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오늘도 서울 광화문에서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들은 때로 청년이고, 여성이고, 노동자이며, 기후를 걱정하는 학생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투표소에서만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이 나라는 언제나 거리에서 정치가 이루어졌고, 광장에서 시민이 권력을 다시 호명했다. ‘시위’는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이자, 지금도 진행 중인 진화의 형식이다.
이 기사는 한국 현대사의 시위 문화를 통시적으로 조망하고, 최근 등장한 다양한 의제와 주체들의 시위 양상을 분석하며, 이것이 어떻게 세계사적으로 새로운 직접 민주주의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려 한다.

거리에서 시작된 헌정 질서: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는 독립 이후 수차례 군부의 개입과 권위주의를 경험했지만, 그때마다 시민은 거리로 나서 민주주의를 되찾았다. 시위는 단지 정치적 저항이 아니라, 헌법을 수정하고 권력 구조를 뒤흔든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이었다.
1960년 4·19혁명은 고등학생 김주열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확산된 학생 중심의 시위였다. 이 시위는 당시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에서 시작되었고, 이틀 만에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으며, 결국 이승만은 하야하고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었다.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학생 주도 정권교체 사례로 남아 있다.
1979년 부마항쟁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군사정권의 권력 찬탈에 저항한 시민의 움직임이었다. 특히 광주는 아직도 그 숫자가 확인되지 못할만큼의 희생자와 모든 참여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만들어 냈지만, 이후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상징이자, 1987년 6월 항쟁의 정당성을 제공한 도덕적 토대가 되었다.

1987년 6월 항쟁은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수백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민 시위였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열사의 사망을 계기로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6.29 선언이라는 헌법 개정 요구를 관철시켰다. 이 항쟁으로 대한민국은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고, 형식적이나마 정당 중심의 대의민주주의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이러한 사건들은 시위가 단순한 항의 수단이 아니라, 실제 정치제도와 헌법을 바꾸는 동력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거리에서 울린 함성은 헌법을 고쳤고, 정권을 바꾸었으며, 시민을 정치의 주체로 세웠다.
촛불과 SNS: 디지털 시대의 시민 동원
2000년대 들어 인터넷과 SNS의 보급은 시위 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과거처럼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가 주도하던 조직화 방식은 점차 약화되었고, 그 대신 커뮤니티 게시판,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 디지털 공간에서 시위가 조직되고 확산되기 시작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여중생 미선이와 효순이가 사망한 사건 이후, 자발적으로 촛불을 든 시민들이 도심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는 ‘촛불시위’라는 새로운 형태의 비폭력 평화 시위로 정착되었고, 이후의 시위에 결정적 형식을 제공했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촛불집회는 다음 아고라, 포털 카페 등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 온라인에서 조직력을 형성하고, 오프라인으로 연결된 대표적 사례였다. 이는 기존의 수직적 명령체계 없이, 수평적 연대와 유머, 해시태그, 풍자 등을 활용한 ‘디지털 시민 불복종’의 효시로 평가된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디지털 기반 시민 시위의 정점이었다. 20주 연속 열린 촛불 집회에는 최대 170만 명이 참여했으며, 질서 있고 평화적인 시위는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촛불 혁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 결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고, 이는 시민의 직접 행동이 입헌기관을 견인한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이 대의제 민주주의와 병렬적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직접 민주주의의 모델을 구축했음을 의미한다. SNS는 정보 유통 경로를 넘어 시민 조직의 플랫폼이 되었고, 촛불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실제 정치 변화를 만든 ‘디지털 민주주의의 도구’가 되었다.
오늘의 광장: 새로운 주체와 의제의 출현
2020년대의 시위는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과거에는 정권 교체나 선거 개혁, 민주화 요구가 주된 의제였다면, 오늘날의 시위는 일상적 권리와 사회적 정의를 중심으로 한다. 주체 역시 다양해졌으며, 시위 방식도 더욱 창의적이고, 하이브리드화되었다.
2022~2024년 사이 한국 사회를 뒤흔든 시위 중 하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 요구였다. 쿠팡, 배달의민족,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 및 라이더들은 배송 알고리즘의 불투명성, 과도한 업무량, 산재 인정 부족 등을 이유로 거리로 나섰다. 2024년 3월에는 전국배달노동자협회 소속 라이더들이 ‘내 위치정보는 내 권리’라는 슬로건 아래 청와대 앞에서 6일간 노숙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GPS 데이터가 회사 수익에 이용되면서도, 이에 대한 어떤 보상이나 정보 접근 권한도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시위가 단지 생존권이 아닌 ‘데이터 시민권’이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청소년 기후 시위는 미래 세대의 정치 참여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2023년 9월 서울 도심에서는 중고등학생 약 4천여 명이 기후행동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이들은 “2050년에도 숨 쉴 수 있기를”이라는 피켓을 들고, 탄소중립 입법과 기후교육 강화 등을 요구했다. 이 시위는 선거권조차 없는 세대가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한 보기 드문 사례로 평가받는다.

2024년 하반기,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과 검찰 중심 권력 집중, 언론 탄압 논란, 민생경제 악화 등에 반발한 시민들과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이 주도한 탄핵 촉구 집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매주 수만 명이 모여 “윤석열 퇴진”, “헌법 수호”를 외치며 대규모 촛불 집회를 이어갔으며, 부산, 광주, 대전 등 주요 도시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집회가 열렸다. 특히 노동계와 청년층, 농민 단체까지 참여하며 시위 규모는 점차 확대됐고, 2024년 11월에는 주최 측 추산 약 100만 명이 전국에서 동참했다. 헌정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 이 시위는, 권력에 대한 시민의 실질적 견제와 헌법적 책임을 둘러싼 직접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기록되었다.
2025년 3월 25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 고개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며 벌였던 트랙터 시위는 “윤석열 즉각 파면”, “내란세력 청산”을 외치며 광화문 진입을 시도한 전농 소속 농민들은 트랙터와 트럭 40여 대를 동원해 행진을 감행했다. 이에 경찰은 기동대 1,700여 명을 투입해 진입을 저지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안전 문제를 이유로 트랙터는 불허하고 트럭 일부만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으나, 전농 측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강행 의지를 밝혔다. 시위 현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은 전국 농민회 연맹과 관련이 없는 젋은 여성들이었고, 이들을 지지한 시민들이 돈을 모아 난방버스를 대절 하는 등, 이전 시위와는 완전히 다른 연대과 비폭력이 만들어낸 진정한 의미의 인간적 동맹의 연대 시위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성소수자 인권 시위, 페미니스트 액션, 장애인 권리 시위 등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은 전통적인 대규모 시위보다는 플래시몹, 1인 시위, 온라인 캠페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시위가 점점 더 개인화되고, 감각화되고, 주체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세계를 바꾸는 한국형 직접 민주주의
이러한 한국의 시위 문화는 이제 단지 국내 정치를 바꾸는 것을 넘어, 세계 시민사회에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6년 촛불집회는 유엔개발계획(UNDP),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등에서 ‘시민 주도 정치 모델’로 분석되었으며, ‘촛불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태국, 미얀마, 칠레, 폴란드 등의 민주화 운동에도 영감을 주고 있다. 특히 지도자 없는 조직, 자율적 참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유기적 연결이라는 특징은 21세기형 직접 민주주의의 핵심 조건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한국의 시위는 이제 입법화와 제도 개선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2023년 청년 주거권 시위 이후 일부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서울시는 기후 시위 이후 탄소예산제를 시범 도입했다. 이는 시위가 단지 문제 제기를 넘어서, 제도 개선의 출발점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시위 문화는 더 이상 ‘거리의 정치’가 아니라 ‘정치의 중심이 거리로 이동한’ 새로운 시대를 보여주고 있다. 시민은 단지 유권자가 아니라, 정책 형성의 실질적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 이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세계 민주주의의 진화이며, 그 선봉에 한국 시민이 서 있다. 그리고 이들의 시위는 이제 전세계적인 표준을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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