음밥(부뷔움밥)’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며, 밥에 여러 나물과 고명을 얹어 양념과 함께 비벼 먹는 음식이 비교적 명확한 형태로 기록된다. 하지만 이 기록은 비빔밥의 시작이 아니라, 이미 널리 퍼져 있던 식생활이 비로소 문자화된 순간에 가깝다.
그 이전의 기록들—『동국세시기』나 『열양세시기』—에는‘비빔밥’이라는 이름은 없지만, 제사나 명절 이후 남은 나물과 반찬을 밥에 섞어 먹는 풍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장면들은 비빔밥이 특별한 요리가 아니라, 절기와 일상을 잇는 생활의 방식이었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비빔밥이 처음부터 궁중이나 상층 문화에서 태어난 음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화려한 연회 음식이나 의례 음식과 달리, 비빔밥은 남은 것을 다시 묶고, 흩어진 것을 하나로 정리하는 생활 음식이었다. 즉, 비빔밥의 기원은 창조의 역사라기보다, 반복과 적응의 역사다.
신분제 사회 속의 비빔밥
― 민간 음식이 ‘격상’되는 조건
조선 사회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지만, 음식 문화는 그 경계가 비교적 유연했다. 특히 비빔밥처럼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음식은 특정 신분의 전유물이 되기보다, 각 계층의 생활 조건에 따라 다르게 변주되었다.

비빔밥이 흔히‘민간의 음식’으로 불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농경 사회에서 비빔밥은 농번기나 공동체 식사 이후, 이미 준비된 반찬을 빠르게 먹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었다. 이는 시간과 노동을 아끼는 방식이었지, ‘간소함을 미덕으로 내세운 음식’은 아니었다. 오히려 비빔밥은 이미 많은 노동이 투입된 나물과 반찬을 마지막까지 활용하는 지혜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왜 전통적으로 비빔밥은‘천한 음식’으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비빔밥이‘대충 먹는 음식’이 아니라, 질서 있게 섞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식문화에서 섞음은 무질서가 아니라 조화의 행위였다. 음양오행의 색감, 맛의 균형, 그리고 각 재료가 지닌 성격은 비빔이라는 행위를 통해 하나의 완결된 그릇으로 수렴되었다.
이 과정에서 비빔밥은 신분을 초월해 받아들여졌다. 상층 계층 역시 제사 이후 남은 나물을 밥에 섞어 먹었고, 이는 일상의 식사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다만 계층에 따라 재료의 다양성, 손질의 정교함, 식사의 여유는 달랐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비빔밥은 계층을 구분하는 음식이 아니라, 계층의 생활 방식을 반영하는 음식으로 기능한다.
전주 비빔밥과‘양반의 비빔밥’이라는 오해
― 신분이 아니라 도시의 미감
비빔밥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이 바로‘양반의 비빔밥’이다. 특히 전주 비빔밥은 오랫동안 이 표현과 함께 소개되어 왔다. 그러나 이 표현은 자칫 비빔밥의 기원을 왜곡할 위험을 안고 있다.
전주 비빔밥이‘양반의 비빔밥’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양반이 이 음식을 창조했기 때문이 아니다. 전주는 조선 시대 내내 감영이 위치한 행정 중심지였고, 향반(鄕班)이라 불리는 지방에 정착한 생활 양반이 밀집한 도시였다. 이들은 궁중 귀족과 달리 농촌과 도시의 일상에 깊이 연결된 계층이었고, 제사를 직접 준비하며 지역 농산물과 장류를 적극 활용했다.

이 환경 속에서 비빔밥은 재구성된다. 전주 비빔밥의 특징—다양한 나물, 콩나물과 육회, 고추장을 절제한 양념, 그리고 육수를 곁들이는 방식—은 손이 많이 가는 준비와 여유 있는 식사 시간을 전제로 한다. 이는 배를 채우기 위한 한 끼라기보다, 정성스럽게 완성된 식사였다.
따라서‘양반의 비빔밥’이라는 말은 신분의 독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여유와 정돈, 그리고 도시적 미감을 가리키는 은유에 가깝다. 전주 비빔밥은 민간 음식이 양반 사회의 제사 문화와 도시 환경을 만나며, 하나의 격상된 형태로 발전한 사례다. 이후 근대에 들어 전주 비빔밥은 상업화와 관광을 통해‘대표 음식’으로 표준화되며, 이 서사는 더욱 강화되었다.
도시화 이후의 비빔밥
― ‘정리 음식’에서 ‘조합형 한 그릇’으로
19세기 말부터 본격화된 도시화는 비빔밥의 성격을 다시 한 번 바꿔 놓는다. 농경 사회에서 비빔밥은 공동체 식사와 제사 이후의 정리 음식이었다면, 도시에서는 조합형 식사로 재편된다.
도시의 식생활은 개인화되었고, 외식 문화가 확산되었다. 장시간 노동과 빠른 회전율을 요구하는 식당 환경 속에서, 비빔밥은 이상적인 메뉴가 된다. 이미 준비된 반찬을 한 그릇에 담아 즉시 제공할 수 있고, 영양적으로도‘균형 잡힌 식사’라는 설명이 가능했다. 이때 비빔밥은 더 이상‘남은 것을 섞는 음식’이 아니라, 미리 준비된 것을 조합하는 음식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가 비빔밥을 단순히‘간편식’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비빔밥은 도시 환경 속에서 두 갈래로 진화한다. 하나는 일상의 비빔밥이다. 가정과 식당에서 빠르게 완성되는 한 그릇 음식으로서의 비빔밥이다. 다른 하나는 전주 비빔밥처럼, 지역성과 정체성을 강조하며 오히려 더 정교해진 비빔밥이다.
이 이중 구조 속에서 비빔밥은 살아남았다. 재료가 고정되지 않고, 계절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화는 비빔밥을 단순화한 것이 아니라, 적응력 있는 음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날 비빔밥은 다시 한 번 변곡점에 서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비빔밥은‘건강한 한식’, ‘웰빙 푸드’로 소비되지만, 동시에 그 역사적 맥락은 쉽게 지워진다.
비빔밥의 진짜 이야기는, 그릇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보다 왜 섞어 먹었는가에 있다. 신분제 사회에서 비빔밥은 경계를 넘는 일상이었고, 도시화 속에서는 삶의 속도에 맞춰 재구성된 음식이었다. 비빔밥은 늘 시대의 조건에 반응해 왔고, 그 유연함이야말로 이 음식이‘전통’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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