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출퇴근길이자 생존 전략
뉴욕에 살기 시작한 지 벌써 7년. 집은 브루클린, 직장은 맨해튼 미드타운. 아침 8시 20분이면 어김없이 지하철 G선을 타고, L선으로 환승한 뒤 다시 4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총 이동시간은 약 45분. 이 루트를 매일 반복하다 보면 지하철은 더 이상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된다.

지하철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혈관이자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다. 교통 체증을 고려하면 자동차는 도리어 시간 낭비다. 우버? 출근 시간대에는 기본요금이 30달러를 훌쩍 넘는다. 자전거? 겨울엔 불가능하고, 도로 상황도 안전하지 않다. 결국 대부분의 뉴요커는 지하철을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다.

그럼에도 이 도시의 사람들은 지하철을 ‘욕하면서도’ 매일 탄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광범위한 접근성 때문이다. 5개 보로(Borough)에 472개 역, 27개 노선이 연결돼 있어 도심, 외곽, 상업지구, 주거지까지 거의 모든 곳에 닿을 수 있다. 차 없이 살 수 있는 도시, 그것이 뉴욕이고, 그 중심에 지하철이 있다.
하지만 접근성이 곧 효율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아침 출근길에 갑자기 운행이 중단된다거나, 한창 바쁜 시간에 차량 간격이 15분 이상 벌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옆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 공감의 순간만큼은 이 도시에서 ‘진짜 시민’이 된 느낌이다.
익숙한 불편함과 예상 가능한 혼란
뉴욕 지하철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노선 체계 자체가 직관적이지 않다. 같은 이름의 역이 다른 노선에 반복되고, ‘Express’와 ‘Local’이 혼합 운행되면서 환승이 쉽지 않다. 지하철을 처음 타는 외국인 친구들이 늘 묻는다. “왜 이렇게 헷갈려?” 그때마다 나는 말한다. “나도 아직 헷갈려.”

게다가 지연이나 서비스 변경은 일상이자 운명이다. 주말이면 공사로 인한 우회 운행이 필수처럼 이뤄진다. 한 번은 L선을 타고 윌리엄스버그에서 맨해튼으로 가려다가, 갑작스런 우회 운행으로 퀸즈까지 가게 된 적도 있다. 대체 노선에 대한 안내가 없거나, 오히려 역 내부 방송과 MTA 앱 알림이 서로 다른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청결 문제도 심각하다. 쓰레기, 쥐, 낡은 전동차는 이제 ‘일상 풍경’에 가깝다. 특히 여름철, 에어컨이 고장 난 차량을 만나면 땀이 비 오듯 흐르고, 그 안에서 20~30분을 보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적응’ 때문이다. 뉴욕에서는 불편함도 결국 익숙해진다. 그게 바로 이 도시의 생존 방식이다.
뉴욕 지하철이 만든 공동체의 풍경
지하철은 이 도시의 ‘거울’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 같은 칸에서 마주치는 익명의 사람들, 누군가가 펼쳐놓은 책,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비좁은 공간 속에서의 무언의 협조.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말 없이 함께 움직이고, 살아간다.

가끔은 전동차 안에서 갑자기 연주가 시작되기도 한다. 트럼펫을 부는 남자, 아카펠라 그룹, 드럼통을 두드리는 청년. 어떤 날은 피곤하고 귀찮기도 하지만, 음악이 분위기를 바꾸는 건 사실이다. 관객도 무대도 없지만, 사람들은 웃고, 손뼉을 치고, 동전을 건넨다. 그렇게 잠시나마 이 도시의 거칠고 삭막한 풍경에 작은 온기가 생긴다.
하지만 이 공간이 항상 안전한 건 아니다. 특히 심야 시간대에는 노숙인 문제나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마주칠 위험이 있다. 뉴욕시에선 최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철 순찰 인원을 늘리고, MTA 경찰과 NYPD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지만, 완벽하진 않다.

그럼에도 뉴욕 시민들 대부분은 ‘어떻게’ 이 시스템을 사용할지 잘 알고 있다. 혼잡한 칸은 피하고, 무리하지 않으며, 언제 내려야 할지 몸이 기억한다. 어떤 면에선 이 지하철이야말로 뉴욕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회적 적응 시험장’이다.
변화의 조짐,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최근 MTA는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우선 결제 방식이 ‘OMNY’로 바뀌고 있다. 이제는 스마트폰이나 카드만으로도 지하철을 탈 수 있다. 종이 MetroCard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는 것이다. 매번 충전 줄에 서지 않아도 되고, 잔액 부족 걱정 없이 손쉽게 탑승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진보다.

또한, MTA는 일부 노선에 새 전동차(R211)를 도입하고, 신호 시스템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CBTC(통신 기반 열차 제어) 기술을 활용한 정시 운행 확보는 많은 시민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연이 잦은 7호선에서 이 시스템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며, 일부 구간에선 이미 효과를 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여전히 대부분의 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장애인이나 유모차 이용자는 고생을 면치 못하고, 차량 간 온도차나 소음, 승강장 내 냄새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하철 요금도 매년 오르고 있으며, 2024년 기준 기본 요금은 $2.90이다. 장기적으로는 무제한 패스를 끊는 게 유리하지만, 저소득층이나 관광객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지하철을 탄다. 이유는 단순하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지하철 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뉴욕이 있다. 빠르게 걷는 사람들, 서로 부딪치고도 미안하단 말조차 생략하는 무심함, 동시에 누군가 쓰러졌을 땐 곧바로 달려가는 연대감. 이 모든 것이 뉴욕의 일부다.
마치며: 뉴욕 지하철은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다
뉴욕 지하철은 낡았고, 혼란스럽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하루는 이 시스템을 통해 시작되고 끝난다. 많은 이들이 이 지하철을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그것보다 ‘이미 적응한 현실’에 가깝다.

이 도시는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불완전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적응력과 유연성은, 오히려 뉴욕이라는 도시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지하철 안의 혼란과 예측불허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매일 선택하고, 대처하고, 나아간다. 그것이 바로 뉴욕의 리듬이고, 우리가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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