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 셧다운의 역사

― 멈춰 선 행정, 반복되는 정치의 자해

Ⅰ. 셧다운, 제도의 틀 속에서 태어난 ‘행정의 멈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은 단순한 행정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헌법이 규정한 권력 분립 구조 속에서 태어난, 제도적으로 예정된 ‘멈춤’이다. 미국 헌법은 예산의 승인권을 의회에 부여하고, 행정부는 승인된 범위 내에서만 지출할 수 있도록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 원칙을 구체화한 법률이 바로 1870년에 제정된 초과지출금지법(Antideficiency Act)이다. 이 법은 의회의 승인 없이 정부 기관이 단 한 푼이라도 집행하면 불법으로 간주하며, 공무원은 예산이 승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근무조차 지속할 수 없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셧다운’의 형태는 1980년에 들어서야 제도적으로 확립됐다. 그 계기는 법무부 변호사 벤자민 시빌레티(Benjamin Civiletti)의 법적 해석이었다. 그는 “예산 승인 없이 정부가 지출을 지속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명시했고, 이후 행정부는 예산 공백이 생길 경우 비필수 업무를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따르게 됐다. 그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예산이 늦더라도 전년도 수준에서 지출을 유지하며 운영을 이어갔지만, 시빌레티의 해석 이후 관행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 순간부터 셧다운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무기로 변모했다. 의회가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행정이 멈추고, 그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간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법이 허용한 정치적 자해”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셧다운은 민주주의의 원칙에서 비롯되었지만, 정치적 타협이 실패할 때마다 그 원칙은 국민을 향해 되돌아왔다.

Ⅱ.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 셧다운의 정치화와 일상화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셧다운이 처음으로 공식화된 것은 1980년 5월이었다. 당시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예산이 부결되며 정부는 하루 동안 일부 기능을 멈췄다. 직원 1,600여 명이 일시적으로 업무를 중단했지만 큰 혼란은 없었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 시기, 셧다운은 짧지만 반복되는 정치 전술로 자리 잡았다. 1981년부터 1987년 사이, 무려 여덟 차례의 셧다운이 발생했으며 대부분은 1~2일에 그쳤지만, 그때마다 행정부와 의회의 대립이 표면화됐다. 레이건 대통령은 감세 정책과 국방비 확대를 추진했지만,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사회보장예산 삭감을 반대하며 예산안을 거부했다. 정치적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정부는 반복적으로 ‘부분 마비’를 택해야 했다.

셧다운이 정치적 위기로 비화한 결정적 순간은 1995년과 1996년 사이였다. 빌 클린턴 대통령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이 이끄는 공화당이 예산 균형과 복지지출을 둘러싸고 충돌하면서, 미국은 두 차례의 장기 셧다운을 겪었다. 첫 번째는 1995년 11월 14일부터 18일까지 닷새간, 두 번째는 같은 해 12월 16일부터 1996년 1월 6일까지 이어져 총 21일 동안 연방정부가 멈춰 섰다. 약 80만 명의 공무원이 무급휴직에 들어갔고, 국립공원과 연방기록관, 여권 발급 사무소 등이 문을 닫았다.

당시 여론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갤럽 조사에서 응답자의 60% 이상이 공화당을 더 큰 책임자로 지목했다. 클린턴은 오히려 협상 과정에서 “예산은 국민의 삶을 인질로 삼을 수 없다”고 발언하며 정치적 주도권을 확보했다. 1995~96년 셧다운은 행정부와 의회의 대립이 단순한 정책 논쟁을 넘어 ‘정치적 심리전’으로 발전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셧다운은 예산 협상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굳어졌고, 워싱턴 정치는 타협보다 충돌에 익숙해졌다.

Ⅲ. 21세기의 셧다운 ― 행정이 정치의 인질이 된 시대

2000년대 초반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예산 협상이 이어졌으나, 2010년대 들어 미국 정치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셧다운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중에서도 2013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셧다운은 현대적 사례의 전형으로 꼽힌다. 공화당은 ‘오바마케어(ACA)’ 예산 집행을 중단하지 않으면 예산안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맞섰고, 결국 정부는 10월 1일부터 16일까지 16일간 운영이 멈췄다. 약 80만 명의 공무원이 무급휴직 상태가 되었고, 국립공원과 연방 연구소, 환경청 등이 문을 닫았다. 의회예산국(CBO)은 이 사태로 미국 경제가 24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평가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그러나 이보다 더 긴 그림자는 2018~2019년 트럼프 행정부 때 드리워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예산 57억 달러를 요구하자, 민주당이 이를 거부하면서 셧다운은 사상 최장인 35일 동안 이어졌다. 80만 명의 공무원이 급여를 받지 못했고, 항공 안전국(TSA) 직원들의 결근이 늘어나 항공편이 대거 취소됐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상황을 “세계 최강국이 스스로의 행정을 정지시킨 초유의 사태”라고 평했다.

셧다운의 경제적 피해는 막대했다. 의회예산국은 이 사태로 국내총생산(GDP)이 110억 달러 줄었으며, 그 중 30억 달러는 회복되지 못한 ‘영구 손실’로 남았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셧다운이 장기화되면서 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렸다. 정부의 기능이 멈출 때, 그 피해는 정치권이 아닌 국민에게 전가된다. 정부 급여가 끊기고 세금 환급이 지연되며, 공공서비스가 중단되는 일은 셧다운의 전형적 후유증이 되었다.

Ⅳ. 2025년, 다시 멈춘 워싱턴의 시계

2025년 10월 1일, 미국 연방정부는 다시 멈췄다. 새 회계연도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정부는 공식적으로 셧다운에 돌입했다. 하원은 임시예산안을 통과시켰으나, 상원에서 부결되었고 결국 연방정부는 2019년 이후 처음으로 광범위한 행정 중단 사태를 맞았다.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에 따르면, 약 90만 명의 공무원이 무급휴직 대상이 되었고, 또 다른 70만 명은 ‘필수 인력’으로 분류되어 급여 없이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셧다운은 이전 사례와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보인다. 우선, 행정부가 과거의 관례였던 ‘백페이(Back Pay)’ 자동 지급을 보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OMB의 내부 해석을 인용해 “무급기간에 대한 소급 지급은 법적 의무가 아니라 행정부의 재량”이라고 전하며, 이번 결정이 연방직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부 부처 노조는 “공무원들이 정치적 교착의 대가를 떠안고 있다”며 집단 항의 서한을 제출했다.

행정적 타격도 크다. 국세청(IRS)은 약 3만4천 명의 직원을 일시 휴직 조치했고, 항공관제 인력 부족으로 주요 공항의 이착륙 지연이 전국적으로 발생했다. 국립공원, 스미소니언 박물관, 환경보호청(EPA), 보건복지부(HHS)의 일부 프로그램은 운영이 중단되었으며, 연방 법원은 ‘필수 사건’만 선별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러한 공공서비스 정지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국민의 일상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세금 환급이 지연되고, 중소기업 대출 승인 절차가 멈추었으며, 의료보조 프로그램도 일정 부분 축소되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경제적 피해는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셧다운이 3주 이상 지속될 경우, 미국 GDP의 0.2%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정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 미국의 신용등급 안정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증시에서도 셧다운 장기화 우려가 반영되며, 소비재와 항공 관련 주식이 하락세를 보였다.

정치적 책임 공방은 여느 때보다 격렬하다. 로이터 통신이 10월 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4%는 “양당 모두 셧다운의 책임이 있다”고 답했으며, 34%는 트럼프 행정부, 12%는 민주당 의회를 더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전문가들은 이 결과를 두고 “셧다운이 특정 정당의 실패가 아니라 미국 정치 시스템 자체의 구조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고 해석했다.

현재 워싱턴 정가는 셧다운이 장기화될 경우, 행정부의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미 일부 보수 의원들은 ‘행정 슬림화’를 명분으로 셧다운을 기회 삼아 연방 조직의 감축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공공노조와 야당은 “국가 시스템을 협상 카드로 쓰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치적 대립이 장기화될수록 피해는 국민에게 집중되고 있다. 반복되는 셧다운은 더 이상 정치적 전술이 아니라, 행정의 신뢰를 갉아먹는 만성 질환이 되어가고 있다.

Ⅴ. 제도 개혁과 정치의 책임

연방정부 셧다운의 반복은 제도적 문제이자 정치적 무책임의 산물이다. 전문가들은 그 근본 원인을 미국 예산 구조의 경직성에서 찾는다. 현재 연방정부는 12개의 개별 세출법안(appropriations bills)을 매년 처리해야 하는데, 하나라도 합의에 실패하면 정부 전체가 멈출 위험에 노출된다. 이러한 구조는 분점 정부(divided government) 상황에서 특히 취약하다.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른 경우, 단 한 항목의 갈등이 국가 행정을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 전문가들은 셧다운을 방지하기 위해 자동 계속지출(automatic continuing resolution)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예산안이 기한 내 통과되지 않더라도 전년도 예산을 임시로 유지하는 제도로, 이미 캐나다와 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보고서는 “이 제도만으로도 셧다운 가능성을 사실상 제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서도 몇 차례 도입 법안이 상정되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로 번번이 무산됐다. 셧다운을 ‘정치적 지렛대’로 활용해온 양당 모두, 제도 개혁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공공서비스 보호 장치 강화도 시급한 과제다. 국립공원, 항공, 의료, 법원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기능은 예산 공백 시에도 최소한의 운영이 보장되어야 한다. 실제로 2018~2019년 셧다운 당시 항공 안전국(TSA) 직원들의 결근이 늘어나며 항공편이 대규모로 취소된 사례는 필수 업무 보장 체계의 부재를 보여준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업무는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셧다운이 거듭될수록 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약화되고 있다. 갤럽이 2024년 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연방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7%로, 1970년대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이를 두고 “셧다운은 단지 행정의 정지 상태가 아니라, 민주주의 신뢰의 후퇴를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국민은 세금을 내지만 정부는 문을 닫는다. 이런 현실이 반복될수록, 미국의 민주주의는 기능보다 상징만 남게 된다.

결국 해법은 제도보다 정치에 있다. 자동예산제도나 필수업무 보호 장치가 아무리 정교해도, 정치가 타협을 포기한다면 셧다운은 언제든 재현될 것이다. 1980년 첫 셧다운 이후 40여 년 동안 미국은 20차례 이상 예산 공백을 경험했고, 그중 절반이 실제 행정 마비로 이어졌다. 대통령이 바뀌고 의회 권력이 교체되어도, 워싱턴은 여전히 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있다.

예산은 정치의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셧다운의 반복은 민주주의의 실패이자, 협상의 실종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정부의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법이 아니라, 정치의 책임이다. 타협과 신뢰 없이는 행정도, 민주주의도 멈출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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