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2일, 뉴욕과 뉴저지의 거리는 분주한 금요일 오후의 활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네온사인 불빛 아래, 보이지 않는 죽음의 그림자가 소리 없이 번지고 있다. 미국 전역을 뒤흔든 ‘펜타닐(Fentanyl) 팬데믹’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인류가 만든 가장 치명적인 마약 중 하나로 꼽히는 신종 합성 오피오이드 ‘니타젠(Nitazenes)’이 이 지역을 새로운 진앙으로 삼아 무섭게 확산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마약 문제를 넘어, 지역 사회의 안녕과 공중 보건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다. 본지는 펜타닐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재앙의 서막을 여는 니타젠의 실체를 심층 추적했다.

펜타닐보다 최대 20배 강력한 ‘괴물’의 등장
니타젠이라는 이름은 대중에게 아직 낯설다. 하지만 이 물질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니타젠의 역사는 냉전 시대인 195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위스의 제약사 CIBA(현 노바티스의 전신)는 강력한 진통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 화합물을 처음 합성했다. 연구 결과, 니타젠 계열 물질들은 모르핀보다 수백 배에서 수천 배에 달하는 경이적인 진통 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동물 실험 과정에서 나타난 치명적인 호흡 억제 부작용과 상상을 초월하는 중독성은 상용화의 길을 가로막았다. 결국 니타젠은 ‘너무 위험하다’는 판단 아래 임상 시험 단계에도 이르지 못하고, 특허 서류와 학술 논문 속에서만 존재하는 ‘잊혀진 분자’로 반세기 넘게 잠들어 있었다.

이 잠들어 있던 악마를 깨운 것은 현대의 불법 마약 시장이다. 멕시코 카르텔과 중국의 화학물질 제조업자들은 법망을 피하고 더 강력한 자극을 찾는 중독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새로운 대체 물질을 끊임없이 물색해왔다. 이들에게 낡은 논문 속에 잠들어 있던 니타젠의 화학식은 ‘황금 레시피’나 다름없었다. 제조 방법이 공개되어 있고, 주원료가 되는 화학 전구체(precursor)는 규제가 덜해 구하기도 비교적 쉬웠다. 무엇보다, 극소량으로도 펜타닐을 능가하는 효능을 낼 수 있다는 점은 밀매업자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이점을 제공했다. 1kg의 니타젠으로 만들 수 있는 치사량 단위의 마약 양은 펜타닐의 수십 배에 달하기에, 운송과 유통의 위험 부담 및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이 공식적으로 경고하는 니타젠 계열 약물은 ‘이소토니타젠(Isotonitazene)’, ‘메토니타젠(Metonitazene)’, ‘에토니타젠(Etonitazene)’, 그리고 최근 뉴욕·뉴저지 지역에서 적발된 ‘프로토니타젠(Protonitazene)’ 등 십여 종에 이른다. 이들의 공통점은 상상을 초월하는 독성이다. 대표적으로 이소토니타젠은 펜타닐보다 최대 10배 강력하며, 가장 강력한 부류에 속하는 에토니타젠은 펜타닐보다 무려 10배에서 20배, 모르핀보다는 2000배 이상 강력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소금 한 알갱이(약 0.05mg) 정도의 극미량으로도 건장한 성인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끔찍한 계산으로 이어진다.

더욱 교활하고 위험한 것은 유통 방식이다. 니타젠은 그 자체로 유통되기보다는, 헤로인이나 코카인, 메스암페타민 등 기존 마약의 ‘강화제’로 사용되거나, 유명 제약사의 진통제인 옥시코돈(Oxycodone)이나 자낙스(Xanax) 등을 위조한 가짜 알약에 혼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용자들은 자신이 구매한 것이 단순한 헤로인이나 처방약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뉴욕시 마약 정책 연합(Drug Policy Alliance)의 한 관계자는 “지금 길에서 ‘헤로인’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것들 중 상당수는 실제 헤로인 함량이 10%도 채 되지 않으며, 나머지는 펜타닐과 자일라진(Xylazine), 그리고 이제는 니타젠 같은 온갖 종류의 합성 물질로 채워진 ‘화학 칵테일’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숙련된 마약 사용자조차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을 가늠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과다복용에 빠져들고 있다.
이미 현실화된 뉴욕·뉴저지 지역의 위협
니타젠의 위협은 더 이상 서부나 중부 일부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세계 최대의 도시이자 가장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뉴욕과 그 관문인 뉴저지는 이미 니타젠의 핵심적인 유통 거점이자 소비 시장이 되었다. 지난해인 2024년 7월, 연방 검찰 뉴욕 남부지검과 뉴저지 지검이 합동으로 발표한 마약 밀매 조직 기소 내용은 지역 사회에 거대한 충격파를 던졌다. 이들은 다크웹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프로토니타젠 분말을 밀수입한 뒤, 뉴저지 캠든의 한 주택가에 차려진 비밀 실험실에서 이를 다른 물질과 혼합해 유통하려 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데미안 윌리엄스 뉴욕 남부 연방검사장은 “이 사건은 펜타닐의 위협을 능가할 수 있는 차세대 합성 오피오이드가 우리 문 앞까지, 아니 이미 문 안으로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경고”라며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위험성을 알렸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심각하다. 뉴저지주 경찰 마약단속국의 한 베테랑 형사는 익명을 전제로 한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해 2~3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펜타닐이 섞인 헤로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압수품을 정밀 분석해보면 펜타닐은 물론이고 정체불명의 신종 합성 물질이 한두 가지씩은 꼭 섞여 나온다”고 털어놨다. 그는 “니타젠은 일반적인 간이 시약 검사로는 거의 검출되지 않아 현장에서는 그 존재를 확인조차 하기 어렵다. 용의자를 체포하고 압수품을 국립 연구소로 보내 정밀 분석 결과를 받아보고 나서야 ‘아, 이게 니타젠이었구나’하고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단속의 근본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러한 ‘스텔스(Stealth)’ 특성은 니타젠이 법 집행망을 비웃으며 조용히, 그리고 더 넓게 퍼져나갈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뉴욕시 보건정신위생국(DOHMH)이 발표하는 약물 과다복용 사망자 통계는 이러한 현실을 숫자로 증명한다. 2024년 잠정 집계된 뉴욕시 약물 과다복용 사망자 수는 사상 처음으로 3,5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며, 이 중 80% 이상에서 펜타닐이 검출되었다. 보건 당국은 아직 니타젠 관련 사망자를 별도로 집계하고 있지는 않지만, 상당수 펜타닐 관련 사망 사례에 니타젠이 미량이라도 혼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원인 불명의 급격한 호흡마비로 사망하거나, 다량의 나르칸 투여에도 반응하지 않는 비전형적인 과다복용 사례들이 응급실을 중심으로 보고되면서, 의료계는 이것이 니타젠 확산의 ‘전조 증상’이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뉴어크 유니버시티 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데이비드 로시는 “우리는 지금 미지의 적과 싸우고 있다. 환자가 어떤 물질에 중독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기존의 치료 프로토콜이 통하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과 점점 더 자주 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해독제 ‘나르칸’ 마저 압도…속수무책인 현장
오피오이드 과다복용 대응의 최후 보루는 ‘나르칸(Narcan)’ 혹은 ‘에비지오(Evzio)’라는 상품명으로 알려진 해독제 ‘날록손(Naloxone)’이다. 날록손은 뇌의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결합해 마약 성분을 밀어내고, 치명적인 호흡 억제를 되돌리는 ‘기적의 약’으로 불린다. 경찰관, 소방관, 구급대원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휴대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보급이 확대되면서 지난 10년간 수십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 그러나 이 최후의 방어선이 니타젠이라는 강력한 적 앞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문제는 ‘결합 친화도(Binding Affinity)’의 차이다. 니타젠은 펜타닐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뇌의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달라붙는다. 때문에 기존의 표준 용량 날록손으로는 수용체에 붙어있는 니타젠 분자를 밀어내기가 턱없이 부족하다. 펜타닐 과다복용 환자의 경우 보통 1~2회분의 날록손(4~8mg)을 투여하면 의식을 회복하지만, 니타젠 중독이 의심되는 환자에게는 5회, 10회분, 심지어 보유한 날록손을 전부 쏟아부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소위 ‘날록손 저항성(Naloxone-resistant)’ 과다복용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시 소방국(FDNY) 산하 응급구조대(EMS)에서 15년째 근무 중인 한 구급대원은 지난달 겪었던 끔찍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브롱크스의 한 아파트에서 과다복용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20대 남성이었고 이미 호흡과 맥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상태였죠. 우리는 즉시 나르칸을 투여하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습니다. 한 번, 두 번… 평소 같으면 벌써 반응이 왔어야 하는데 미동도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가진 나르칸 8회분을 전부 사용하고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그는 응급실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습니다. 동료들과 저는 무력감과 패배감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무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공포, 그것이 지금 현장의 분위기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응급의료 시스템 전체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더 많은 양의 날록손이 필요하다는 것은 곧 비용의 증가를 의미하며, 한 명의 환자에게 더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므로 다른 위급 환자에게 출동할 여력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를 눈앞에서 잃어야 하는 구급대원과 의료진의 정신적 외상(Trauma)과 소진(Burnout) 문제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대응 방식으로는 니타젠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더 강력한 효능을 가진 새로운 해독제의 개발과 보급이 시급하며, 동시에 길거리에서 유통되는 마약의 성분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경고해주는 약물 검사 서비스(Drug Checking Service)와 같은 ‘피해 감소(Harm Reduction)’ 정책을 전향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값싼 중국산 화학 전구체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적인 외교 공조와, 마약 중독을 범죄가 아닌 질병으로 보고 치료와 재활에 더 많은 사회적 투자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펜타닐이 열어젖힌 판도라의 상자에서, 이제 ‘니타젠’이라는 더 무서운 악마가 기어 나오고 있다. 뉴욕과 뉴저지는 지금 그 악마와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대에 올라있다. 이 싸움에서 밀린다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수천, 수만 명의 생명과 지역 사회의 붕괴라는,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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