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보다 오래된 뉴욕의 농구 아이콘, 닉스의 탄생
뉴욕 닉스(New York Knicks)는 단순한 농구팀이 아니다. 이들은 미국 프로농구협회(BAA, NBA의 전신)가 탄생하던 해인 1946년부터 지금까지 같은 이름, 같은 도시, 같은 홈구장을 유지해 온 몇 안 되는 원조 팀이다. “Knickerbocker”라는 명칭은 17세기 뉴 암스테르담에 정착한 네덜란드 이민자들의 통칭에서 비롯되었다. 닉스라는 이름은 곧 뉴욕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뿌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홈구장은 언제나 매디슨 스퀘어 가든(MSG)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레나”라는 별명은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니었다. 닉스의 홈 경기는 뉴욕의 야구, 연극, 재즈 공연과 더불어 도시 정체성의 일부였다. 농구의 승패를 넘어, 닉스는 뉴욕 시민의 기쁨과 좌절, 열정과 분노가 응축된 무대였다.

초창기 닉스는 곧바로 리그의 주목을 받았다. 1950년대 초반, 윌리엄 “클라이드” 게인스와 해리 갤라틴을 앞세워 1951년부터 1953년까지 3년 연속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그러나 세 번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닉스는 이때부터 “거대한 무대에 오르지만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뉴욕 팬덤은 이미 이때부터 희비를 함께 경험했고, 그것은 이후 수십 년 동안 반복될 닉스의 서사의 전조였다.
윌리스 리드와 월트 프레이저, 1970년대의 황금기
닉스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1970년 NBA 파이널 7차전이다. 상대는 강력한 LA 레이커스. 시리즈는 3–3으로 팽팽하게 맞서 있었고, 닉스의 주장 윌리스 리드는 부상으로 사실상 출전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경기 시작 전, 절뚝이며 코트에 등장했다. 그리고 첫 두 번의 슛을 성공시켰다. 그것은 기술적인 기여 이상이었다. 뉴욕의 모든 팬들과 동료 선수들에게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닉스는 결국 우승했고, 이 장면은 지금까지도 NBA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 시대의 닉스는 윌리스 리드, 월트 프레이저, 데이브 드부셔어, 빌 브래들리, 얼 먼로 같은 스타들이 조화를 이루며 팀플레이의 교과서를 써내려갔다. 1973년, 이들은 두 번째 우승을 거머쥐며 닉스의 황금기를 완성했다. 닉스 농구는 화려함보다 희생과 수비, 패스워크로 기억되었고, 뉴욕의 노동자 계급과 지식인들에게 동시에 사랑받았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1970년대 후반부터 주축 선수들의 은퇴와 부상, 세대교체 실패로 닉스는 다시 하락세를 탔다. 뉴욕 팬들은 한 번 맛본 달콤한 성공 때문에 더욱 갈증을 느꼈고, “언제 다시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이후 수십 년 동안 반복되었다.
패트릭 유잉과 1990년대의 열정, 그러나 완성되지 못한 꿈
1985년, NBA는 첫 번째 드래프트 로터리 제도를 시행했고, 뉴욕 닉스는 그 행운의 첫 주인공이 되었다. 바로 조지타운 대학의 빅맨 패트릭 유잉(Patrick Ewing)을 1순위로 지명한 것이다. 유잉은 곧 닉스의 상징이 되었고, 1990년대는 그의 시대였다.
유잉과 함께 한 닉스는 수비와 근성으로 동부 컨퍼런스에서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와 매년 치열하게 맞섰다. 존 스타크스, 찰스 오클리, 앨런 휴스턴 같은 선수들이 함께하며, 닉스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가장 뜨겁고 거칠게 만드는 팀으로 거듭났다.

1994년, 닉스는 오랜만에 파이널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휴스턴 로케츠의 하킴 올라주원 앞에 7차전 끝에 무릎을 꿇었다. 1999년에는 8번 시드의 기적을 쓰며 다시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이번에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팀 던컨과 데이비드 로빈슨을 넘지 못했다.
1990년대 닉스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지만, NBA 역사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팀 중 하나로 기록된다. 뉴욕 팬들은 여전히 존 스타크스가 불스의 마이클 조던과 맞붙던 장면, 유잉이 골밑에서 몸을 던지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하드노즈(hard-nosed)”라는 표현은 바로 그 시절 닉스를 위한 말이었다.
암흑기와 새로운 도약, 그리고 2025–26 시즌의 기대
2000년대 이후 닉스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했다. 오너 제임스 돌런에 대한 팬들의 불만, 잦은 감독 교체, 실패한 드래프트와 FA 계약들이 이어졌다. 카멜로 앤서니가 2010년대 초반 팀을 이끌며 잠시 희망을 주었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팬덤은 세계에서 가장 충성스럽지만 동시에 가장 목소리가 큰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MSG 경기장의 부정적인 야유는 선수들에게는 악몽, 그러나 동시에 ‘뉴욕의 압박’을 상징하는 장면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닉스는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제일런 브런슨이 2022년 합류하면서 팀의 리더십이 자리잡았고, 2023–24 시즌에는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이어 칼-앤서니 타운스와 마이칼 브리짓스가 합류하면서, 닉스는 오랜만에 “우승 컨텐더”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되기 시작했다.

2025년 여름, 팀은 새로운 감독 마이크 브라운을 맞이했다. 그는 수비적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속공과 팀플레이를 강조하는 현대 농구를 결합하려 한다. 브런슨, 타운스, 브리짓스의 조합은 공격에서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벤치에는 조던 클락슨 같은 득점원이 추가되었다. 시즌 일정은 험난하지만, 홈에서 시작하는 개막전과 크리스마스 매치업은 뉴욕 팬들에게 큰 기대감을 안겨준다.
뉴욕 닉스는 여전히 두 번의 우승(1970, 1973)에 머물러 있다. 이는 보스턴 셀틱스나 LA 레이커스 같은 라이벌들과 비교할 때 초라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닉스의 가치는 단순히 우승 숫자가 아니다. 이 팀은 늘 도시와 함께 울고 웃었고, 좌절과 영광의 순간을 공유했다. 2025–26 시즌, 닉스가 다시 정상에 오를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교차로에서 멈출지, 그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MSG의 불빛 아래, 뉴욕 팬들은 언제나 닉스와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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