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성당, 완전한 신앙 —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 뉴욕의 영혼을 품다

맨해튼의 북쪽, 모닝사이드 하이츠의 고요한 언덕 위에 서 있는 거대한 석조 건물 하나가 있다.
햇살이 장미창(Rose Window)을 통과해 푸른 유리조각을 바닥에 쏟아내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춘다.
이곳은 바로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Cathedral of St. John the Divine)’,
뉴욕 성공회 교구의 중심이자,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도록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성당이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St. John the Unfinished’ — 완성되지 않은 신앙의 건축

1892년, 뉴욕 성공회 교구는 “모든 이들을 위한 하느님의 집”을 세우겠다는 비전으로 이 성당의 첫 돌을 놓았다.
설계자 조지 헤인스와 크리스토퍼 크라드윅은 초기엔 로마네스크·비잔틴 양식으로 시작했으나,
곧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건물은 서로 다른 건축 언어들이 한데 섞인 독특한 하이브리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건축은 전쟁, 경기 침체, 자금난으로 여러 차례 중단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일부 탑과 서쪽 파사드는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성당을 ‘세인트 존 더 언피니시드(St. John the Unfinished)’, 즉 ‘미완의 요한’이라 부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미완성은 이 건물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세인트 존 더 디바인은 완전함보다는 과정 그 자체를 신앙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하느님의 일은 언제나 진행 중이며, 인간의 손으로 완성된 적이 없다는 신학적 상징이 건축 속에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성당은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즉 ‘살아 있는 신앙의 증거’로 남아 있다.

뉴욕의 영혼을 비추는 거대한 공간

이 대성당의 규모는 압도적이다.
전체 길이 약 183미터, 내부 면적 약 11,250㎡에 달하며, 천장 높이는 54미터에 이른다.
거대한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로 새어드는 빛은 바깥의 도시 소음과는 다른 시간의 흐름을 만든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정면의 장미창이다.
10,000여 개의 유리조각으로 구성된 이 창은 미국 내에서 가장 큰 로즈 윈도로 알려져 있다.
붉고 푸른 색의 조각들이 얽혀 한낮에도 성스러운 황혼의 빛을 만들어낸다.

성당의 네이브에는 수십 개의 예배소(Chapel)가 있고, 각각의 공간은 세계 각국의 문화와 예술을 기념한다.
이곳은 단순히 종교적 공간이 아니라, 뉴욕이란 도시의 다문화적 영혼이 응축된 공간이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누구나 기도할 수 있으며, 종교를 초월한 평화의 상징으로 열려 있다.

예술과 신앙이 만나는 성전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세인트 존 더 디바인은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의 안식처였다.
대성당의 내부는 종종 거대한 예술 전시장이 된다.
중국의 현대미술가 쉬빙(Xu Bing)이 만든 거대한 ‘피닉스’ 조각이 이곳 천정에 매달렸을 때,
많은 사람들은 “하늘과 예술이 만나는 장면”이라 불렀다.

이곳은 또한 시와 음악의 성전이기도 하다.
1980년대부터 운영 중인 ‘American Poets’ Corner’에는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
랭스턴 휴즈 같은 미국 시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예배당 한켠에서는 클래식 콘서트, 재즈 공연, 환경예술제 등이 열리며,
그 어떤 종교 공간보다 세속적이면서도 신성한 분위기를 동시에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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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개방성은 성공회의 신학적 포용성과 맞닿아 있다.
성당의 모토는 “House of Prayer for All People”,
즉 “모든 이를 위한 기도의 집”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세인트 존 더 디바인이 뉴욕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주는 선언이다.

공동체를 위한 교회 — 신앙의 실천

이 대성당이 뉴욕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유는 단순한 건축미 때문이 아니다.
이곳은 종교를 넘어선 사회적 실천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시작된 ACT (Advancing the Community of Tomorrow) 프로그램은
지역 아동을 위한 방과후 돌봄과 예술 교육을 제공한다.
매년 약 25,000끼의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급식소(Soup Kitchen)도 운영되며,
노숙자 지원과 AIDS 인식 캠페인 등 다양한 복지 활동이 이어진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뉴욕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세인트 존 더 디바인은 늘 사람들을 품었다.
9·11 테러 직후에는 추모 미사와 예술 추모전이 함께 열렸고,
팬데믹 시기에는 의료진을 위한 기도회와 온라인 위로식이 이어졌다.
이 성당은 기도의 장소이자, 위기 속에서 인간의 연대를 되살리는 시민의 성소였다.

불완전함이 주는 완전함

2001년 발생한 화재는 성당의 일부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하지만 신자들과 지역 주민들은 2주 만에 재개방을 이루어냈다.
그들은 “이 성당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했다.
세인트 존 더 디바인의 역사는 바로 이런 공동체의 복원력이 만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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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서쪽 탑은 완성되지 않았고, 일부 벽면은 미세하게 손상된 채 남아 있다.
그럼에도 성당은 살아 숨 쉬고, 예배가 이어지며, 예술이 꽃핀다.
완벽하지 않기에 더 아름다운 공간,
그것이 바로 세인트 존 더 디바인의 정체성이다.

동물도 축복받는 곳 — 생명에 대한 포용

매년 10월 첫째 주 일요일, 성 프란시스의 날에는 ‘Blessing of the Animals’ 행사가 열린다.
성직자들이 개와 고양이, 심지어 새와 뱀까지 축복하며,
“모든 생명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날 성당 앞마당은 하나의 거대한 동물 행렬로 변한다.
신앙은 인간의 경계를 넘어, 생명 전체를 향한 존중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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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축복식은 이제 뉴욕의 가을을 상징하는 연례 행사로 자리 잡았고,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과 언론이 이 장면을 기록한다.
그 모습은 세인트 존 더 디바인이
‘종교적 경계’보다 ‘인간적 보편성’을 우선시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준다.

도시와 함께 숨 쉬는 성당

세인트 존 더 디바인은 단순히 오래된 건축물이 아니다.
그것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영혼이 물리적 형태로 응축된 공간이다.
모닝사이드 하이츠의 언덕 위에서, 이 성당은 여전히 공사 중인 채로
하루 수천 명의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한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성당을 감싸는 주변 캠퍼스에는
컬럼비아대학교, 유니언신학교, 주이시신학교 등 다양한 종교·학문 기관이 함께 있다.
이 지역은 서로 다른 신념이 공존하는 ‘종교의 아크로폴리스’라 불릴 만큼,
세계에서도 드물게 다양한 신앙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이다.

세인트 존 더 디바인은 그 중심에서,
도시의 긴장과 다양성을 조율하며 **‘공존의 상징’**으로 서 있다.ㅋ

미완성의 아름다움

세인트 존 더 디바인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미완성 덕분에, 이 성당은 뉴욕의 현재를 닮았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때로는 혼란스럽지만,
결국 서로의 다름을 품어내는 힘을 잃지 않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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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기도하고, 예술을 감상하고, 침묵 속에서 위로를 얻는다.
돌과 유리, 음악과 빛, 그리고 사람들의 숨결이 만들어낸 이 복합적 공간은
신앙과 인간, 예술과 도시가 만나는 거대한 공명체다.

“완전함은 인간의 것이 아니며, 불완전함 속에 신의 흔적이 있다.”
이 말은 세인트 존 더 디바인의 역사를 요약하는 문장이다.
뉴욕의 소음과 불빛 사이에서, 이 미완의 성당은 오늘도 조용히 숨 쉬고 있다.
그것은 여전히 건설 중인 건물이자, 완성된 믿음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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